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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4(화)
여성주의 관점에서 본 생명  
허라금 교수(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1. 들어가는 말

“생명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라는 전통적 생명관은 생명과학의 발전에 따라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다. 생명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거나 박탈되어지는 인간 의지의 영역 바깥에 속한 것이라고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생명과학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죽을 수밖에 없던 생명이 장기이식술 덕분에 새로운 삶으로 재탄생 한다. 생명의 잉태와 탄생은 이미 의학적 기술에 의해 상당 부분 통제될 수 있으며, 최근 유전자 조작기술은 어떤 생명 개체를 탄생시킬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종류의 생명 탄생까지도 기술적으로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그 동안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는 근거가 되어왔던 여러 배경신념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현 세대 안에서 이미 목도하게되는 생명관의 변화는 생명의 정의(definition)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대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을 말해준다.
"생명"이란 단지 주어진 자연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변화시켜온 역동적 개념이다. 개념은 단지 추상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틀로서 기능하며 그것은 세계를 주조하는 힘을 발휘하면서 구체적 현상에 실제적 영향을 발휘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해 방식을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지 인식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차원의 문제이다. 이것은 생명 연구가 추상적 보편의 관점에서 진행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 다르게 위치하게되는 차이 등을 면밀히 검토하는데서 출발할 것을 요구한다. 생명에 대한 이해는 객관적으로 파악되고 접근되어야 할 진리로서가 아니라 제반 권력 관계 속에서 형성된 사회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전제 위에서 접근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생명복제에 대한 규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생명과학 안전 및 윤리에 관한 법률>, <생명윤리기본법>에 대한 보도를 신문지상에서 접하게 된다. 보도는 안락사, 임신중절, 장기이식, 인간배아연구 등등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우리 사회에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생명 윤리 문제에 대해서 논쟁다운 논쟁을 전개해 본 적이 드문 우리 사회에서 이들 법안이 상당한 사회적인 관심을 모은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지만 생명 과학이 자본시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빼놓고 이들 관심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겨진다. 즉, 생명 과학이 기술 및 지적 자본이라는 인식 아래 국가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신지식산업으로 자리 매김 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를 거슬려, 이들 법안이 국가적인 손실을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배후에 작용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자본, 산업, 이익이라는 것과 분리될 수 없는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의 “생명”은 그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을 “생명 그 자체”로 본다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함의한다. 이것은 생명 연구가 “생명”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런 사용이 어떤 담론의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주목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이 글은 이들 여성주의자들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여성주의적 생명개념의 가능성을 확인해 볼 것이다. 자본시장의 논리가 생명 개념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면, 가부장적 논리가 이들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이제까지 역사는 오랜 기간 남성의 권력 아래 여성을 종속시키는 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보는 질서 속에 삶의 제반 제도를 세워왔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이해에 이들 가부장적 편향이 스며있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손(생명)  번식을 중심으로 해서 남녀의 관계를 정의해온 역사임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서 여성주의는 성의 가부장적 권력 관계를 의미 분석의 중축으로 하는 관점에서 “생명”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 사회가 오랜 역사적 기간동안 양성불평등한 제도와 의식 속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해왔다는 인식 아래, 생명에 대한 지식을 생산해온 남성중심의 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여성 스스로의 경험에 기반한 생명 개념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논의의 순서는 먼저, “생명” 개념의 성격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생명 논의의 성격을 정리한 후, 여성의 출산능력에 가해진 가부장적 권력관계라는 틀 안에서 의료 및 생명공학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끝으로, 이들 비판점들을 극복하는 생명관의 형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핌으로써, 이어지는 토론의 장을 열고자 한다.          


