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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9/6(수)
고대 생명사상의 원류와 생성  
古代 生命思想의 源流와 生成 - ­崔致遠을 다시 읽는다­
                               

                                               崔  英  成*


    Ⅰ. 머리말

 우리 나라에서 생명사상, 환경윤리 등 현 시대에 민감하고 절실한 문제들이 중요한 연구 주제로 등장한 것은 대개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였고, 또 이를 주도한 것은 서양철학 전공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구축할 만큼 뚜렷하게 성장한 감이 있다. 길지 않은 시일 내에 학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 시대의 요구가 그 만큼 크고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에는 이러한 분위기에 자극을 받아 동양철학 전공자들까지도 가세하여 ‘생명 존중에 대한 당위성’이라든지 ‘생명윤리’ 등에 대하여 다양한 논의를 펴고 있으며, 유교․불교․노장철학 등 전공 분야별로 그 심도를 더해가고 있다.
 생명에 관한 논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찍부터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동양의 경우만 하더라도 유가․불가․도가 철학 등 주요 철학사상에서 생명사상이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아 왔다. 중국의 철학자 방동미(方東美)는 중국사상사 전체가 생명사상으로 관통되어 있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이처럼 너무나 중요한 개념이요 명제이다 보니 새삼스럽게 ‘생명 존중의 당위성’을 강조하거나 부각시킬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 지난날 우리의 풍토였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동양철학, 특히 한국철학을 전공하는 학도이지만, 본고와 관련된 생명사상이라든지 생명윤리에 대해서 평소 공을 들여 공부한 바가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관심과 역량의 부족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주제를 초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철학 전공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룩한 생명사상에 대한 연구 성과는 매거(枚擧)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다만, 풍부한 연구 성과, 동․서를 넘나드는 다양한 학설의 등장, 정치한 이론 전개 등 부족한 것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에게 늘 한 가지 미련처럼 남는 것은 있으리라고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사상에서 생명사상의 원류를 찾자’는 일이 아닐까 한다. 역시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본 주제는 ‘생명사상’ 연구자들의 이러한 희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아도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상에서 생명사상의 원류를 찾는 일은 언뜻 보아 쉬울 듯도 하다. 여기서 굳이 북송 때 도학의 선구자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정초일반의사(庭草一般意思)’ 고사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好生惡死)이 만물의 정한 이치요,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것’(好生不嗜殺)이 천지가 만물을 생육(生育)하는 마음이라고 할 때,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명사상은 일찍부터 형성되었으리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동양의 경우 유․불․도 삼교사상(三敎思想)에서 불교․도가의 ‘범생물체적(汎生物體的)’ 또는 ‘범생명주의적’ 생명사상이나 유가의 ‘인본주의적 생명사상’을 구별할 필요도 없이 생명사상이 그 근저(根柢)에 깔려 있다. 한국사상 역시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것이 그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는데, 유․불․도 사상이 뿌리를 내리면서 생명사상은 더욱 넓게 퍼졌으며 보다 체계화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막상 생명사상에 대해 논하고자 할 때 기실 적지 않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특히 고대사상에서 그것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렵다. 무엇보다도 자료난이 크다. 필자에게 주어진 본고의 주제 역시 태생적으로 이러한 난제를 안고 있다. ‘최치원(崔致遠)을 다시 읽는다’는 부제가 주어진 것은 그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풍류(風流)’라고 하는 고유사상의 존재를 확인했고, 아울러 그 실체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린 바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고대 생명사상의 원류에 접근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듯하다. 최치원이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풍류사상의 실체를 분석하면서 ‘현묘지도(玄妙之道)’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증언을 했음에랴. 제법 흥미를 느낄 법도 하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워낙 자료가 단편적(斷片的)인 것들이요 그마저도 󰡔고운문집(孤雲文集)󰡕의 곳곳에서 펀언척자(片言隻字)를 뽑아내 엮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최치원의 학문 경향을 보면, 그는 자신의 이론이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데 철저를 기했던 학자는 아니었다. 현재 전하는 최치원의 글 또한 자신의 생각을 온전하게 담은 것이 적고, 대개 남의 요청에 따라 지은 것이거나, 전기・비문・원문(願文)・찬문(讚文)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의 철학사상을 파악,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이뿐만 아니라 문체가 전고(典故)와 대우(對偶), 성률(聲律)을 중시하여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변려문(騈儷文)인 것은 연구의 활성화에 근본적인 제약 요인이 된다.
 다만, 그는 당세(當世)와 관련하여 나름대로 확고한 문제의식과 사상가로서의 기질을 풍부하게 가진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문간의풍(文簡義豊)’한 글을 언뜻 보고 사상적 맥락과 체계를 찾아내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관심을 가지고 정독(精讀)을 하면 상당히 정밀한 사유의 편린과 흔적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필자는 비전공자로서의 약점에다 자료난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해야 하는 형편이다. 본고는 방외(方外) 학도의 글이니 만큼 전공의 영역, 전공자의 안목에서 문제삼을 것은 못된다. 턱없이 부족한 자료, 그것도 사상적 편린들을 모아 확대해석은 삼간 채 될 수 있는 한 자료를 제시하는 데 그쳤다. 이 방면의 전공자들에게 ‘연구 거리’를 제공한다는 데서 나름의 의의를 찾을 뿐이다. 여러 분석적인 논의는 필자의 역량 밖이라는 점을 덧붙여둔다.


