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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수)
[김용복] 21세기의 사회변동과 디아코니아 선교  
김 용 복 (한일신학대학교 총장)


<머릿말>


한국교회는 "민족을 섬기는 교회"(민족디아코니아의 교회)였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구원을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여 왔으며 민족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수립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여왔다. 현재 21세기에도 한국교회의 이러한 선교적 사역을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1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통하여 21세기의 도전에 대응하여 선교적 사역을 이루시려는 그의 뜻을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교단이 이번에 개최하는 봉사대회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통하여 새시대에 새로운 지구적 지평에서 새로운 사역을 행하려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감지하게 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역사적 전통과 그 사역의 업적이 출중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한국민족과 아시아의 민족들 그리고 세께의 민족들이 이를 희구하며 갈망하기 때문에 한국교회를 이 세기적 선교사역에 부르시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처하여 있는 이 시대는 한국과 세계에 커다란 세기적 전환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때이다. 한국교회는 이 격변하는 시대가 새로운 선교의 시대(카이로스)임을 자각하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면서 선교적 사역에 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격변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새시대의 맥락 속에서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민족사 속에서 사역하시고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역사적 발자취를 새롭게 감지하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선교사역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선교적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적 격변과 한국민족사회의 변화를 깊고 투명하게 이해하고 이 변화를 통하여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형체를 감지하는 것이 우리교회의 시대적 역할을 규명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1.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자.


작금 세계와 인류는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거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간다. 이념적 군사적 정치적 양극체제의 해체와 더불어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고 시장경제화 되었으며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들도 세계시장에 개방되어 가고 우르과이라운드 국제협약체결이후 모든 국가들은 세계시장에 개방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사회도 커다란 19세기말이래 새롭게 경험하던 지정학적인 격동을 경험하고 있으며 우리 남한정부도 세계화와 개방화정책을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세기적 문명사적 격변은 <地球市場>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세력간의 역학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세계적 정치경제의 역학관계는 <지구라는 시장>에 사는 모든 인류와 자연의 생명체의 살림살이를 결정하여 주리라는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초대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던 당시 로마제국이 천하를 군사, 정치, 경제적 통합을 통하여 Pax Romana의 제국질서를 형성하였던 것과 흡사하다.


이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를 주도하여가고 있는 세력은 20세기 후반부터 부각되기 시작하여 이제 세계를 장악하여가는 경제세력으로서 초국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초국적 거대기업들이라고 한다. 물론 국가권력들이 현금의 지정학적인 질서와 새로 부각되는 세계시장의 질서에서 아직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적 시장에 새로운 지구적 역할을 자임하는 역사적 주체로서 초국적 거대기업들은 세계시장속에서 거의 절대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 이 초국적 거대기업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독일등 선진산업국가들의 정치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의 신흥산업국가들안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소위 아시아의 용들을 움직이고 있는 대기업들과 깊은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이 새시대의 시점에서 국내외에 군림하면서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이 거대경제세력의 실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인류와 생명은 이 초국적 거대기업망의 행보에 의하여 결정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 경제적 실체들이 세계시장의 치열한 논리에 의하여 치열한 경쟁에 임하게 될 것이며 이 초국적 기업들은 국가의 권력으로도 통제하며 길들이기 어렵게 되어간다는 데에 있다.


우리의 관심은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가정, 지역공동체, 민족공동체)와 지구의 생명체가 이러한 세계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시대의 징조를 읽어 내야하는데 문제는 지구적 상황은 급하고 격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어서 명확하게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앙적 눈과 지혜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우주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역사를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시대의 징조>


우리 민족공동체와 한국사회는 세계시장에 개방되고 우리민족의 공동체는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여지없이 노출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지구시장에 개방되고 있으며 과학과 기술의 가속적이 발전에 힘입어 형성된 교통통신상으로도 개방되고 있으며 지구시장의 압력에 의하여 국가의 경계선도 점진적으로 열려지고 있다. 지정학적인 축소통합과 정치 경제적인 개방 그리고 문화적인 개방은 한국사회를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한국사회와 한국민족의 삶을 지극히 유동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개방을 정책적으로는 세계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사회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편입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을 한국사회에 국한하여 조명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적 문명적 격변을 분별하면서도 동아시아외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민족공동체-구 소련, 중국, 일본, 미국등 세계에 흩어져있는 동족들을 포함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는 민족공동체-를 초점으로 하여 시대적 격변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의 새로운 21세기적 선교적 지평은 여기서부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의 유대를 기반으로 하여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선교적 사역을 감당하였던 것과 흡사하다.


