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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4(화)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위한 윤리  

소병욱 신부

Ⅰ. 서론

생명과 윤리라는 두 실재가 합하여 하나의 과학적 실재가 된 생명윤리(bioethics, bioetica)가 우리 한국사회와 학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구미 선진국보다 약 10년 늦은 80년대 초반부터이다. 산업사회의 경제적 가치관에서 인간중심의 가치관에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생명윤리가 학문적이고도 실천적인 자리 매김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실천적 생명운동은 그 철학적 기초를 요구하고 있으며, 생명과학과 의학의 영역에서는 만인 공감의 구체적인 윤리지침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생명의 성성(聖性)과 존엄성을 선포하는 한국교회는 그 선포하는 바가 신학의 지평뿐 아니라 하느님의 자연적 모상인 모든 인간의 동의와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과학적·철학적 지평의 그것이어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생명 윤리의 주제들은 그 본성상 교도권과 신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더 넓은 인간이성의 영역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인간 자신에 의해서, 인간의 이성적이고도 책임성 있는 보살핌을 통해서 자연세계 뿐 아니라 인간세계까지도 인도하기를 원하신다."1) 우리는 본고를 통하여 학문으로서의 생명윤리를 그 개념정립에서부터 시작하여(Ⅱ), 기원과 역사를 소개하고(Ⅲ), 생명윤리와 관련한 가톨릭 교회 및 윤리신학의 기여와 그 현주소를 밝혀보고자 한다(Ⅳ). 이어서 생명윤리의 철학적 기초를 제시한 후(Ⅴ), 생명윤리의 이성적 논거를 위한 윤리이론(Ⅵ)과 윤리원칙들(Ⅶ)을 알아본 다음, 생명윤리의 대상 및 범위와 관련한 방향 제시로 결론을 삼고자 한다. 그리하여 아직도 생명윤리학 연구의 초기 단계에 있는 한국에서 구체적인 생명윤리 관련 문제들을 연구할 수 있는 작은 이론적 기초가 되었으면 한다.
 
Ⅱ. 생명윤리란?

학문으로서의 생명윤리학은 형성도정에(in fieri) 있기에 아직도 만인동의의 정의, 방법론, 범위, 방향, 과제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 구미 각국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각 학문영역에서 생명윤리 관련 문헌, 자료, 저술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는 주요 동기는 생명과 관련된 인간 활동의 윤리적 조명과 더불어 학문으로서의 생명윤리가 갖는 교차연구(interdisciplina)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생명윤리학은 우선적으로 자연과학, 인간학, 윤리학의 학문적 기초들을 통하여 성립된다. 특별히 생물학과 의학의 지식을 통하여 과학적 기초를 얻는 생명윤리는 인간학과 윤리학을 포함하는 철학적 반성을 통하여 윤리규범적 지평을 여는 복합적 학문이다. 나아가서 윤리신학, 사회학, 정치학, 법철학은 생명윤리의 간과할 수 없는 기초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연구적 특성으로 인해 혹자는 생명윤리에다 하나의 독립적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부여하기보다는 그것을 하나의 문화적 운동으로 보고 싶어한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명윤리학은 그 안에 부여받은 학문적 기초와 원리들을 통하여 과학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고 있다. 과학으로서의 생명윤리는 윤리학 영역에서 인간생명뿐 아니라 그와 함께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의 삶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궁구하고 있다.

생명윤리의 교차연구적 특성 때문에 개념정의도 각 학문적 시각에 따라 강조점이 상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E. 스그레치아(Elio Sgreccia)와 함께 생명윤리의 개념을 윤리철학의 한 분야로 개념 지우고 그 개념정의의 정당성을 본고 안에서 계속 찾아볼 것이다. 그에 의하면 생명윤리는 인간생명에 대한 간섭, 특히 의학과 생물학에서의 실행 및 그 발전과 관련된 간섭들의 정당성 여부를 고려하는 윤리철학의 한 분야이다.3) 그는 생명윤리학의 여러 저자들 중 가장 명확하게 생명윤리를 윤리철학의 한 분야로 매김하여 인간생명에 대한 윤리철학적 반성으로 요약하고 있다. [생명윤리 백과사전]은 생명윤리를 "생명과학 및 보건 영역에서의 인간행동을 윤리적 가치들과 원칙들에 비추어 검증하고 조직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개념 지우고 있다. 이 정의는 생명윤리의 대상을 생명과학 및 보건의 영역에서의 인간행동으로 정하고 그 방법론으로 윤리적 가치들과 원칙에 따른 연구를 제시하고 있다. V.R. 포터(Van Resselaer Potter)는 생명윤리에 대해 무엇보다 먼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생물학을 이용하려는 노력"으로 말하고 있으며, 초기 생명윤리연구소로 유명한 해스팅연구소의 소장인 D. 캘러헌(Daniel Callahan)은 "사회학적, 심리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보다 보다 나은 결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의사와 과학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론을 연구하는 새로운 분야"라고 말하여 생명윤리의 공동연구적 특성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로이(D. Roy)처럼 "개인과 단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일체의 여건을 조성하려는 시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거(A, Varga)처럼 "생명윤리는 생명과학의 영역에서 인간행위의 윤리성을 연구한다. 생명윤리는 의학윤리를 포함하기는 하나 그것이 의학의 차원이 아닌 생명과학들로부터 제기된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인 한 전통적인 의학윤리의 문제들을 뛰어넘는다"라고 말하며, 의학윤리의 발전적 형태로서의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호페(O. Hoffe)는 생명윤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서술을 한다: "생명윤리는 생물학 및 의학의 연구와 치유에 관한 최고의 발전과 그 가능성에 힘입어, 출생과 삶 및 죽음에 관한 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생명윤리는 무엇보다 먼저 낙태, 불임수술, 산아조절, 유전자 조작, 안락사 및 인체실험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연구한다."4)

이러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시도된 설명들을 볼 때 생명윤리의 내용과 방법론, 학문적 자리 매김이 명확한 스그레치아의 개념정의가 가장 수용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Ⅲ. 생명윤리의 기원