    Ⅱ. 崔致遠의 東方觀과 東人意識

 최치원(孤雲 : 857~?)은 우리 나라 역대 선유(先儒) 중에서 ‘동(東)’에 함축된 의미와 상징성을 의식하고, 이를 언설(言說)로 표출하여 ‘동’의 의식과 문화와 인간론을 전개한 역사상 초유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려서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29세 때 신라로 귀국한 뒤 여러 글에서 조국의 위대함을 예찬하였는데, 의례 ‘동방(東方)’과 ‘동인(東人)’이 그 화두가 되었다.

빛이 왕성하고 충실(充實)하여 온 누리[八紘]를 비출 바탕이 있는 것으로는 새벽 해보다 고른 것이 없고, 기(氣)가 온화하고 무르녹아 만물을 기르는 데 공효가 있는 것으로는 봄바람보다 넓은 것이 없다. 생각건대 큰바람과 아침해는 모두 동방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보건대, 새벽해가 우니(嵎尼 : 동방)에서 떠오르매 광명이 만상(萬像)에 다 통하고, 봄바람이 진위(震位 : 동방)에서 나매 기운이 팔방의 끝까지 흡족하여, 마침내 능히 (A)천하의 어두움을 깨뜨리고 지상(地上)의 열매를 맺게 한다. …… (B)시험삼아 인재(人材)에 비유해 보더라도 어찌 물성(物性)과 다르겠는가.

‘동방’은 자연현상이 시작되고 만물이 비로소 피어나는 ‘생명의 방위’이다. 활발발(活潑潑)하게 살아 움직이는 방위이기에 ‘동방(動方)’이라고도 하였다. ‘동’은 우리말로 ‘새’인데 ‘새’가 들어가는 낱말을 보면, ‘샛바람[東風]’, ‘새밝・새벽・샛별[東明]’, ‘새봄[初春]’, ‘날이 샌다[啓明]’, ‘물이 샌다[漏泄]’, ‘새것[新]’ 등의 예에서와 같이 ‘처음’ ‘시작’ ‘새로움’ ‘밝음’ 등의 의미를 지닌다. 또 ‘새파랗다’라고 할 때의 경우처럼 ‘지극’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의 고유사상을 ‘밝사상’이라 하여 밝음과 연관시키는 것도 ‘빛은 동방으로부터’(oriente lux)라는 말을 인용할 필요조차 없이 동방과 직결된다.
 위에서 말한 새벽해와 봄바람은 모두 동방으로부터 나오는데, 새벽해는 온 누리에 광명을 비춰 주고, 봄바람은 만물이 생장하도록 최촉(催促)한다. (A)의 ‘지상의 열매를 맺게 한다’는 말은 동방이 생명의 방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최치원은 (B)에서 우리 동인의 어진 인성은 ‘천하의 어두움을 깨뜨리고 땅위의 열매를 맺게 하는’ 물성(物性)과 같이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과 호생지덕(好生之德)으로 충만해 있다고 하였다.
 최치원은 우리 나라 사람을 ‘동인’이라고 하였고, 또 우리 나라를 ‘동국(東國)’이나 ‘대동(大東)’ 또는 ‘해동(海東)’ 등으로 자랑스럽게 일컬었다. 동방이 만물시생지방(萬物始生之方)이라는 의미에서 ‘동국’이라는 칭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최치원의 철학사상은 이처럼 그의 독특한 동방관과 동인의식을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는 󰡔사산비명(四山碑銘)󰡕에서 자신의 동방관을 집중적으로 전개하였으며, 우리 동인의 어진 성품에 대해서 나름의 독특한 논리를 편 바 있다.