1.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변화


지난 5,6년동안 동북아는 커다란 지정학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우선 교통수단의 발달과 냉전체제의 해체로 말미암아 민족들간의 지리적 거리가 대폭 축소되었고 교류가 빈번하여 졌으며 경제적 유통의 증가를 비롯하여 통신도 엄청나게 증가되고 질적인 혁명을 전개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개방되어 가고 있다. 아직 한반도 내부의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이나 이제는 직간접적으로 긴밀히 접촉하고 교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가고 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인 변화란 이제 모든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가 열리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변화는 민족의 안보와 평화라는 차원에서 냉전체제에 있어서의 그것과는 근원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인 변동속에서 민족의 안보와 한반도의 평화는 그 의미와 성격과 전력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한국교회에게 변화된 선교적 환경을 가져다주고 있다. 우리는 민족의 지정학적인 분단을 극복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동북아 민족들간에 넘나들면서 아직은 미흡하지만 거시적인 선교의 비젼을 조성하여 가고 있는 셈이다.


2. 민족의 경제적 생활의 변동 : 경제적 희생의 매카니즘의 지배


우리 민족공동체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에 노출되고 한국경제가 세계시장에 편입되면서 민족의 경제적인 살림살이가 근원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우선 지난 30년동안 개발독재정권아래서에 지극히 인위적인 정책과 기층민중의 희생을 토대로하여 성장하여온 한국경제는 세계시장에 편입되는 진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재정권의 과잉보호와 특혜를 누리어 오던 경제세력과 경제구조는 소위<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체 체질개선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런 정책적 과정이 대기업과 같은 국제경쟁력을 가진 실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모든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중산층소비자와 중소기업들을 포함한 경제적 약자들을 소홀히 하는 정책적 결과를 우려하게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민족경제의 일부인 북한의 사회경제는 그 자체가 극심한 위기에 처하여 있을 뿐 아니라 지구적 시장에 노출되기 시작하였고 이제 북한경제의 <붕괴위기>까지 논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북한경제의 파탄은 민족경제적 차원뿐 아니라 남한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하간에 북한경제의세계시장에의 노출은 그 파탄여부를 막론하고 경제적 약자들의 엄청난 희생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 상황에 대한 한국교회의 적극적 선교적 대응이 요청된다.


3.민족의 정치적 삶의 변화 : 정치적 주체의 상실


남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민족공동체와 민족의 성원들이 그 경제적 삶이 지구시장의 논리와 역학관계에 의하여 규명되는 것처럼 민족의 정치적인 살림살이도 지구시장에 의하여 결정될 전망이다.


우리민족은 지금까지 조선조의 전제적 정치유산과 일제의 식민지배 그리고 냉전분단상황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군사개발독제체제을 경험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지난 100년의 정치사속에서 민주주의를 희구하여 왔다.


이제 지구가 하나의 거대시장으로 압도하여 오고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세계의 열강들이 한반도상황에 치열하게 경쟁개입하는 상황에서 우리민족의 정치적인 통합은 남북간에, 지역간에 그리고 민족사회의 상하계층간에 모든 분단과 분열을 극복하고 온전한 통일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된다.