의료행위에 대한 철학적 반성은 이미 고대로부터 시작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다. 고대 로마의 갈레노(129-199년 경) 시대에 이미 "훌륭한 의사는 곧 철학자"라는 말이 있었으며,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또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현대의 어느 저자는 "의학기술이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고서 어떻게 그가 가진 병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인가"라는 간단한 말로 의료와 철학적 인간학의 관계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5) 병은 인간이 가지고 있고 의학은 병든 인간을 치유하는 것이므로 병과 인간을 분리하여 병만 다스리는 의학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학에는 언제나 철학적 인간학과 윤리철학의 대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경험과학은 인간의 본질을 그려내지 못하며 인격의 모든 면모를 다 파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연과학, 의학, 생물학은 인간의 모든 면모에 개입하고, 인간생명의 시작과 성장에 조작을 가하여 그를 변용시키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영, 육, 정신의 분리될 수 없는 합일체인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의학과 생물학이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할 때는 필연적으로 철학 및 신학과 조우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생명윤리는 바로 이러한 생명현상을 다루는 학문들과 철학의 만남에서 시작되고 성장하였다. 병든 인간의 치료라는 의학의 전통적인 역할만 인정되었던 시대에는 의학윤리라는 이름으로 취급되던 윤리문제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의학의 사명과 역할이 치유뿐 아니라 인간의 계발과 변용을 통한 인간의 복지 전체에 있다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다루는 학문과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의학윤리학이 오늘날 생명윤리학 안에 자리잡고, 생명윤리는 곧 철학으로 자리 매김되는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의 생명윤리는 과거 생명에 대한 의학적 개입의 윤리적 반성을 기원으로 하여, 생명과 관련된 현대과학의 비약적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성장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과학, 의학의 분야에서 일어난 기술상의 진보는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급격히 증가시키게 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그러한 능력들의 현실화로 인한 윤리적 문제에 스스로 봉착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삶과 죽음의 의미 자체에마저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기술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객관적 실재일 뿐 아니라, 인간자신의 질의 변화, 인간기원의 기술적 조작 및 그의 정신과 사고의 변화까지 가져오는 주체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과학기술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근본문제, 즉 생과 사의 문제, 창조질서의 문제에까지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이 혼란은 특히 유전공학적인 조작, 산과학(産科學)의 기술적 발전, 지속적인 생명연장기술 등을 통하여 대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인간의 생명문제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다루는 모든 과학자들, 정책결정자들에게 가장 심각히 요청되는 것은 자신들의 직무를 가장 강력하고도 완벽한 윤리적 태도 위에서 수행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생명과학 종사자들과 의료인들, 국가의 정책결정자들, 입법가들은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 앞에서 객관적 윤리규범과 보편적 윤리원칙에 근거한 판단과 행위를 결단할 윤리지식을 갖추지 못하여 스스로 주관적 가치평가와 윤리적 상대주의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

인간생명에 대한 윤리·도덕적 각성은 생명과학과 의학의 기술발전에 그 일차적 동인을 발견할 수 있으나 정치·사회적 요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의료윤리를 전문적으로 다룬 저술이나 잡지가 가톨릭 교회 외에는 거의 전무했고, 어느 의과대학에서도 의학윤리를 정규교과목으로 설치 한 곳이 없을 정도였던 1970년대 초, 의학윤리에 대한 관심이 미국에서부터 갑자기 고조되기 시작했던 것은 역시 인간과 인권에 대한 정치·사회적 관심의 증대가 그 원인이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일기 시작한 미국의 흑인민권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여성과 노인, 어린이의 권리에 대한 각성, 군비축소운동, 환경보호운동 등은 모두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인권운동, 인간성 보호 운동이었다. 당시 미국의회를 통과한 노인의료보험(medicare)과 의료보호제도(medicaid)를 중심으로 한 의료의 사회화문제에서부터 과잉진료 문제, 의사-환자와의 관계 등에 따르는 수많은 윤리문제에 이르기까지 의료와 관련된 윤리도 중요한 윤리학의 연구분야임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6)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에서 보건의료기관들이 보여주고 있는 비윤리적인 모습들,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대인들의 삶 자체의 의료화 등은 더욱더 의료의 윤리적 반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삶의 의료화는 곧 의학의 사회화를 가져왔고 여기에 필연적으로 의료인, 행정가, 정치가 등의 개입이 뒤따르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생명의 시초, 생명의 유지와 생명의 종말과 관련되는 실정법적 규범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 법은 또한 강한 윤리적 반성과 기반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1971년 '생명윤리'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미국의 암 연구가인 포터가 [생명윤리 : 미래에의 가교](Bioethics : Bridge to the Future)라는 저술을 펴낸 것이다. 여기서 포터는 인류가 미래를 향해서 전진하려면 생명윤리가 필요하고, 그것이 없을 때 인류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인류의 생존이었지 인간 삶의 질은 아니었다. '생명윤리'라는 용어를 통해서 그는 인간생명에 대한 전통적인 의료윤리의 개념보다 더욱 폭넓은 윤리적 반성을 요청했다. 그에게 있어서 과거 생명에 관련된 윤리적 반성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한정적이어서 겨우 개인간의 관계(의사 대 환자, 개인 대 사회)를 윤리적으로 규정하는 정도였던 것이다.7) 유전공학의 발전, 인공수태(인공수정의 단계에서 체외수정의 단계로 도약한 것이 1978년이었다) 및 장기이식술의 발전, 성인과 태아에 대한 실험, 인간과 생태학적 환경과의 관계문제 등이 거의 70년대에 일어났고, 따라서 이전의 개인적 관계들을 규정하던 윤리적 논의들은 인간생명 및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반성하는 생명윤리에다 그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생명윤리를 개인윤리에서 사회윤리의 차원으로 옮겨가게 한 포터의 공헌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은 여러 연구소의 설립으로 점차 조직화되어 갔다.8) 오늘날 세계적으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생명윤리연구소가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생명윤리위원회들이 각 대학과 병원에 설립되어 있고, 많은 의과대학과 신학대학에 생명윤리 또는 생명의료윤리라는 이름의 과목이 설치되어 있다.9) 

Ⅳ. 가톨릭 교회와 생명윤리

생명윤리의 역사를 다룰 때 의학윤리와 관련된 가톨릭 교회의 공헌을 간과할 수 없다. 의료윤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흔히 윤리교과서 안에서 살인금지라는 주제 정도로 다루어져 왔으나 차츰 '의료윤리'라는 이름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 결론들은 주로 고해사제들, 의료인들 및 공권력에 주어졌었다. 교회의 의료윤리는 치료 또는 다른 어떤 목적으로 인간이 자신과 타인의 육체적 생명에 관련된 행동을 할 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그 대상으로 하였다. 가톨릭 의료윤리는 교황 비오 12세의 연설과 라디오 메시지 중 많은 부분이 의료인들에게 할애되었다. 그의 생명 및 의료윤리관계 문헌들은 주로 1949년부터 시작된다. 교황은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의학의 발달로 인해 제기된 새로운 문제들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10) 그의 메시지는 많은 경우 인간생명을 억압한 나치즘의 죄악과 기술문명에 대한 고발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의 관심은 생명의 시작, 삶의 도정 및 생명의 종말에 이르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인공수정, 치료적 낙태와 불임수술, 유전병 전수의 위험이 있을 경우의 산아조절, 무통분만, 인체실험, 지체절단, 의료윤리와 의료권, 조직과장기의 적출 및 이식, 무통각의 종교적·윤리적 문제, 회생술의 종교적·윤리적 문제 등 그가 보인 생명의료윤리관계 관심은 매우 광범위하였다.