오상(五常)을 다섯 방위로 나누어 동방(動方)에 짝지어진 것을 인심(仁心)이라 하고, 삼교에 이름을 붙이되 정역(淨域)을 나타낸 것을 불(佛)이라고 한다. ‘인심’이 곧 부처이니 부처를 능인(能仁)이라 일컬음은 이를 본받은 것이다. 욱이(郁夷 : 우리 나라)의 유순한 성원(性源)을 인도하여 가비라위(迦毘羅衛 : 釋迦)의 자비(慈悲)의 교해(敎海)에 닿도록 하니, 이는 돌을 물에 던져 물결이 퍼져 나가는[石投水] 듯하고, 빗물이 모래를 모으는[雨聚沙] 것 같이 쉬웠다. …… (A) 지령(地靈)은 이미 ‘호생(好生)’으로 근본을 삼고, (B) 풍속은 ‘호양(互讓)’으로 주를 삼았음에랴. 화락한 태평국(太平國)의 봄이요, 은은(隱隱)한 상고(上古)의 교화라.

우리 태평국의 승지(勝地)는 사람들의 성품이 매우 유순하고, (C) 대지의 기운은 만물을 발생시키는 데 모아졌다[氣合發生]. ⋯⋯ 선(善)을 따르는 것이 물 흐르는 듯하다. 이런 까닭에 군자의 풍도(風度)를 드날리고 부처의 도에 감화되어 젖는 것이 마치 붉은 인니(印泥)가 옥새(玉璽)를 따르고 쇠가 거푸집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위의 글은 고승과 불사(佛寺)에 관한 비문들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어진 성품과 불교의 자비를 동일시하여 ‘인심즉불(仁心卽佛)’이라 하거나, 또 물의 근원이 반드시 바다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순한 동방 사람들은 성품이 어질기 때문에 애써 이끌지 않아도 자비의 교해(敎海)에 귀의하게 된다느니, 주형(鑄型)대로 주물이 만들어지듯이, 우리 나라에서 불도가 성행하는 것은 그 틀이 본래부터 그러하다고 하는 등, 불교와 관련시켜 논술하고 있는 것은 비문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최치원이 동방과 우리 민족을 예찬하면서, ‘동방’이 지니는 상징성에 유난히 주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동방을 만물이 처음으로 피어나는 방위라는 의미에서 ‘동방(動方)’이라 하였다. 그리고 동방은 ‘인방(仁方)’이며 계절로 치면 봄[春]에 해당한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위에서 ‘태평국의 봄’이라 한 것은 (A)의 ‘호생위본(好生爲本)’과 연결되는 것으로서, 우리 동방은 항상 생명체를 생겨나게 하는, 춘의(春意)가 발동하는 생명의 방위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동인은 애초부터 어진 마음과 뭇생명체를 살리기를 좋아하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동방은 ‘인’에 배합되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성품은 어질고 유순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지기(地氣)가 그렇게 시킨다고 하였다. 그의 이른바 ‘지지사연(地之使然)’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위의 논리는 대부분 유가의 경서(經書)와 중국의 역사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호양부쟁(好讓不爭)’(󰡔山海經󰡕), ‘인이호생(仁而好生)’(󰡔風俗通󰡕), ‘천성유순(天性柔順)’(󰡔후한서󰡕) 등은 우리 동인의 천부적인 민족성을 특징적으로 말해 준다. 특히 그가 (C)에서 동방의 위대함을 예찬하면서 ‘지기(地氣)가 만물을 발생시키는 데 모아졌다[地合發生]’고 한 것은 ‘생(生)의 철학’, ‘생명사상’과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 󰡔산해경󰡕을 보면 우리 나라 상고대 국가의 하나인 군자국(君子國)과 청구국(靑丘國)에 대한 기록이 있다. 청구국의 ‘청’이 동방을 의미하는 바와 같이 동방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아(爾雅)󰡕에서는 “동쪽으로 해뜨는 곳에 이르면 그곳이 태평이다. 태평국 사람들은 어질다”고 하였고, 󰡔회남자󰡕에서는 “동방에 군자국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서 보면 ‘동방’은 ‘인’으로 연결되고 또 ‘인’은 ‘군자국’으로 연결됨을 볼 수 있다. 동방은 오상(五常)으로 ‘인’에 해당하는데, 이는 우리 동방 사람들의 ‘천성이 어질다’는 것과 부합한다. 󰡔후한서󰡕 「동이열전」을 보면

    󰡔예기󰡕 「왕제(王制)」에 말하기를, “동방을 이(夷)라 한다”하였다. ‘이(夷)’란 ‘저(柢)’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해서 만물이 땅에 뿌리박고 생겨남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성이 유순하여 올바른 도리로 인도하기가 쉬운지라,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기에 이르렀다. ⋯⋯ 그런 까닭에 공자도 구이에 가서 살고 싶어했던 것이다.