한반도 주변의 정치역학적 변화는 우리민족의 국제적 위치를 정하여 민족의 독립과 자결과 주체를 수립하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4대강국의 틈바귀에서 민족자존의 정권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입지를 수립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민족이 민주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사회졍제적으로 상하계층간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한걸음 나아가서 민족국가의 틀이 개방되고 지역사회가 국제시장의 소용돌이에 노출됨에 따라 지역민주주의 또는 향토민주주의를 간간으로하여야 민족 통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의 민주적 주체들이 국내적으로 연대하여 민족사회를 통합할 뿐 아니라 국제적 연대를 형성하여 민주주의의 국제적 유대를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직접참여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시장의 지구화는 우리민족의 정치적 독립성에 도전할 것이며, 국내적으로는 분열과 민주적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세계경제세력들이 국경과 사회적 안보의 망과 문화적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민족공동체에 진입하여 우리민족의 성원들이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이 과정에서 세계적 차원의 세력들에게 압도되어 정치적 좌절과 무기력의늪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4. 모든 사회적 관계의 갈등화와 폭력화


시장의 지구화는 경쟁이라는 논리를 절대화하고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를 실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경쟁을 주도하는 주체는 대기업이며 이 경쟁은 초국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모든 인간관계, 집단간의 관계는 치열한 경쟁관계, 고위 무한경쟁의 관계로 진입할 것이며, 이런 경쟁의 소용돌이는 전통적인 계층간의 갈등, 성과 성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민족간의 갈등을 고조할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관계를 모순과 갈등 그리고 대립관계로 진전시킬 전망이다.


더구나 이러한 경쟁의 강도가 높아지고 따라서 대립, 갈등 모순관계는 무법화 폭력화할 가능성을 증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사회관계의 폭력화도 심리적인 차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물리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심화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정치적 약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인 약자들의 소외와 희생은 헤아릴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기존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약화되어가고 있으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보장체제도 약화 내지는 붕괴되어 가고 있으며, 사회주의국가들의 사회보장체제를 이루어야 할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도 말은 많으나 실천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며 가난한 나라에서 약자의 사회적 안전보장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조정하는 정책을 지향하는 듯이 보이나 재정과 하부구조의 부족으로 적극성을 띄기 어려울 것이며 일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듯하고 이 경우 가난한 사회적 약자는 사회적 안전보장의 체제에서 소외될 뿐일 것이다. 지구적 차원의 소용돌이 속에서 약자들의 사회적 안전보장은 극심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5. 문화적 상황의 격변 : 문화 전쟁


지구적 시장은 우리 민족사회를 세계 시장에 통합하여 감으로서 민족의 문화생활에 지대한 변화와 충격을 주고 있다. 우선 지구시장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 지구시장의 문화는 고도기술을 배경으로 하는 다중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지구 문화는 지극히 상업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소비주의적이다. 이런 지구문화는 쾌락주의적이며 때로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하다.


새롭게 형성되는 지구문화는 민족문화적 정체성을 흔들어 놓고 민족문화전통을 와해한다. 민족이 오랫동안 지탱하여 오던 민족적 삶의 양식이나 가치관 등 고귀한 민족문화의 유산을 훼손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음악이나 미술 심지어는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새로운 시장문화에 의하여 대치되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장의 논리에 깊이 뿌리박는 문화산업과 광고는 건강한 문화적 삶을 증진시키지 못 할 것이다. 사실 시장의 소비주의 문화 경쟁 문화는 우리의 의식의 장 특히 어린이들의 의식의 세계를 완전히 점령하고 건강하고 건전한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가치관 그리고 심미적 감각을 오염시키고 말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전쟁이다.