그러나 비오 12세 이후 최고 교도권의 생명윤리 관련문헌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나, 현대의 생명과학과 의학의 또 다른 발전에 따른 윤리적 문제들의 확산으로 인해 최근에 비교적 많은 문헌들이 나오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낙태, 산아조절, 인구문제, 가톨릭계 병원에서의 불임수술문제 등에 관한 가르침을 발표하였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교리성성의 선언들과 함께 다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의사와 낙태 및 양심의 문제, 태아감별문제, 의학의 실천과 연구, 의사의 직무, 생명과학 및 유전공학문제, 고통의 문제, 의학과 유전공학적 조작의 문제, 교회와 병자, 기아에 대한 투쟁과 생명권, 안락사 문제, 인간생명의 기원과 출산문제, 성윤리문제 등이다.11)

이러한 최고 교도권의 생명윤리관련 가르침들을 보면 그 내용에 있어서 생명윤리 전 분야에 걸쳐 실로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미국 가톨릭보건협회가 펴낸 Medical Ethics, Sources of Catholic Teaching은 교도권이 다룬 생명윤리관계 주제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낙태, 노인문제, 에이즈, 인공수정, 시신해부, 뇌사, 의사-환자 관계의 신뢰, 산아조절, 이중효과의 원리, 배아연구, 안락사, 결혼과 가정, 유전학 연구, 장애아, 보건행정, 인권, 연명의료문제, 고지된 승낙, 체외수정, 환자의 진의표명문제, 의료직의 사명, 의료보험, 가족계획, 간호, 통상수단과 특수수단, 장기기증 및 이식, 진통, 의약, 인구문제, 강간, 의료정책, 보건권, 인간생명의 성성(聖性), 성(姓), 불임수술, 고통, 수술, 대리모, 전체성의 원리, 진실 밝히기, 생명유지기기의 철거문제 등으로 생명 및 의료윤리의 전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12)

오늘날 교회가 보이고 있는 이러한 가르침들은 실상 초세기부터 시작된 교회 전 역사의 일관된 관심이었다. 인간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인간관과 더불어 전세기에 걸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끊임없이 주어진 것이다.13)

윤리신학의 역사상 기초윤리와 성사윤리 이외의 대부분의 주제들은 주로 두 가지 접근방법으로 다루어지곤 했다. 하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법으로서 사추덕(四樞德)에 따른 분류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알퐁소 전통의 10계명에 따른 분류법이다. 이에 따라 생명윤리관련 주제들은 의덕(de Justitia) 또는 5계명 해설에서 그 자리를 잡고 있었다.14) 그것은 최고 교도권이 관련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까지도 마찬가지여서 생명윤리가 가톨릭 윤리신학 내에서 학문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주목할만한 생명-의료윤리 관련 단행본이 이미 1905년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G. 안토넬리(Giuseppe Antonelli)가 쓴 전 2권의 [고해신부들을 위한 사목의학](Medicina pastoralis in usum confessariorum, Roma: Pustet, 1905)이 그것이다. 그는 사제요 자연과학 교수로서 1932년에 이미 제5판 전4권을 발행함으로써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 G. 켈리(Gerald Kelly)가 의학윤리 문제를 통해서 의학윤리 분야의 개척자가 된다. 그 후 미국 가톨릭 내에서는 70년대 이후 멕코믹(R. McComick), 커런(C. Curran), 마퀴레(D. Maguire), 캘러헌 등이 각각 생명-의료윤리관계의 선구자적 저술가들이 된다. 그러나 유럽교회에서는 70년대까지도 윤리철학으로서의 생명윤리가 아니라 윤리신학의 일부이자 사목활동의 보조수단으로 육체생활의 윤리,15) 의학윤리16) 등을 제목으로 한 저서들이 출판되고 있었다. 다양한 종교적 가치관이 혼재한 미국에서 만인 공유의 이성적 논리를 기초로 한 생명윤리철학의 발전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못된다.

교회의 의학윤리신학은 의학적 간섭의 윤리성을 신앙의 관점에서, 즉 교도권이 해석하는 계시의 빛 안에서 고려한다. 그러므로 그 영역을 신앙공동체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물론 학문적 결론들이 윤리철학의 그것과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간생명에 대한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반성의 합법성과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생명은 무엇보다 먼저 이성을 사용하는 만인들이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자연적 가치이다. 거기에다 은총은 인간존재를 더욱 가치롭게 만든다. 이성적 윤리, 자연윤리의 정당성이나 이성의 가치를 교회전통은 항상 높이 평가해 왔다. 예를 들어 낙태의 부당성을 비그리스도인도 깊이 수긍할 수 있는 이성적, 자연과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자연과 초자연, 이성과 계시, 신학과 철학의 공통적 기원은 하느님이다.17)

위에서 본 것처럼 교회는 교도권과 의학윤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생명윤리를 가르쳐 왔다. 그리스도교는 시초부터 초월주의와 이적(異蹟)주의를 스스로 멀리해 왔다. 교회는 언제나 제2의 원인(cause secunde)을 인정하여 왔다. 치료행위는 하느님이 하시는 치유의 제2의 원인이다. 하느님의 직접적 행위인 기적은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실재적(real)인 것으로 교회는 항상 인정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의 치료행위를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제2의 원인으로 고무해 왔다. 생명윤리라는 테마의 본성상 그것은 신학적 지평뿐 아니라 과학적·철학적 지평에서의 서술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교회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는 왜 거의 독보적으로 생명 및 의학윤리에 관심을 가져왔는가? 역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옹호해 온 교회의 기본 교리가 그 근거가 아닐 수 없다. 과학은 교회의 그늘 아래 지속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중세기의 대학들은 교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신학자들은 곧 과학자들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톨릭 신학은 생명과학, 의학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신학과 윤리에 연계시킬 줄 알았다. 또한 가톨릭 신학은 신앙만(sola fide) 강조해 온 개신교 신학의 전통과는 달리 인간의 행위와 노동을 중시해 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톨릭 윤리신학도 인간행위의 윤리성 판별에 큰 비중을 두고 발전해 왔고 따라서 의료행위와 연관된 행위들의 윤리성 판단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다. 또한 16세기 후반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의 가톨릭 윤리신학은 고해성사의(따라서 행위의 죄성 판별의) 시녀로서 죄의 정도와 질을 판단하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그 주요사명이었다. 따라서 윤리신학이 완전한 그리스도인 생활의 안내자로서의 학문적 발전을 이룰 수는 없었으나, 개인적 행위와 그 윤리성에 큰 비중을 두어서 의료행위를 포함한 여러 직업에서 오는 개인행위의 윤리성과 비윤리성을 고해소에서 판단할 자료를 제공함에 따라 의료윤리의 발전을 가져오는 한 원인이 된 것이다.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논(T.A. Schannon) 같은 이는 오늘의 가톨릭 교회와 윤리신학이 생명윤리와 함께 유효적절한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동의를 받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생명과학, 의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비교되는 가톨릭 교회의 완만성과 조심성이다. 물론 윤리적 반성과 비판은 과학기술의 시도에 뒤이어 일어나는 법이므로 윤리적 대응의 후속성은 가톨릭 교회만의 특징은 아니다. 과학기술은 윤리적 판단 이전에 이미 실험을 통하여 현실화되고 말 뿐 아니라 그 특성상 급속도로 확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리적 평가의 조심성은 필요하지만 과학주의, 실용주의, 경제적 가치관에 젖은 현대인에게 양심을 즉시 일깨워주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생명윤리와 관련되는 주요 신학적 토의의 대상은 정황의 평가에 관한 문제이다. 가톨릭 교회는 윤리원칙을 절대화시키고 그것을 추상적으로 적용하며 상황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행위자체의 윤리성, 행위의 지향과 함께 행위의 윤리성 판단의 세 가지 기준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의 윤리신학자들은 윤리신학의 이론적 발전에 있어 상황의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않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명백히 천명된 이론과 다른 어떤 결론을 내릴 때 가톨릭 교회가 흔히 하는 말은 겨우 '사목상 이유'이지 학문적인 논리에 의한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상 생명 및 의료윤리에 있어 정황은 매우 중요하다.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곳이 각각 구체적 경우라는 사실은 생명 및 의료윤리에서 더욱 그러하며 상황 자체가 행위의 윤리적 본질을 완전히 전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 정황의 복합성 다음으로 그가 지적하는 세 번째 문제는 가톨릭 교회가 케케묵은 윤리적 전통을 현 상황에 적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 의학윤리가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일 중 하나는 이중결과의 원칙(principle of double effect), 통상 및 특수수단(ordinary and extraordinary means) 같은 윤리적 원칙들을 발전, 정제시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중요한 윤리학적 의미를 가진 이 윤리원칙들이 현대의 우리와는 다른 시대와 다른 정황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윤리원칙들이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과 의료의 세분화를 이룬 오늘날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실질적이고도 비판적인 재고가 요청되는 부분이다.19)

오늘의 가톨릭 교회와 윤리신학이 생명윤리와 관련되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더 이상 개인윤리의 전망에서 본 생명의 수호라는 전통적, 소극적 영역에 있지 않고 사회윤리의 전망에서 본 생명의 질의 향상, 제고(提高) 및 발전이라는 적극적 영역에 있다. 