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 나라를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고 표현한 것은 중국인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군자의 풍도가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바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은 나무의 뿌리가 새싹을 돋아나게 하는 것과 같이 참으로 어진 성품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군자국 사람들의 온후(溫厚), 순량(醇良)한 풍속과 양보하기를 좋아하는 풍도는 유교에서 가장 이상시하는 것들로서, ‘군자국’이라는 일컬음을 받는 데 적절한 것이라 하겠다. 최치원의 동인의식은 이와 같은 그의 동방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동인의식’은 최치원 철학사상의 체계와 맥락을 가늠케 하는 관건(關鍵)이다. 비록 그에게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신라 하대(下代)에 있어 중요한 사상적 동향의 하나인 이 ‘동인의식’을 크게 부각시키고 고양한 학자가 바로 곧 최치원이다. 그가 이를 집성하여 ‘민족의식의 자각’을 널리 고취시켰다는 데서, ‘동인의식’하면 바로 최치원을 연상하게 된다.
 최치원은 󰡔사산비명󰡕 등에서, 동인의식과 관련하여 일관된 논리를 전개하였다. 특히 「해인사 선안주원(善安住院) 벽기(壁記)」에서는, 자신이 동방과 동인에 대해 서술한 것을 대통 구멍으로 표범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東人峻階, 義取窺豹)고까지 말하였다. 이 「벽기」에는 최치원의 자아의식・주체성이 결정적(結晶的)으로 집약되고 있다. 그는 「벽기」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기󰡕 「왕제」편에 이른바, “동방을 이(夷)라 한다” 하였고, 범엽(范曄)은 “이(夷)는 뿌리라는 뜻이다.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는데 만물이 땅에 뿌리를 박고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성이 유순하여 도리로써 사람들을 인도하기가 쉽다”고 하였다(󰡔후한서󰡕). 나는 이에 대해, “이(夷)는 훈제(訓齊)하기가 까다롭지 않고 쉽다[訓齊平易]는 것이니, 교화(敎化)・제화(濟化)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고 하노라. 또 󰡔이아󰡕를 보면, “동쪽으로 해뜨는 곳에 이르면 그곳이 태평이다. 태평국의 사람들은 어질다”(「釋地」편)고 하였다. 󰡔상서󰡕에서는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우이(嵎夷)에 살게 하였으니 양곡(暘谷)이라는 곳이다. 동녘에서 시작하는 일[東作]을 고르게 차례로 할지니라!”(虞書, 堯典)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대왕의 나라(新羅)는 날로 달로 상승하고 왕성하며 물은 순조롭고 바람은 온화하니, 어찌 다만 깊숙이 겨울잠을 자던 것이 다시 떨치고 소생(蘇生)하는 것뿐이겠는가. 아마도 돋아나는 새싹[句萌]을 무성히 자라도록 하니, 생기고 변화하며 생기고 변화하는 것이 동방[震]을 터전으로 한다.

윗글의 말미에서 최치원은 “생기고 변화하며 생기고 변화하는 것이 동방[震]을 터전으로 한다”고 하면서, ‘생화생화(生化生化)’라는 말을 하였다. ‘생화’란 ‘생성과 변화’ 또는 ‘생육(生育)과 화성(化成)’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생성은 변화를 위한 생성이고 변화는 새로운 생성을 위한 모태(母胎)가 된다. 이것은 마치 아이가 태어나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어 2세를 낳는 이치와 같다. 또 이것은 우주만물의 생(生)․장(長)․성(成)․수(遂) 과정이 모두 화(化)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최치원이 강조한 ‘생화생화’는 생생지리(生生之理)를 말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것은 곧 󰡔주역󰡕 「계사 상(繫辭上)」 제5장에서 말하는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라든지 「계사 하」 제1장에서 ‘천지지대덕왈 생(天地之大德曰生)’이라 한 것과 그 맥락이 상통한다. 정자(程子)는 ‘생생지위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생생지위역’, 이것은 하늘이 도로써 삼는 것이다. 하늘은 다만 ‘생’으로써 도를 삼는 것이요, 이 ‘낳는 이치’(生理)를 잇는 것이 선(善)이다. ‘선’에는 하나의 ‘원(元)’의 의사가 있으니, ‘원’은 ‘선’의 어른으로, 만물이 모두 봄의 뜻(春意)을 가지고 있음이 곧 ‘계지자선야(繼之者善也)’인 것이다.