최근 헌팅튼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지구시장의 논리에 역행하는 문화 특히 비서구문화는 공격과 침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민족문화의 발전과 창조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대결에 대응하는 중요한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 사회가 지구시장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에서 민족의 문화적 삶에 대하여 일정한 봉사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무비판적으로 서양문화에 융합된 상황을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6. 종교적 차원의 변화 : 정신적 공백과 혼란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세계시장은 충격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기독교를 포함한 기존의 종교들과 민중민족종교들에게도 충격적일 것이다. 사회적 아노미 현상은 인간의 정신과 신앙생활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신흥종교의 현상이나 종교의 근본주의적 회귀 그리고 갖가지 종말론적인 종교현상들도 한국사회가 지구시장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변화에 따른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독교나 불교같은 기성종교사 자기개혁을 통하여 지구시장에서의 창조적인 역할을 회복하지 못하고 반동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경직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면 종교들이 지구시장의 상업주의 물질주의에 편승되어 무기력한 종교들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종교가 시장에 편입되어 "종교적 상업거래"라는 타락상을 자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회가 지구적 시장에 개편되면서 민족공동체나 민족성원이 그 정신적 지주를 상실하는 결과를 경험할 수도 있울 것이다. 이처럼 민족공동체가 정신적 기반을 상실할 경우 그 상황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7. 총체적 생명계의 위기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한반도가 이에 편입되면서 삼천리금수강산 생명의 동산이 "죽음과 죽임의 소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지구적 시장경제는 무한성장과 자본축적을 지속할 것임으로 지속적으로 자원의 자원을 송급받아야 하고 이런 산업조직은 불가피하게 자연과의 대립 또는 착취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도 예외없이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심각한 부담을 가져다 주었으며 때로는 "생명의 동산" 한반도에 위협을 가져다 줄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자연환경의 문제는 자연을 그대로 두면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생명의 정원으로 가꾸어야 될 것이며, 자연과의 갈등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경제의 근본적 변혁과 자연환경을 "생명의 정원"으로 확고하게 수립하는 사회의 구성없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민족의 생명을 지키고 가꾸고 꽃피고 열매맺게 하는 일은 경제생활의 균형, 정치적 폭력(전쟁)을 제어하고 평화를 수립하는 일, 사회적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화해의 사역, 풍성한 생명문화의 창출, 생명의 정시적 기반형성 그리고 한반도를 생명의 정원으로 가꾸는 일 등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요청된다. 한반도의 생태계 문제는 남북이 공동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며 이웃의 나라들과도 공동보조를 취하여 해결할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디아코니아》


1. 우리는 우리민족사회가 자본의 축적을 무한히 극대화하고 경쟁을 치열하게 가속화하는 세계시장에 편입됨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들을 열거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디아코니아(DIAKONIA)의 의미를 규명하고 한국교회의 역할을 논하려고 한다.