Ⅴ. 생명윤리는 어떠한 윤리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위에서 생명윤리는 인간학, 자연과학 및 윤리학의 기초를 통하여 성립된다고 말했다. 오늘날 생명과학 및 의학의 영역에서 철학적 반성이 조직적으로 일어난 것은 인간본성에 대한 주목의 결과이다. 따라서 인간본성에 대한 다양한 파악(인간학, 인간관)에 따라 생명윤리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오늘의 인간학적 다원주의는 생명윤리의 다원성을 인정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자유와 책임,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삶의 시작, 임종과 죽음, 육체생활의 가치, 부부사랑과 출산 등의 의미와 가치판단이 인간관에 따라 다르고, 따라서 그와 관련된 윤리적 행동이 달라진다. 우리의 생명윤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윤리적 모델들은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인간관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극단적인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 윤리관이다. 이들이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삶의 기본노선은 개별실존을 위한 투쟁이며, 선의 기준은 '자유로이' 행할 수 있었느냐에 있다. 그러므로 자유가 곧 절대적 윤리규범이다. 개별실존의 자유를 구속하는 의무, 덕, 권위, 전통 등 객관적 윤리규범을 거부하고, 행위의 윤리도덕성을 상황에 따라 자유로이 판별하고자 한다. 이들은 기존사물에 영합하지 않을 절대적 자유, 불가지론에 머물러 있을 자유, 의심과 불확실성을 제거시킬 자유를 부르짖는다. 따라서 이러한 윤리적 모델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낙태, 자살의 자유, 자유로운 안락사, 성의 해방을 주장하면서 무절제한 현세적 복지를 추구하고, 혼인 및 가정윤리를 파괴하며, 정치, 경제, 예술 등 제반 인간사와 도덕을 분리하는 결과를 빚는다. 충실과 책임을 도외시하는 절대적 자유는 개인과 공동체를 파괴하고 분해한다.

둘째, 우리의 생명윤리가 거부하는 또다른 윤리적 모델은 테따만지(Tettamanzi)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학적-공리주의적 모범이며, 스그레치아의 표현을 빌리면 문화적 사회학주의이다. 이것은 윤리적 상대주의의 한 표현으로서 가치의 기준은 어느 한 시대, 한 지역의 문화, 또는 공통적인 사고의 틀, 여론의 향방에 있다는 주장이다. 베버(Max Weber) 이후 사회학, 문화인류학적 연구안에 일관되어온 이러한 상대주의는 모든 가치는 변화할 뿐 아니라 개관적, 영구적, 보편적 가치는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유일한 규범은 시대와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른 다수의견, 관습에 따라 결정될 뿐이라는 것이다. 보편타당한 영구적 윤리규범을 거부하는 곳에서는 항상 매스미디어와 정치, 경제적 세력의 조작에 의한 여론형성이 가능해지므로20) 생명-의료윤리의 판단기준은 자연스럽게 공리주의적, 쾌락주의적 기준을 수용하게 된다.

윤리적 선을 이 시대, 이 문화 안에서의 유익-손해의 도식과 실리주의적, 기능주의적 도식으로 판단할 때 윤리적 상대주의는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유익을 기준으로 하는 가치평가는 다른 모든 보편적, 공동체적 윤리규범을 망각하게 만들고 개인주의적 윤리관에 젖게 만들어 인류공동체의 삶을 거부하게 된다. 이러한 윤리관에서부터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체외수정이 진행되며 다수여론이 인정하는 낙태가 쉽사리 이루어진다. 첫 시험관 아기 브라운(Brown)의 탄생을 이루었던 에드워드(R.G. Edward) 교수는 말한다. "유익이 도출된다면 그것은 시험관 배아 연구에 대한 모든 반대를 극복할 수 있다…이 배아들은 시험관 수태를 통하여 불임문제를 다루는 병원들이 보호해 놓은 배아들이 아니다. 오직 여성의 동의와 함께 적출된 난모세포들일 뿐이다. 이것들은 자궁 속에 배아를 이식할 의도 없이 시험관에서 수집되고 수태된다. 이것들은 연구, 관찰, 실험의 목적으로만 사용된다.21) 가공할만한 유익기준의 윤리관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유익은 어떤 것일까? 인간배아실험을 이 시대의 대다수(오늘의 문화)가 받아들인다고 해서 윤리적 가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문화적 사회학주의요, 아기제조(making baby)가 인류의 인간관 타락을 염려하기보다 한 가정에 유익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윤리적 가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개인주의적 윤리관이고 유익-손해 주도의 윤리관이다. 그가 아기제조를 산과학의 꽃으로 여기는 오늘의 과학적 사고에 물들어 있다면 그것은 과학주의적 윤리관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주체이며 모든 참된 문화의 중심이요 정점이다. 그러므로 인간-인격을 억압하거나 모욕하거나 조작하는 모든 것은 일탈이요, 더 이상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다.22) 인간거부의 문화는 결코 윤리규범이 될 수 없다.

윤리적 상대주의의 또 한 표현은 사상영역에서의 다원주의를 절대화시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것은 특히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실재로서, 인간의 공동생활이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대화와 그들 사이의 공통분모 추구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다수의 의견이 진리의 기준이요 윤리의 기준이다. 물론 다양한 사상들의 대화는 진리의 추구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유익하나 그것이 보편적인 윤리적 기초와 확실한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23)

세 번째로 거부되는 윤리관은 과학기술주의적 윤리관이다. 과학기술과 윤리와의 관계는 모든 생명윤리 저자들의 일관된 관심사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생명윤리 발흥의 동기 중 하나라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은 참된 인식의 대상은 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과학적 인식뿐이며 따라서 과학적 인식의 대상이 못되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또한 자연은 조작만 기다리는 단순한 물질일 뿐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인간이 그 좋을 대로 변용시킬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그 대상에는 인간 역시 포함시킨다.24) 그러므로 오늘의 과학은 과거와는 달리 자연과 인간에 관한 진리의 파악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조작을 통하여 그 변용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과학은 자연은 물론 인간의 본성 역시 각종 과학적 탐구를 통하여 다양한 가변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과학주의적 사고를 형성하여 과학,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은 윤리적으로도 정당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과학적 가능성과 윤리적 가치 및 정당성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주의적 사고는 그 안에서 추상적 이론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즉시 실생활에 현실적으로 적용되어 대중의 윤리관을 오염시킨다.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해도 된다", "내가 직접 하지 못하면 과학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해도 된다"라는 사고로 인해 아기를 갖기 위해 체외수정에, 대리모에 의존하며 병의 치유를 위해 장기적출용 태아를 임신하기도 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인간은 자신과 자연의 조작을 통하여 역동적인 자아형성 및 발전, 자아실현을 기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조작이 자신과 공동체의 인간성 파괴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윤리적으로 금지된다.