위에서 ‘춘의’란 이른봄에 만물이 피어나는 기분을 말한다. 이처럼 생생론(生生論)은 󰡔주역󰡕의 기본적인 논리 구조의 하나이다. 생극론(生剋論)으로 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최치원은 비록 명언(明言)하지는 않았지만, 󰡔주역󰡕에서 말하는 ‘생생지리’를 체화(體化)하였던 인물인 듯하다. 당시 국망(國亡)의 전조(前兆)들을 바라보면서 “시국이 위태로우면 생명체 모두가 위태로운 법이라”고 하며 안타까워했던 최치원의 노심초사(勞心焦思)는 이점을 잘 보여준다.
 최치원은 위 「별기」에서 동방은 생명의 방위로서 만물이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방위이며, 동인은 만물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천성을 지니고 있어, 도리를 가지고 교화하는 것이 쉽다고 하였다. 󰡔후한서󰡕의 저자 범엽은 ‘夷, 柢也’라 하여 새로운 해석의 본을 보였거니와, 최치원은 ‘夷, 易也’라고 하여 또 다른 해석을 덧붙였다. ‘이(夷)’가 ‘평탄(平坦)’, ‘평이(平易)’ 등의 의미로 사용된 예는 빈번하여 그 근거를 밝힐 필요조차 없지만, 최치원은 특별히 󰡔후한서󰡕에서 ‘도리로써 사람들을 인도하기가 쉽다’(易以道御)라고 한 말에 근거하여, 교화 또는 제화(濟化)가 쉽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최치원은 한국 고유사상의 본령을 ‘생(生)’과 ‘화(化)’ 두 축으로 압축시켜 논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그의 동방관과 동인의식에서 나온 것으로서, 풍류사상의 해석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Ⅲ. 「鸞郞碑序」에 보이는 ‘包含三敎 接化群生’의 의미

 최치원의 동인의식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사상적 밑뿌리를 캐고자 한 데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고유사상의 원형을 탐구하려 했던 데서 잘 나타난다. 고유사상에 대한 탐구의 결정(結晶)은 오늘날 76자가 전하는 「난랑비서」 첫머리의 내용에 집약되었다고 본다.

우리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교(敎)를 설(設)한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내용은 곧 (A)삼교를 포함(包含)하는 것으로서, (B)군생(群生)을 접촉하여 감화(변화)시킨다. 이를테면, 들어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 : 孔子)의 주지(主旨)와 같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주사(周柱史 : 老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 : 釋迦)의 교화와 같다.