디아코니아는 초대교회의 핵심적인 삶과 선교의 부분이었다. 본래 이 말은 使役 즉 종이 주인을 섬기는 일을 뜻한다. 노예의 기능을 디아코니아라고 칭하였다. 모세나 다윗 그리고 예언자들은 하나임의 종으로 일컬어졌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主로 섬길 뿐 아니라 하나임의 백성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使役을 하였기에 종으로 칭함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하여 왔다고 천명하였고 그렇게 살았다. 이러한 마가복음의 기독론은 구약 이사야서 "고난의 종"의 사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빌립보서 2장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기독론도 예수는 원래 하나님의 본체와 동등하였으나 인간, 나아가서는 "종의 형체"를 입고 구원과 해방의 사역을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종으로서의 예수의 사역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 나라의 주역, 즉 하나임의 정의의 주역, 하나님과 계약관계에 들어가는 동반자로서의 주역, 화해의 평화를 일구는 주역, 문화를 꽃피우는 창조적 주역, 생명을 가꾸는 주역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초대교회의 디아코니아의 사역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이 사역을 우리 한국교회는21세기를 직면하면서 민족사회와 지구사회에서 성실히 수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재화와 생산활동 분배활동 즉 경영활동을 통하여 즉 하나임의 청지기의 역할을 통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십일조와 같은 신앙적 경제행위를 통하여 이미 모든 재화는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의 청지기(경영자)이며 이 경영의 목적은 하나임의 백성과 그 피조물의 사회경제적 생태적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21세기에 전개되는 경제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경제정의를 토대로 하여 인간의 살림살이와 생명을 파괴하는 경제질서를 바로잡고 경제적 약자들을 자기살림살이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며 무수한 경제적 희생자들을 보살피는 사역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한국교회는 남한사회의 물질적인 풍요를 하나님의 물질적인 축복으로 간주하는 너무나 안이한 신앙적 태도를 가져왔으며 경쟁성장의 과정에서 경제적 약자와 희생자들을 소홀히 여겨왔음을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누리는 상대적인 물질적 풍요도 철저한 디아코니아(경제)신학을 바탕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며 민족의 살림살이를 바로 잡는 선교적 사역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은 한국민족사회의 살림살이를 바로잡고 그 희생자를 일으켜 세우는 디아코니아의 선교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2. 지구적 시장의 전개는 모든 국가의 경계선을 개방하고 국가의 기능을 약화내지는 변화를 시킬 전망이 있어서 민족의 정치적 살림살이에 커다란 충격을 주리라는 사실은 이미 지적하였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민족사회에 수립하면서 동시에 민족공동체와 지역사회에 있어서 참여와 연대를 위한 민주적 주권, 시민적 생활주권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봉사를 감당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민족화해에 있어서 민족독립, 민주화, 인권을 위하여 봉사하여왔고 이제는 21세기에 대응할 수 있는 민족적 정치생활을 위하여 직접참여와 연대를 위한 봉사를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참여적 봉사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3. 한국교회는 민족공동체의 통합을 위하여 남북간의 민족통일을 비롯하여 모든 계층간의 정의로운 화평, 지역간의 균형, 모든 집단간의 알륵과 대립의 평화로운 조정,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샬롬의 사역(정의, 평화, 치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이제 그 시작단계에 있으며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볼 때 국가가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며 기업들이 사회복지에 참여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인간단체들은 한국사회복지를 위하여 커다란 몫을 감당하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우리동포들을 위한 복지는 한국교회의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한사회가 개방되거나 변혁되거나 남북통일이 될 경우 북한사회의 사회보장문제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비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4.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창달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여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최근 민족문화의 시련과 발전과정에서 소외내지는 "지체현상(eultural lag)"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역r할이 축소되어 왔다. 이제는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건하고 창조적 문화창달을 위한 봉사와 사역을 감당할 역사적 시기에 달하였다.


우선적으로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재활하기 위하여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에 대한 신학적 태도를 개방적으로 재정비하여야 한다. 한국기독교가 그 초기에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으나 이것은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한국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치부해버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기독교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개방적이고 포괄적으로 형성하도록 한국문화와의 일체성을 수립하여야 한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민족에게 문화적 축복을 내려주셨다. 그리하여 반만년의 장구한 역사를 창출하게 하셨다고 믿는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한국민족문화를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문화는 여러 가지 시련을 겪어왔다. 조선조의 문화를 예로들어 설명한다면 조선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공헌에도 불구하고 조선조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석루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으며, 마침내에는 일제의 침략과 남북의 분단으로 인하여 민족문화의 계승발전과 창달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왔다.


더구나 지구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되면서 세계시장의 문화적 잠식과 충격으로 말미암아 민족문화의 정체성은 물론 민족적 가치관, 삶의 양식 심지어는 민족문화적 감각까지도 침공당하고 와해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의 세계는 지구시장의 논리에 의하여 점력당하여였고 이에대한 저항은 "문화전쟁"을 흡사하게 한다. 이것이 사무엘 헌팅턴이 말하는 소위 "문명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문화적 변동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신앙詷동체를 종교문화공동체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문화선교의 사역"이다. 한국교회는 먼저 예배가 기독교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활성화 시키며 교회의 신앙적 문화생활을 창조적으로 활성화 시켜야 할 것이며 모든 평신도문화인들의 선교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국문화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독교문화인, 연예인, 언론인등 문화선교의 역군들에게 적극적으로 선교적 사명을 부여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이디아세계 정보사회에 대응하기위한 비판적 창조적 선교전략을 구사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고도기술을 기반으로한 다중매체의 홍수에 대응하기위한 전교회의 매체교육(Media education)이나 전자통신활동훈련(Electranic Communication Actiaist Training)같은 문화선교를 위하여 필수적인 요건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의 장을 창조적이고 생명력있는 축제의 마당으로 발전시켜 문화적 혼란속에서 문화적 희생되는 민족의 성원을 지키고 하나남께 영광돌리는 "민족예술의 창조"에 적극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5. 종교적 정신적 디아코니아