위에서 언급한 윤리관들은 생명윤리의 기초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생명윤리는 인격주의의 뿌리를 가져야 한다. 무니어(E. Mounier)의 말처럼 인격주의는 하나의 내적 태도로, 조직도, 운동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철학이다.25) 우리는 생명윤리가 하나의 윤리철학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우리의 생명윤리는 하나의 인격주의적 윤리철학(filosofia morale personalista)이다. 이렇게 볼 때 생명윤리의 중심에는 인간-인격이 있고 그는 본질적인 윤리적 판단기준이다. 인격주의 철학에 뿌리를 둔 생명윤리는 인간을 그 본성적 특성들로부터 파악한다. 또한 이 생명윤리는 인간을 그 존재로부터, 따라서 그 존재론적 가치로부터 파악하며 그 존재론적 기반을 존중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떤 편협한 이데올로기로부터 파악되거나 도구화되는 것을 거부한다. 인간은 그 본성적 특성들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존재자체로부터 존중받는다. 그의 자율성, 초월성이 존중되고 그에게 책임 있는 자유를 요청한다.

우리의 생명윤리가 갖는 인간관은 통일적 인간관이다. 그는 육체적, 심리적, 영적 요소가 하나로 된 전체요, 지성, 감성, 의지와 육체성, 영성이 도무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몸이다. 그는 조직과 장기의 복합체가 아니다. 그는 육화된 영이다(anima incarnata). 그래서 그의 생명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의 생명권은 그의 모든 인권의 시작이요 마지막이다. 그의 몸은 곧 그다. 그는 살아있는 관계 그 자체이다. 그의 관계성은 우리의 생명윤리로부터 끊임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은 그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공동체적 규범이 필요하다. 오늘의 생명윤리는 강한 사회윤리적 규범의 윤리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개인주의적-자유주의적 윤리관은 거부된다. 책임 없는 자유란 그의 본성적 요소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인격이 강한 전체주의적 윤리관에 희생되어서도 안된다. 개별인격은 더 근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주변의 모든 것은 인간과 함께 인간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의 인격주의적 생명윤리는 자연을 착취와 소진, 조작의 대상으로만 보는 과학주의적, 기술주의적 인간을 거부한다. 그에게는 존재보다 실행, 기능 소유가 더 중요하고, 그래서 목표를 수단에 용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Ⅵ. 생명윤리와 윤리이론

윤리적 판단과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여기에 의존하지 않은 윤리적 판단은 하나의 감성주의에 불과하다. 생명윤리의 문제가 개인의 감정이나 느낌 또는 개인적인 윤리적 확신에 따라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반규범 윤리학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윤리이론을 발전시켰다. 하나의 윤리이론은 인간행위의 윤리적 선악을 판단하는 데 사용될 일군의 윤리적 기준과 틀들을 제공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뷔상(Beuchamp)과 쉴드레(Childress)는 윤리적 사고를 네 단계로 나누었다: 한 개인 또는 공동체의 구체적인 윤리적 판단과 행동은 윤리규칙을 따른 것이며 그 윤리규칙은 윤리원칙에서 나온 것이다. 원칙은 규칙보다 좀더 일반적이고 기본적이어서 여러 가지 구체적 규칙들은 이 원칙을 기초로 한다는 것이다. 이 윤리원칙들은 또한 윤리적 사고의 가장 근본되는 기초 단계인 윤리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윤리이론들은 윤리원칙들과 규칙들의 모체이며 그들의 근거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26) 그의 이 네 단계 이론은 윤리적 판단을 위해 객관적이고도 논리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식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윤리이론은 흔히 두 가지 기본적이고도 상호배타적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의무주의(deontology)와 목적주의(teleology)가 그것이다. 의무주의 이론(deontological theory)은 윤리적 선악 판단의 기준을 주어진 의무의 수행에 두는 입장이다. 한 행동이 정당한 것은 합법적 권위에 의해 부과된 법이나 규칙에 부합했을 때이다. 선악의 기준이 법이라면 그것은 법중심주의요, 합법적 권위자의 뜻에 있다면 그것은 주의주의(主意主義)로 나타난다. 의무론에 의하면 윤리적 행동은 의무적이며 복종적이고 구속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한편 18세기에 와서 또다른 형태의 의무론이 등장했다. 그것은 형식주의를 표방한 칸트(I. Kant)의 의무론으로서 정언명법(kategorsche Imperaliv)을 기준으로 한 이론이다. 그러나 칸트의 이론은 구체적인 가치나 규칙을 설정하려면 오히려 그가 거부하는 감성주의,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며, 많은 경우 행복주의와 공리주의로 흐르게 된다.27)

한편 목적론(teleological theory)은 의무론이 판단근거로 삼는 어떤 권위 그 자체의 의지가 선인지 아닌지 최종적 근거가 제시되지 못하므로 그것이 선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하면서, 목적론이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된다고 말한다. 목적론자들은 어떤 행위의 수용여부를 그 행위가 공동체 안에서 참된 인간완성이라는 목표(결과)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 수단이 되는가 아닌가로 판단한다. 즉 목적론적 윤리는 인간의 최고목적은 가치의 실현, 자아의 실현, 인간의 인간적 충만을 지향하는 데 있으므로 인간의 행위도 그 목적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무론이 행위의 본질, 추상적이고도 보편적인 규범과 윤리적 의무의 이성적 규칙을 중시하는 반면, 목적론은 몇 가지 흐름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행위의 결과를 중시하며 어떤 유일한 상황에서 실용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에 관심을 둔다.

목적론을 대표하는 흐름 중 하나는 공리주의이다. 이들은 인간생활의 최대목표는 최대의 만족 또는 최대한 만족스런 결과를 얻는 데 있다고 하면서 윤리적 선악의 판단도 그 행위가 어떤 특정 경우에 만족스런 결과를 도출해 내느냐에 따르므로 흔히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규범문제, 행위수단의 문제, 행위의 본질 문제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공리주의는 행위공리주의와 규칙공리주의로 구분된다. 행위공리주의자들은 보편적 윤리규범은 없으므로 모든 행위는 유일한 상황에서 판단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의학윤리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개신교 윤리학자 J. 플렛취(Joseph Fletcher)의 사랑의 상황론(agapist situationism)이 그 대표적 예이다. 대부분의 공리주의자들은 규칙공리주의를 선호하는데 이것은 어떤 윤리규범을 일반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는 규칙으로 일단 받아들이되 어떤 상황에서는 예외를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주관적인 감성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윤리의 최고원리는 '나 자신의' 최대만족이 아니라 '최대다수'의 최대만족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공리주의자들의 결정적인 약점은, 결과적으로 나타난 선이 윤리행동의 척도가 된다고 주장하나 행위의 결과가 가지는 선악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방법을 제공해주지 못하므로 그들의 이론이 거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본질적 선, 본질적 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수단의 비윤리성을 문제삼지 않는다: 좋은 결과를 내는 행위는 윤리적 행위요, 나쁜 결과를 내는 행위는 비윤리적 행위이므로 살인도 결과에 따라 윤리적 행위가 될 수 있다. 낙태로 산모와 가족, 심지어 태아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예를 들면, "태어나서 고생스럽게 살기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낼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요, 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한 사람의 무죄한 생명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논리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28)