비록 짧은 글이기는 하지만, 최치원이 자신의 사상적 주형(鑄型)에 따라 고유사상을 나름대로 해석, 정의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볼 때, 풍류도에 대한 이해를 최치원의 사상이라 해도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최치원의 설명한 풍류사상의 실체는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 여덟 글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뒷날 동학(東學)에서 이점을 간취하고 포(包)와 접(接)이라는 교단의 기본 조직을 만들었듯이, 전자를 풍류도의 체(體)라고 한다면 후자는 용(用)이라 할 수 있다. ‘包含’은 “본래부터 그 속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최치원이 ‘포함삼교’라 하고, 세 가지 예를 든 것은 삼교사상의 핵심적 요소를 가지고 풍류사상의 실체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풍류도의 핵심 강령이 삼교사상의 중요 요소와 부합한 것으로 파악하였음을 시사한다. 최치원이 본 풍류사상은 유・불・도 삼교사상과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최치원이 ‘현묘한 도’라고 규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묘’란 말은 󰡔노자󰡕 제1장의 ‘玄之又玄, 衆妙之門’에서 인용한 말이요, 이 대목에 앞서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이라는 말이 있음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왕필(王弼)의 주(注)에 의하면, “유와 무가 같은 데서 나와 이름을 달리할 뿐이니, 그 ‘같은 데’를 일러 ‘현(玄)’이라 한다. 이 유현하고 유현한 것은 온갖 미묘함이 나오는 근본이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풍류도를 ‘동(同)으로서의 현(玄)’에 대치시키면, 풍류도야말로 중묘(衆妙)가 나오는 근본이요, 풍류도의 핵심 요소로 주어진 세 가지는 모두 풍류도로부터 나왔으면서도 각기 그 성격을 달리하니, 위에서 이른바 ‘동출이이명(同出而異名)’이란 말의 의미에 부합하게 된다. 따라서 풍류도의 성격은 노자의 이른바 ‘동위지현(同謂之玄)’이요 ‘중묘지문’ 그 자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최치원은 「대숭복사비문」 서두 부분에서 동방과 동인을 논하면서 “중묘지묘(衆妙之妙)를 무슨 말로써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새삼 탄성을 발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학자 후쿠나가(福永光司)에 의하면, 노자의 ‘현’은 많은 변화와 다양성을 안에 간직한 근원적인 하나[一]이며, 그 하나에서 세계의 만물이 나타나고 현상화된다고 한다. 이 ‘현’은 현묘지도로서의 풍류도에 비할 수 있다. 즉, 현묘지도는 ‘포함삼교’로 구체화되는데, 여기서의 ‘포함’은 삼교의 핵심적 내용이 본래부터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지만, ‘많은 변화와 다양성’을 간직한 풍류도로부터 삼교사상과 부합되는 내용들이 피어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포함’이란 두 글자에 ‘생’의 의미가 내함(內含)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음직하다. 󰡔노자󰡕 제42장에서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하여 우주만물의 생성과정을 밝힌 바 있거니와, 이 때의 ‘생’을 ‘포함’이란 말과 연결시켜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현묘’란 말은 풍류도의 자연관화적(自然觀化的)이고 과화존신적(過化存神的)인 신비성과 연관된다다. 여기서 ‘접화군생’의 ‘화(化)’가 문제로 되는데, 이는 󰡔주역󰡕에 이른바 ‘감이수통(感而遂通)’이라든지 최치원 자신이 자주 말하는 ‘유감필통(有感必通)’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매우 신비적이고 추상적인 경지라 할 수 있다. 한국사상의 특징은 합리성과 정감성(情感性)・신비성을 함께 지녔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정감성․신비성은 ‘풍류’라는 말 자체의 함의(含意)에서 엿볼 수 있다. 김형효(金炯孝)는 풍류도의 정감적 성격을 지적하고, 접화군생을 ‘정감적 실천세계’라고 하였다. 한편, 뒷날 이 땅에서 유교가 성행함에 따라 우리 고유사상이 갖는 신비적 성격이 차츰 희박해져 간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사상을 논할 때 신비적 성격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 할 것이다. 이러한 신비적 성격을 가진 풍류도였기에 최치원이 ‘현묘지도’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치원은 ‘화(化)’를 자주 말하였다. 그러나 ‘접화(接化)’라는 말은 그 전고를 찾기 어렵다. 최치원의 「지증대사비문」 서두 부분에 나오는 ‘은은상고지화(隱隱上古之化)’는 그 앞 구절인 ‘풍속교양위주(風俗交讓爲主)’와 직결되는데, 호양부쟁(互讓不爭)하는 우리 민족의 품성을 상고시대의 교화에 견준 것이다. 여기서의 ‘화’는 분명 ‘교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화’에는 ‘교화’, ‘감화’, ‘덕화’, ‘변화’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재세이화(在世理化)’는 ‘세상에서 변화를 섭리(攝理)한다’는 말이니 이 때의 ‘화’는 ‘변화’라는 의미일 것이다. 󰡔중용󰡕에서 말하는 ‘찬화(贊化)’는 천지 자연이 만물을 만들어 자라게 한다는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가리키는 것이다.
 접화군생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화’의 전통을 잘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단군신화에는 ‘이화(理化)’ ‘원화위인(願化爲人)’ ‘웅내가화(雄乃假化)’라고 하여 ‘화’라는 단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것을 ‘변화의 원리’로 규정한 학자도 있다. 그에 따르면 ‘화’의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신(神)과 물(物)이 각각 변화하여 신물통일체(神物統一體)로서의 인간 존재가 생성되는 원리를 뜻함이니, 이는 바로 자연의 생성 변화 원리를 말함이요, 다른 하나는 만물과 군생(群生)을 다스려 세계를 변화시키는 이른바 이화(理化)를 뜻한다. 여기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도덕적 교화원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내용을 가진 변화원리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 것인가. 대체로 객관적인 천지 자연의 생성변화 원리를 내면화시켜 인간주체적으로 자각했을 때 신명(神明)의 덕이 체득되어지는 동시에 비로소 신이 인간에게 준 천명(天命), 즉 신의 명령으로서의 도덕적 교화원리가 밝혀지는 것이다.