인간은 정신적 영적인 존재이다. 한국의 종교들은 그 나름대로 민족역사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민족의 정신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를 깊이 믿으면 믿을수록 한국종교의 실체를 더욱 깊이 터득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국기독교의 거의 독선적인 태도는 기독교를 위해서도 한국종교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독교가 그 자체의 진리만이 참진리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고 중요하지만 이것이 곧 한국기성종교를 무조건 배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종파간의 연합운동에 참여하여 왔다. 그 전형적인 예가 기미 3·1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과정에서 기독교, 천도교, 그리고 불교는 연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21세기의 지구화는 민족사회의 기존 정신적 기초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을 전망이다. 그것은 한국종교들에게 획기적인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한국종교들은 반동적으로 또는 자기개혁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직된 사고를 가지 종교들은 어려움을 격게 될것이며 한국사회가 극심한 사회적 아노미(무규범현상)을 겪으면서 신흥봉교가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구사회주의 국가나 현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을 참고하여 생각한다면 북한사회도 세계시장에 개방되면서 극심한 정신적 공백과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시장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정신적 혼란과 공백이라는 심각한 상황을 대응하면서 민족에게 확고한 정신적 기반과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정신적 봉사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종파간의 대립과 갈 등을 지양하고 종파간의 에큐메니즘적 협력을 위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6. 생명의 정원을 보전하고 가꾸는 봉사

세계시장의 지속적 팽창과 성장은 생태계을 더욱 심각하게 위협할 전망이며 한반도에서의 산업시설과 산업경제의 팽창은 삼천리금수강산 하나님께서 민족의 생명을 위한 정원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생태환경적 위기를 가져올 전망이다.

민족을 살리고 민족이 살아나가는 민족의 살림살이는 한반도에 "생명과 삶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의 동산으로서의 한반도를 지키고 가구는 청직이 또는 경영자로서의 봉사적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창조신학에 있어서 현대과학적 "자연정복"이라는 주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현대과학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독신학은 자연철학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생명의 정직이 또는 생명의 정원직의"로서 재정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적 자연철학은 중요한 사상적 전기를 제공하여 주리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창조신학은 이러한 동양자연철학을 기독교신학의 근간에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왔다는 성경적 창조론은 일반 자연철학의 낭만주의적 경향과 "자연은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방임적 태도를 지양하고 자연을 생명의 정원으로 이루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가꿀 수 있는 이론적 윤리적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는 "생명디아코니아"의 사역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결 론 : <한국교회의 사회정책의 방향>


우리는 21세기에 있으리라는 사회변동을 예상하면서 현그므이 시장지구화를 분석하면서 한국교회 "민족디아코니아"의 과제들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이 과제 수행에 있어서 다음 방향을 재확인 하려고 한다. 한국교회의 총체적 디아코니아의 과제의 방향은


1. 최우선적으로 "희생자들과 약자들"을 돕고 보살피는 일이다.

2. 인간과 공동체와 생명을 주체로 세워 일으키는 일이다.

3. 구조적 개혁을 통하여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다.

4. 인간의 문화적 정체성과 창조적인 정신을 함양하는 것이다.

5. 인류공동체의 유대를 지역에서 민족사회에서 세계사회에서 엮어 가 는 것이다.


이러한 디아코니아의 선교정책을 입안하고 정책적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며 필요한 선교요원을 확보하기 위하여서는 신학적 기반구축, 각 분야에 대한 심층적 연구, 각 분야별 전문인력훈련, 그리고 전교인의 사회봉사훈련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한국교회의 교회교육, 교회를 기반으로한 사회교육, 각신학대학에 있어서의 신학교육의 재정비와 전문화에 필요한 교과과정의 개편과 각종연구소의 설치가 필요하며 특히 계속교육체제는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특수대학원 체제를 가추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민족복지>