윤리적 결정은 어떤 가치체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가치체계가 다양한 다원사회에서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그만큼 많은 윤리적 결정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교적 판단과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적 가치체계를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가치체계에 익숙해 있을 때 다른 가치체계들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들과 어떤 공통의 영역을 만들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타인의 가치기준이 비그리스도교적 또는 반그리스도교적 가치체계인지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생명과 관련된 구체적 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과 타인의 결정이 자리를 잡고 있는 윤리이론을 자신의 가치체계 안에서 논리적으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자신과 타인의 결정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가톨릭 윤리신학은 의무론과 목적론이 각각 가지고 있는 극단을 피할 줄 알아야 한다. 트렌트 공의회 이후 가톨릭 윤리는 계명과 법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의무론적 윤리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토미즘의 재흥으로 트렌트 공의회 이전 신학자들의 목적론적 경향이 부흥하게 되었고,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추인을 받게 된다. 공의회는 윤리적 선악의 객관적 기준은 인간의 인격과 행위의 본질에 기초한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29) 인간행위의 목적은 언제나 인격이며 그 인격들의 공동체임을 공의회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의무론적 윤리가 법제정자의 의지만 일반적인 윤리기준이라고 강조한다면 그것은 극단이다. "법 제정자의 의지가 왜 그것 자체로 정당한가?"를 물을 때 그 대답이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일 때 그는 이미 목적론의 영역에 전입한다. 그러나 목적론이 행위의 본질과 지향, 보편타당한 규범을 무시하고 행위의 목적과 결과만 중시할 때 그것 또한 극단이다. 윤리는 궁극적으로 규범에 복종하는 것만은 아니다. 윤리는 규범을 중시하면서도 개인의 인격과 공동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하고도 구체적인 행동을 지혜로이 추구하는 것이다. 법, 규칙, 원칙을 중시하되 상황을 고려하며 인간의 인격과 인간행위의 본질을 기준 삼는 참된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다. 참된 목적을 지향하고 실현하는 일은 규범과 의무를 통해서 표현되는 구체적 행위와 객관적 태도를 통해서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30) 

Ⅶ. 생명윤리와 윤리원칙

인격주의적 생명윤리는 공동체 안에서 개별인격을 중심으로 한 윤리원칙들에 의거하여 구체적인 결정을 한다. 윤리원칙들은 형이상학적인 공리에서 출발한 추상적 가치선언이 짜 맞춘 선험적 규칙들의 나열만 이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체계 무시한 일과성 상황해결의 원리들이어서는 더욱 안된다. 우리의 인격주의가 긍정하는 인간중심의 필요와 체험들의 일반화가 바로 윤리원칙들이다. 윤리원칙들은 가치체계와 저자들에 따라 매우 다양한 표현들로 주어진다.

뷔샹과 쉴드레는 우선 의학윤리의 입장에서 자율성(autonomy)의 원칙, 무해성(non-maleficence)의 원칙, 선행(beneficence)의 원칙 및 정의(justice)의 원칙이라는 네 개의 큰 원칙 안에 몇 개의 다른 원칙들을 포함시키고 또 몇 개의 윤리규칙들을 따로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사전동의(의학용어로는 고지된 동의, informed consent)의 원칙을 자율성 원칙의 가장 중대한 표현으로 보아 개인 자율성의 제고와 관련된 사전동의의 기능과 그 정당성을 다양하게 밝히고 있다.31) 무해성의 원칙을 통해서 그들은 고의적 위해를 가하지 말 것은 물론 위해나 악을 예방하는 그 기능을 설명하면서 이중효과의 원칙을 여기에 포함, 설명하고 있다.32) 선행의 원칙은 친절, 사랑, 자비의 개념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의무적인 성격의 원칙으로 소개된다. 경비와 유익의 문제와 의료진에 의한 선의의 개입문제를 자율성 원리와 관련지워 설명한다.33) 마지막으로 정의의 원칙이 설명되면서 그것을 주로 분배정의의 틀 안에서 고려하면서 주로 의료 분배문제를 다룬다.34) 뷔샹과 쉴드레는 위 네 가지 원리 외에 가장 중요한 의학윤리의 주제 중 하나인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를 다루면서 그 안에서 필요한 정직, 신의, 충실의 윤리규칙들을 설명하고 있다.35)

스스로의 입장을 지적 인격주의로 표현하면서, 균형론을 표방하는 다른 가톨릭 윤리학자들을 비판하는 도미니꼬회의 에슐리와 오류커는36) 자신들의 인격주의를 표현하는 윤리원칙들을 대신덕의 틀 안에서 분류, 열거한다. 믿음, 희망, 사랑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위의 원천으로 소개하는 바울로의 가르침(1고린 13장)에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인간적인 필요와 세 위격의 공동체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공동체적 삶의 필요는 바로 이 믿음, 희망, 사랑에서부터 충족된다고 말한다. 물론 비그리스도인들은 이 대신덕들의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의미는 모르더라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매우 중요한 인간적 가치들임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생명윤리의 원칙들을 그 안에 분류하여 그 원칙들의 최종지향과 원천이 믿음, 희망, 사랑임을 나타내고자 하며, 또한 그것들이 생활상의 실재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먼저 이들은 믿음의 원칙 안에서 양심형성의 중요성, 자유스럽고도 고지된 동의, 윤리적 분별, 이중효과, 합법적 협조, 전문적 통교 등의 원칙들을 포함시킨다. 물론 이러한 원칙들이 순수한 그리스도교적 가치들만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원칙들을 더욱 명백하고 확실하게 만들어 지혜로운 결정의 실질적 안내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원칙들 안에는 인간의 존엄성, 공동선, 보조성 및 기능성, 인격의 전체성을 포함시키고, 희망의 원칙 안에는 고통을 통한 성장, 인격화된 성, 관리와 창조성의 원칙들을 분류하고 있다. 예슐리와 오류커는 이중효과의 원칙이나 전체성의 원칙등 전통 가톨릭 윤리신학에서 발전되어 온 원칙들과 현대의 생명-의료윤리에서 발전된 새로운 개념들을 종합하여 모두 그리스도교적 비젼으로 정리하면서 생명윤리철학과 신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37)

스그레치아 역시 윤리원칙들을 자신의 인격주의에 기초한 네 개의 원칙으로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생명의 기본적 가치, 자유와 책임, 전체성, 사회성과 보조성의 원칙들이 그것이다. 그는 생명의 기본적 가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인격과 분리된 실재가 아니라 인격 자체의 기본적 가치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기본가치보다 상위가치는 인격의 전체적이고도 영적인 선이므로 이 선이 육체적 생명의 희생을 동반해야만 실현될 경우에는 본인의 자유로운 결단과 봉헌으로 그 육체적 생명이 회생될 수 있음을 말한다. 육체적 생명은 최고가치 중 하나이나 절대가치는 아님을 표현하고 있다. 이 원칙을 설명하는 그는 생명윤리의 범위를 인간생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식물적·동물적 생명에로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생명들도 그 고유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우주 안의 다양한 생명들의 조화가 곧 인간의 생존 및 건강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 생명들의 기본가치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원칙들 중 사회성과 보조성의 원칙은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발전된 개념으로서 오늘날 의료의 사회화 경향과 더불어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38)