위의 논술은 ‘접화군생’의 의미에 대해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할 것이다. 이로써 보면 변화가 곧 교화요 덕화요 감화인 것이다. ‘접화군생’에서의 ‘화’는 위에서 말한 ‘화’의 여러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광범위한 것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은 새겨서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접화군생’은 ‘홍익인간(弘益人間)’보다 그 뜻이 더욱 넓은 한국 고유의 ‘어짊’의 표현이요, 풍류도의 범생물적인 생생(生生)의 자혜(慈惠)를 의미하는 말이다. 초목군생이나 동물에까지도 덕화(德化)를 베풀어 생을 동락동열(同樂同悅)하도록 하는 것을 ‘접화군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위와 같은 경지는 󰡔주역󰡕 중부괘(中孚卦)에 이른바 신급돈어(信及豚魚)’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신급돈어’란 곧 지극한 믿음이 무지한 동물인 돼지와 물고기까지도 감동시킨다는 말인데, 돈어야말로 사물 가운데 무지한 것들이니 감동 내지 감화시키기 어려운 것들이 아닐 수 없다.


Ⅳ. 百濟金銅大香爐를 통해 본 生命思想

 필자는 평소 한국사상의 원형에 대해 나름대로 탐구한 바 있고, 그를 살필 수 있는 자료 가운데 「난랑비서」와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를 중요한 것으로 꼽고자 한다. 「난랑비서」가 우리 나라 고대 생명사상을 살필 수 있는, 문자로 된 자료라면, 1993년 10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陵山里)에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조형물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본다. 또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지만 최치원이 「난랑비서」에서 이른바 ‘포함삼교 접화군생’의 이치를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이 향로를 통해 형상화시켰다고 본다. 본고에서 백제금동대향로를 이끌어 연결시킨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 향로는 조형미라든지 회화적 구도, 예술성 등에 있어 백제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더욱이 그에 담긴 우주관․자연관․삼교사상 등 조형적 배경은 실로 백제 인문정신의 총화(叢花)라 할 수 있다. 64㎝에 달하는 이 금동향로는 크게 뚜껑과 몸통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뚜껑 위에는 힘차게 날갯짓하는 봉황(또는 天雞)을, 몸통 아래 좌대(座臺) 부분에는 역동적인 모습의 용틀임을 조각하여 양과 음의 세계를 상징하였다. 뚜껑에는 수십 개의 산봉우리가 열 지어 있고 심산유곡(深山幽谷)이 펼쳐져 있는데, 이는 중국 한대(漢代) 박산향로(博山香爐)의 영향인 듯하지만 기실 백제 산수문전(山水文塼)의 평면적인 산들을 입체화시켜 놓은 듯하다. 산과 폭포와 시냇물 사이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신선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낚시 또는 수렵을 하거나 머리를 감기도 한다. 뚜껑에는 이밖에도 봉황과 용을 비롯한 상상의 길짐승과 날짐승,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호랑이․사슴․코끼리․원숭이․멧돼지 등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한 마디로 백제의 도선사상(道仙思想)을 엿보는 데 중요한 시사를 준다.
 몸통 부분에는 활짝 핀 연꽃이 장식되어 있는데, 연꽃의 몸체에는 두 신선과 날개 달린 물고기를 비롯한 수중생물들, 물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슴과 학 등을 새겨 놓았다. 화생만물(化生萬物)의 이치를 연꽃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서 ‘연화화생(蓮花化生)’이라고 하는 불교의 생성관(生成觀)을 엿볼 수 있다. 연꽃은 예로부터 신비의 광명과 생명 탄생을 담은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불교에서 매우 중시한다. 그것이 상징하는 ‘광명’과 ‘생명’은 실로 우리 고유사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부분은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 향로는 유학사상과 관련해서도 중요성을 띤다. 봉황 바로 아래에서 다섯 명의 악사가 음악을 연주하고, 범․사슴․멧돼지 등 수많은 짐승들이 즐겁게 춤을 추며, 물 속에서도 물고기가 재미있게 노는 모습은, 곧 󰡔서경󰡕에 이른바 “팔음의 악기가 잘 어울려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어야 신과 사람이 화합할 것이다”고 한 것이라든지 “석경(石磬)을 치고 어루만지자 온갖 짐승이 따라서 춤을 추었다”고 한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유교의 정치이념을 형상화한 것으로 ‘신인상화(神人相和)’라는 이상적인 경지를 지향하고 있다.
 이로써 본다면 이 향로는 실로 유․불․선 삼교의 종합적인 모형도인 셈이다. 이를 통해 백제에서의 ‘삼교합일(三敎合一)’의 경지와, 삼교 각각의 사상적․종교적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최치원이 말한 ‘포함삼교’의 의미를 조형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백수솔무(百獸率舞)하고 동락동열(同樂同悅)하는 형상은 궁극적으로는 󰡔주역󰡕 중부괘에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친다’는 신급돈어(信及豚魚)의 경지를 지향한 것이라 하겠다. 상하의 믿음이 지극하면 무지한 사물까지도 감통시킬 수 있다는 이상적인 정치이념의 제시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목군생이나 동물에까지도 덕화와 감화를 베풀어 자혜(慈惠)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접화군생’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Ⅴ. 맺음말