민족복지는 민족통일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민족복지의 주체는 우리민족공동체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근대 국가적 통념은 민족복지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나 자유주의국가체제에서 국민이나 인민을 대표하는 국가기관인 정부가 민의 복지를 담당하고 책임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복지를 소위시장의 틀 안에서 기업에게 민의 복지의 일부를 맡기는 경향이 있었고 지금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민간기업이 시장의 거래를 통하여 민의 복지를 담당하게 되어 주체 또는 동반주체가 되는 격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 와서는 시민단체들이나 종교단체들 즉 비정부 비기업단체들이 국가 주도적, 기업주도적 복지정책에 대하여 민의 참여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민이 스스로 민족복지의 주역이 되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정부 주도적 복지나 기업위주의 복지는 당사자들인 민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간파하고 정부나 기업이 주도하는 복지정책이나 사업을 민의 참여를 통하여 민주화해야한다는 주장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민족복지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민족복지를 통일된 민족공동체에서 실현하려고 한다면 새로운 차원의 정치적 살림살이를 꾸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것을 생활민주주의 또는 복지민주주의라고 이름 주고 싶다. 우선 민이 자기의 삶과 생활에 관한 모든 일에 직접적으로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직접적인 필요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해당 개인이나 가족이 직접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참여정치는 일차적으로는 마을 내지는 지역공동체에서 이루어 자는 민주주의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행정적 민주주의가 아니고 민의 직접적 참여를 통하여 지역공동체의 모든 일이 결정되고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앙정치는 이것의 연장선에서 이루어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치는 위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일 것이다. 민주적 지역공동체들의 연대와 결속이 전제체제보다 훨씬 강하고 창조적일 것이다. 우리민족의 복지는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민주주의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역민주주의가 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고 민의 살림살이를 직접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직접민주주의는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아니다. 이것은 오늘 지구적 상황에서 세계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강대국이나 초국적 기업의 횡포를 민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길이며 통일민족국가의 강력한 민주적 기반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민주적 참여는 민족내부의 갈등을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민족의 화평과 결속을 이룩하는 첩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지역공동체적 민주주의를 통한 직접참여의 확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나 이스라엘에서나 덴마크와 같은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우리고유의 직접참여를 확대해나가는 정치발전의 궤도를 짜고 이에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통일민족의 복지를 이룰 수 있는 정치적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통일된 민족사회의 복지는 우선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는 민족내부의 갈등과 외세의 침입으로 많은 민족성원이 상처를 받았고 특히 빈자와 약자들이 더욱 커다란 상처를 받게 되었다. 통일된 민족공동체는 이런 민족성원들을 개인과 가족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민족공동체적 차원에서 치유하고 싸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상처받고 희생을 경험한 빈자와 약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민족복지가 완전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현금 우리는 남쪽과 북쪽사회에 있어서 그리고 흩어져 사는 우리동포들 사이에서 이런 빈자와 약자들이 자기 삶의 주역이 되는 사회복지와 사회안전이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지구시장은 남북사회에 강한 개방압력을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사회는 남이나 북이나 개방을 선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개방을 강요당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약자들 빈자들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공동체적 복지체제를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발전시켜야 민족복지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종교단체들이나 지역자치단체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민주적 장치를 하여야 할 것이고, 자원도 확보하여야 되겠고 전문인력과 지도력도 육성하여야 되겠으며 경험도 충분히 쌓아 나가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지구시장은 우리사회에 경쟁, 지구적 경쟁과 그 논리를 강요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민족은 이러한 적자생존의 논리, 심지어는 무한경쟁의 논리를 강요당하고 이 치열한 약육강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대립이 복합되며 상호충돌이 심화되어 폭력화될 전망이 눈앞에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이 모순과 갈등의 악순환으로 치닫아 심각한 지경에 이를 지도 모른다. 여기서 민족적 연대의 결속이라든지, 정의라든지, 협동이라든지 하는 민족복지를 위한 공동체형성의 기반이 무너질 지경이 될 까 염려된다.