우리가 선택한 위 다섯 저자들의 윤리원칙들은 오늘의 생명윤리학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진보적이며 조직적인 개진으로 생각된다. 뷔샹과 쉴드레의 그것은 주로 의학윤리차원에서의 원칙들로서 오늘날 의학윤리원칙개진의 고전으로 인정받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에슐리와 오류커의 원칙들은 전통적 가톨릭 윤리신학 전체(기초윤리와 윤리각론 그 중에서도 성, 혼인 및 가정윤리, 사회윤리)를 망라하는 주요 가치와 원칙들을 모두 12원칙으로 정리, 소개하고 있어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윤리원칙 체계로 보인다. 스그레치아는 모든 윤리원칙들을 네 개의 윤리원칙들로 단순화시켜 소개하고 있으나 그의 기본구조는 전통적 의학윤리에서 벗어나 생명윤리에로의 이행에 있으므로 오히려 그 단순한 형태 속에서 더욱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원칙들을 담고 있다.

가톨릭 윤리신학이 그 오랜 역사와 함께 발전시켜온 전체성의 원칙, 이중효과의 원칙, 합법적 협조의 원칙, 통상수단과 특수수단의 구분 등으로 대표되는 의학윤리의 원칙들은 오늘의 다원사회에서 그 전통적인 개념이 많은 경우 수정되고 새로운 적용과정을 거쳐야 하며, 나아가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위한 광범위한 생명윤리의 원칙들로 발전되어야 한다(물론 여기에는 자연법의 해석, 교도권의 권위문제와 더불어 이 원칙들의 적용범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생명윤리의 원칙들이 '좋은 의사'의 윤리원칙으로 남아 있어서는 오늘의 생명문화가 요청하는 생명과 철학의 만남이 될 수 없다. 


Ⅷ. 결론: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위한 윤리'를 향하여

생명윤리는 오늘의 경험과학이 보여주고 있는 한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의 결과이다. 다양한 생명과학의 학문적·기술적 발전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인간적으로 합당하고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 사이의 경계와 한계를 스스로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윤리는 그에 부응하지 못한 채,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각종 조작적 세력과 관련된 윤리적 요청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단순 농경사회가 과학, 기술, 산업으로 특징짓는 오늘의 복합사회로 이행되어 오면서 인간의 삶과 인간의 삶과 자연에 대한 정치, 사회적 개입은 그 깊이를 더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윤리 및 법규범적 불충분성은 더욱 깊이 체험되고 있었다. 생명윤리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다. 인간과 자연,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조화와 보호를 위한 인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관련학문 간의 교차연구의 방법을 통하여 조직적,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또다른 윤리철학의 한 분야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명윤리는 당연히 철학적 인간학의 기초를 가지며, 그 모습에 따라 윤리관 역시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우리는 자유와 책임,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참된 인간성 실현의 장으로 삼지 못하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윤리의 기초를 사회학적 통계에 두며 사회적 유용성에 두려는 시도들, 진화론적, 과학기술적 사고에 젖어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든 진보에 윤리적 기준을 두려는 시도들을 배격한다. 우리의 생명윤리는 인간-인격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전통의 인격주의적 윤리철학으로서 그 철학적 기초 위에 과학과 윤리의 관계, 인간의 자유와 진리의 관계, 인간-인격과 그의 생물학적 본성의 관계를 추구하고 그 안에서 생명윤리의 조직적, 실용적 결과를 얻는다.

원래 의학윤리는 하나의 직업윤리(etica professionale, etica corporativa)였다. 의사와 환자, 의사와 의사의 관계에서 권리와 책임을 논하고 구체적 의료행위의 윤리적 정당성을 판단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오늘도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오늘의 생명윤리가 갖는 새로운 면은 그 연구영역의 확장에 있다. 혹자는 이같은 의학윤리의 명칭을 생명-의료윤리(또는 생의윤리)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생명윤리의 문제는 더 이상 의료계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생명윤리는 의사들의 직업윤리가 아니라 만인의 윤리이다. 물론 의료윤리의 전통적 문제점은 그것이 인간생명의 문제인 이상 생명윤리 안에 있고 그 근본요소 중 하나를 구성하나, 생명윤리의 대상과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생명윤리학 대상의 확장은 과학적 연구 영역, 사회정치적 영역, 생태학적 영역의 확장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생명윤리의 교차연구적 특성은 더 이상 의학윤리의 틀 안에 안주하는 윤리는 있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생명윤리에 접근하는 이는 인간생명의 시작, 생명의 보존, 생명의 종말과 관련된 다양한 학문과 관련된 언급과 그 상호기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의료행위는 복합적 행위이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적 행위요, 기술행위이며 의료법의 윤곽 안에서 일어나는 법적 행위요 경제적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더 이상 개인윤리, 조합의 윤리의 차원에 있지 않고 사회윤리의 행위이다. 사회적 행위로서의 의학은 더 이상 환자의 치유에만 그 목적이 있지 않고 건강과 복지라는 정치·사회, 경제적 발전과 생명의 시작과 보존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전체적 건강과 복지는 주거, 의료, 보건 정책, 식량의 공급, 여가의 활용 등 삶의 질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곧 생명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태학적 문제는 주변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 생명과 관련된 본질적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 인간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자연과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윤리는 인간관계의 윤리에 머물렀고 다른 모든 생명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모든 생명 있는 존재를 거대한 실험실로 몰아넣고 있다. 땅의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인간이 오히려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소진하고 정복함으로써 그 스스로의 삶마저 파괴할 위험에 처해 있다. 오늘의 생명윤리는 사람들의 생태학적 자각을 일깨워야 한다. 이제 인류의 염려는 더 이상 인간의 기술에 의한 조작보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야 한다. 이제 윤리는 인간대 인간의 관계에서만 정립될 수 없게 되었다. 생명윤리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고 인간 이외의 생명 있는 모든 것에 새로운 위치와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 가능해지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숨쉬게 된다.