 왜 최치원을 통해 ‘고대 생명사상의 원류와 생성’을 논해야 하는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최치원이 우리 고유사상인 풍류도에 대해 역사상 처음으로 그 존재를 확인하였으며, 또 그에 대해 ‘포함삼교, 접화군생’이라는 정의를 내렸다는 데 기초한다. 이에 대해 최치원 개인의 철학사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라는 점과, 또 풍류에 대한 정의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함축적이어서 그 실체 파악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 선언적인 느낌이 많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문제 제기가 있을 법하다.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논리를 역대의 많은 자료에 근거하여 전개하였다. 적어도 논리적 근거면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 나라 상고대의 자료가 퍽 영성(零星)한 실정에 비추어, 최치원을 통한 유추(類推)가 불가피한 측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치원은 우리 고유사상의 실체를 인정하였고, 그것을 생명 존중 사상과 연결시켜 논하였던 최초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는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예찬하는 글이 수삼편 있는데, 예찬의 근거는 대체로 우리 민족이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였으며, 천성이 어질어서 교화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 쉽다는 것이었다. 그가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생(生)’과 ‘화(化)’의 문제는 최치원이 보는 우리 고유사상의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화두였다. 이것은 그의 동방관과 동인의식과 직결되어 있다. 민족주체성의 표출이기도 한 동방관과 동인의식은 우리 나라 고대 생명사상과 관련하여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최치원은 우리 나라가 지리적으로 동방에 위치하는 점을 퍽 의미 있게 해석하였다. 그에 의하면, 동방은 오행상으로 ‘인(仁)’, 계절상으로 ‘봄’에 해당한다. 본초학(本草學)에서 복숭아, 살구의 씨를 도인(桃仁), 행인(杏仁)이라고 하거니와, ‘인’은 만물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본성이다. 따라서 인방은 곧 동방(動方)으로 만물이 피어나는 생명의 방위, 살아 움직이는 방위라 할 수 있으니, 그가 우리 나라를 인방(仁方)이니 인역(仁域)이니 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예부터 청구국(靑丘國)이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청’ 역시 동방을 뜻하며 봄에 만물이 파릇파릇 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최치원은 중국측 여러 사서(史書)를 이끌어 그의 독특한 동방관을 전개하였는데, 우리 동방 사람들의 어진 성품을 강조하였으며,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일찍부터 생명사상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부각시켰다. 최치원의 동방관에는 이와 같이 ‘생의 철학’, ‘생명사상’이 담겨 있다.
 최치원은 풍류사상의 실체를 해석하면서 ‘포함삼교 접화군생’ 여덟 자로 요약하였다. 이것은 우리 고대 생명사상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를 던진다. 최치원이 파악한 ‘생’과 ‘화’의 두 축은 체용론(體用論)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포함삼교’가 단순한 ‘삼교의 화합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차원에서 새로운 것의 출현을 내함(內含)하는 것이라 할 때, ‘포함’이란 두 글자에 ‘생’의 의미가 내함(內含)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음직하다.
 포함삼교가 ‘체’라면 접화군생은 ‘용’이라 하겠다. 접화군생은 홍익인간의 도덕적 교화원리보다 그 뜻이 더 넓은 범생물적인 생생(生生)의 자혜(慈惠)를 의미한다. 초목군생이나 동물에까지도 덕화를 베풀어 동락동열(同樂同悅)하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치원이 말하는 ‘화’는 자연의 생성 변화 원리이자 도덕적 교화 원리이기도 하다. 주로 감화․덕화․제화(濟化)의 의미로 사용되면서도 때대로 변화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최치원은 우리 고유사상을 ‘생’과 ‘화’의 두 축으로 이해하면서, 생명 존중의 단계에서 머무르지 않고 모든 생명체를 감화․변화․교화시키는 단계에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서 우리는 최치원 생명사상, 아니 우리 민족의 생명사상의 특성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본고를 마무리하면서 유의미수(有意未遂)한 점이 많다는 점을 고백한다. 무엇보다도 최치원 이전의 생명사상에 대해 개괄적으로나마 살피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점은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로 알고, 앞으로 연구를 계속하여 그것이 최치원의 생명사상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맥락에 대해 밝히도록 할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를 우리 고유의 사상, 특히 최치원의 「난랑비서」 내용과 연결시킨 것은 보는 이에 따라 이론(異論)이 있을 것이다. 많은 교시(敎示)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未濟小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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