우리는 우선 모든 사회관계에서 경쟁을 완화하고 협동을 진작시키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민족공동체내부에 차원 높은 협동정신을 함양하여야 할 것이고, 모든 갈등과 모순, 심지어는 적대관계라고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평화와 안전, 인간안보를 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민족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루어 갈 수 만 있다면 이 과제는 상당한 진척을 볼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해묵은 계급적 갈등, 지역적 갈등, 종파적 갈등, 족벌적 갈등을 정의롭게 그러나 평화롭게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민족 화합과 화평의 기반을 민족 사상적 전통을 통하여 종교적 사상의 기반을 통하여 구축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사람은 부추겨서 스스로 설 수 있게 하고 사회적으로 패자는 일으켜 세워서 주체가 될 수 있게 하고 서로서로 손잡고 함께 일어서는 과업을 이룩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민족통일은 민족복지를 위한 것이며 민족통일은 민족사회의 화해와 화합, 민족공동체 안에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통일을 향한 우리모두의 과제라고 생각되며 또한 이것이 민족통일과 민족복지를 이루는 우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동안 한국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나 한국선명화와 같은 민간단체를 통하여 북한을 위한 구호사업을 진행하여왔다. 특별히 지난 세계개혁교회연맹에서는 "북한교회의 봉사선교"를 세계적으로 돕도록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것은 물론 그동안 한국교회의 민족통일과 한반도통일을 위한 세계계적 협의과정에 힘입어 이루어 진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남북한교회는 사회봉사선교를 선교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로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교회가 봉사선교를 주요선교정책으로 정한 직접적인 원인은 각기 다를 것이지만 최근 남쪽교회에서는 봉사선교 즉 디아코니아를 교회의 선교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30여년동안 경제발전은 하였어도 경제적으로 가난한자나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자들을 보살피는 일을 상대적으로 게을리 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사회봉사선교의 전통을 실천하려고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우리교회의 봉사선교를 분석하면 미미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 잠재력은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북쪽에서 교회가 봉사선교를 논하게 된 것은 교회의 봉사선교를 위한 재정적 인적 역량 때문이 아니고 굶주린 민족의 현실에 도전을 받으면서 복음에 응답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는 국가가 사회복지의 문제를 다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극도의 경제난을 경험한 북쪽 사회에서는 지금 어려운 경험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북쪽동포들의 굶주림의 소식을 들은 우리한국교회는 북쪽교회의 봉사선교를 지원할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제 남북교회가 동역 하여 봉사선교를 실천함으로 서로 돕고 민족을 위한 봉사사역을 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이러한 봉사선교는 단순히 현안문제에 대한 대응하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은 다고 생각한다. 현금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으며 이 시장은 이유극대화와 무한경쟁의 논리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으며 이런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경제전체는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특히 북쪽 경제는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며 남쪽경제도 다른 형태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물론 대기업과 같은 초국적 기업이라든지 국제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은 성장하고 확대될 지 모르지만 우리민족성원들 중에서 남에서도 북에서도 상당한 희생을 경험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농민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는 물론 대부분의 중소기업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성원의 경제적 희생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자들과 약자들은 물론 소위 선진국에 있는 빈자와 약자들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남북교회의 교회의 선교봉사와 이를 위한 동역과 협력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세계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의 교회가 봉사선교를 위한 동역과 협력을 한다는 것은 남북의 사회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차원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우선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해외동포들을 위한 봉사선교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해외동포들은 그들이 살고있는 사회환경 속에서 각양각색의 경제적 희생과 특별한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남북의 교회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이나 구 소련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을 위한 봉사선교를 구상하고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전문인력 그리고 자원을 동원할 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남북교회는 우리민족과 동포를 위한 봉사선교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공동체들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는 시급하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의 교회는 현금 민족을 위한 봉사선교를 철저히 실천하고 이 실천경험을 토대로 세계적 차원의 봉사선교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남북교회는 우리민족과 동포를 위한 봉사선교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공동체들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는 시급하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의 교회는 현금 민족을 위한 봉사선교를 철저히 실천하고 이 실천경험을 토대로 세계적 차원의 봉사선교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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