생명윤리가 모든 생물계를 포함할 때 윤리의 과학적 기초는 물론 생물학과 생태학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정보는 인간의 어떤 행위 후의 연속적 결과를 예상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윤리의 자리가 여기에 있다. 윤리적 가치판단의 대상은 인간의 행위이다. 동식물의 삶은 그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볼 때 생명윤리는 그 고유의 기초를 생명과학에서도, 환경과학에서도 이끌어내지 않는다. 오직 인격의 윤리에서 그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결국 생명윤리는 인격주의에 기초를 두되, 모든 살아 있는 것을 한데 묶는,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의 연대성 윤리이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 교회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요한 바오로 2세, [진리의 광채: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에 있어 몇 가지 근본적인 문 제에 관한 회칙]


●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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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리의 광채] 3항.
2) C. Lega, Manuale di Bioetica e deontologia medica (Milano, 1991), 102 참조.
3) E. Sgreccia, Bioetica, manuale per medici e biologi (Milano, 1987), 41 참조.
4) D. Tettamanzi, Bioetica, Nuove frontiere per l'uomo (Casale Monferrato, 1991), 28-29 참조.
5) E. Sgreccia, 앞의 책, 21 참조.
6) 김일순·N. Fotion, [의료윤리] (서울, 1993), 41-47 참조.
7) C. Viafora, Fondamenti di bioetica (Milano, 1989), 10 참조.
8) 철학자 캘러헌과 정신병학자 W. 겔링(Williard Gayling)은 이미 1969년 해스팅센터를 설립하여 오늘날 30여 명의 연구인력을 거느리는 조직이 되었으며, 많은 생명윤리관계 저술들과 [해스팅센터 리포트]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한편 워싱턴의 조지타운대학에서는 1971년 케네디가의 출연(出捐)으로 A.E. 엘레제르(Andre' E. Hellegers)가 케네디 윤리연구소를 설립하였고 그 안에는 생명윤리센터가 있어서 25명의 연구진을 포용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1978년 유명한 [생명윤리 백과사전] 전 4권을 출판하였고 의학 및 철학저널을 발행하고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생명윤리는 미국에서 유럽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의 첫 연구소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신학대학에서 설립한 보르자생명윤리연구소 이었다. 1981년 이탈리아의 가톨릭 성심대학(Universitá Cattolica del Sacro Cuore)은 생명의료학, 철학 및 신학의 대화를 위한 국제생명윤리연구(International Study of Bioethics)라는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83년에 로마 가톨릭의대는 생명윤리과목을 정규과목으로 설치하고 2년 후 생명윤리센터를 설립하였다; 위의 책, 13 참조; E. Sgreccia, "La Bioetica per la promozione della vita e della persona umana," in: La Cultura della Vita (Milano, 1989), 183-185 참조.
9) 현재 우리 나라의 32개 의과대학 중 1993년 1학기 현재 의학윤리과목이 정규 교과목으로 설치되어 있는 학교는 12개 학교이며, 미국의 경우 1983-4학기에 전체 127개 의대 중126개 의대가 윤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맹광호, [의과대학에서의 윤리교육] 3. 한국의 가톨릭신학교에서 생명윤리 과목이 처음 설치된 것은 1987년 대구 가톨릭대학에서 필자에 의해서였다.
10) P. Verspieren, Biologia, Medicina ed Etica, Testi del Magistero Cattolico (Brescia, 1990), 13 참조.
11) 위의 책, 581-584 참조.
12) K.D. O'Rourke and P. Boyle, Medical Ethics, Sources of Catholic Teachings (St. Louis, 1989), 28-34 참조.
13) 예를 들어 낙태에 관한 가르침은 디다케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르나바의 편지, 아테나고라스, 떼르뚤리아노, 암브로시오, 바실리오, 엘비라, 안치라 공의회 등 초세기 교회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E. Chiavacci, Morale della vita fisica (Bologna, 1979), 129-137 참조.
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윤리신학 교과서들을 살펴보면; 도미니꼬회의 프리마(Prümmer)의 Manuale Theologiae Moralis는 육체의 상해라는 주제를 De laesione iustitiae 안에서 다루면서 자기육체의 상해, 악인의 살해, 침입자의 살해, 결투, 전쟁, 무죄한 자의 살인, 두개골 절개, 낙태 등을 다룬다: Herder, 1953. tomus Ⅱ105-133. 반면 1946년에 나온 Institutiones Theologiae Moralis (edi. sextadecima, volumen Ⅰ, 290-311)는 프리마의 교과서와 거의 비슷한 소주제들을 De quinto praeapto에 분류시킨다. 한편 영미권의 교과서인 데이비스(H. Davis)의 Moral and Pastoral Theology (Sheed and Ward, 1959)는 역시 5계명에서 생명윤리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나 위의 전통적 교과서들보다는 놀랄 만큼 많은 의학윤리 문제들을 담고 있어서 오늘날 영미권의 생명윤리 관련 관심으 시초를 보는 듯하다. 데이비스는 살인, 자살, 전쟁, 결투 등 전통적 테마들 외에 지체결단, 불임수술, 태아살해, 자궁외 임신, 전치태반(前置胎盤), 양수과다 등 산과학 관련 문제들과 장기이식, 안락사 등 22종류의 소주제들을 간략하게나마 다루고 있다(141-199).
15) 예를 들면 E. Chiavacci의 앞의 책 등.
16) 예를 들면 B. Häring, Etica Medica (Roma, 1972) 등.
17) E. Sgreccia, 앞의 책, 35-37 참조.
18) C, Curran, 앞의 책, 57-58 참조.
19) T,A. Schannon, Bioethics (Ramsey, 1981), 4-6 참조.
20) 소병욱, "조작의 윤리성", [삶의 윤리] (서울, 1991), 87-95.
21) D. Tettamanzi, 앞의 책, 40-41.
22) E. Sgreccia, 앞의 책, 38 참조.
23) 위의 책, 38-39 참조.
24) L. Melina, "Contenuti e criteri della valutazione etica," in: Etica nella ricerca biomedica, 14-15 참조.
25) E. Mounier, Il personalismo (Roma, 1980), 10 참조.
26) T.L. Beuchamp and J.F. Childress, Principles of Biomedical Ethics (New York, 1983), 3-5 참조.
27) B.M. Ashley and K.D. O'Rourke, Ethics of Health Care (St. Louis), 81-82 참조; P.H. Peschke, [그리스도교 윤리학], 김창훈 역, 124-128 참조.
28) B.M. Ashley and K.D. O'Rourke, 앞의 책, 81-83 참조; 동 저자, Health Care Ethics, A Theological Analysis (St. Louis, 1982), 148-174 참조; E. Sgreccia, 앞의 책, 93-98 참조; T.A. Mappes and J.S. Zembaty, Biomedical Ethics (New York, 1991), 5-24 참조; T.L. Beuchamp and J.F. Childress, 앞의 책, 19-55 참조; 한성숙, "생의 윤리와 도덕원리," [의학윤리] (서울, 1992), 101-111 참조.
29) [교회헌장] 51항 참조; [진리의 광채] 73항 참조.
30) E. Sgreccia, 앞의 책, 98 참조; 의무론과 목적론의 지혜로운 통합을 에슐리(B.M. Ashley)와 오류커(K.D. O'Rourke)는 지적 인격주의(prudential personalism)라 명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결국 목적론에 분류하고 있다: Health Care Ethics, 162-163 참조; [교회헌장] 51항 참조; [진리의 광채] 73항 참조.
31) F. Sgreccia, 앞의 책, 98 참조; 의무론과 목적론의 지혜로운 통합을 에슐리(B.M. Ashley)와 오류커(K.D. O'Rourke)는 지적 인격주의(prudential personalism)라 명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결국 목적론에 분류하고 있다: Health Care Ethics, 162-163 참조; [교회헌장] 51항 참조; [진리의 광채] 73항 참조.
32) T.L. Beuchamp and J.F. Childress, 앞의 책, 59-102 참조.
33) 위의 책, 148-179 참조.
34) 위의 책, 187-217 참조.
35) 위의 책, 221-250 참조.


36) B.M. Ashley and K.D. O'Rourke, Health Care Ethics, 160-162 참조.
37) 위의 저자, Ethics of Health Care, 85-102 참조.
38) E. Sgreccia, 앞의 책, 98-107 참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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