2.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서구의 ‘생명’ 비판

여성주의란 무엇인가?  여성주의는 어떤 사안에 대해 통일된 하나의 입장을 갖는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만큼 그 안에 다양한 입장들이 있다. 따라서 생명의 문제를 보는데 있어서도 여성주의는 그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역사적 현실의 권력구조가 이제까지 남성에게 여성을 종속시켜왔으며, 그런 구조를 삶의 기본구조로 삼아왔다는 것, 그것이 여성들의 삶(life)을 고통스럽게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문제로 언어화조차 되지 못해 왔다는 것, 제반 문제들을 이해하고 평가하는데서 이들 성 권력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 등에 대하여 기본적 인식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여성주의”라는 한 우산 아래 서있다. 결국,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생명을 논한다는 것은 이들 불평등한 성 권력 관계 속에서 생명의 문제가 어떻게 여성의 삶에 영향을 끼쳐왔는가를 살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주의의 기본 인식에 토대하여 생명의 개념사를 훑어볼 때, 그 역사적 변천의 어느 시점도 여성주의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즉, 그들은 남성중심적 생명관의 면모들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여성주의적 논의의 대부분은 현재 여성들의 삶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생명 담론의 연원을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탐구하면서 지배적 생명관의 사회 문화적 맥락을 파헤치는데 할애되고 있다.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생의 정치학사(bio-politics)를 조명하고 있는 푸코(Michel Foucault)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생명 그 자체(life itself)는 근대에 출현한 것이라 적고 있다.

“역사가들은 19세기에 (비로소) 생물학의 역사를 쓰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생물학이 그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150년 동안 우리에게 익숙해 있는 지식의 패턴이 그 전 시대에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생물학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생명 그 자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존재했던 모든 것이 살아있는 존재들이었고, 그것들은 자연사에 의해 구성된 지식틀을 통해 보여졌다.”(1970. 128쪽. 사물의 질서)

이것은 “생명 그 자체”가 시대적 맥락성을 갖는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생명”은 시대에 따라 자연, 존재를 가리키는데서 근대 생명 과학의 탄생과 더불어  생물학의 대상을 가리키는데로 변화해온 유동적인 개념이다.

현 의료윤리와 생명과학 연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생명”관은 근대 이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우주 전체와 분리되지 않은 전일적인 것으로 ‘생명’을 이해했던 전근대적 생명관으로부터 개별화된 몸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을 생각하는 이른바, 분리된 원자적 단일체로서의 근대적 생명관으로의 이전이 그것이다.  이 같은 이전에 의해 구성된 “생명권”이라는 개념은 그런 의미에서 근대적 개념이다. 근대 이전의 패러다임에서 생명이란 개체의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전일한  존재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근대적 생명관은 근대적 인권 개념의 기초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인간생명과 다른 생명들과의 유기적 연관성을 훼손하면서 인간생명의 절대성을 확보하는데서 오는 문제를 야기했을 뿐 아니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태론적 전개가 필요하다. 이번 발표에서는 생명을 몸과 관련시키는 논의로 제한한다.  
, 인간 생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정신적/육체적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생명을 보는 왜곡된 방식을 마련했다.
근대적 생명관의 기본틀을 마련한 대표적인 철학자로 흔히 데카르트를 꼽는다. 데카르트는 정신은 물리적 연장을 가지지 않지만 생각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몸은 물리적 연장을 갖지만 생각할 능력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이분화했다. “이분화”란 구분되는 둘 사이의 관계를 배타적 대립으로 설정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갑과 을의 구분이 아니라, 갑과 -갑의 구분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물리적 세계를 초월적인 정신의 능력에 의해 연구되어야 할 ”죽은 사물“로 설정한 것이다. 이제 물리적인 것만이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따라서 진정한 과학의 영역에 들어온다. 이에 따라 몸의 질병을 연구하는 생명의료 과학적 관심과 적절한 연구방법은 질병의 물리적 환경을 포함하여, 물질적 원인에 강조가 두어지며 그 원인을 찾는 방법에 모아진다. 이런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은 데카르트 이전 그리스 히포크라테스 전통의 의학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발견되지만, 데카르트의 개념 구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고전적 의미의 물질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바와 같은 죽어있는 물질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를 탐구하던 시초에 생명은 어디에나 있었다. 존재는 살아있는 생명존재나 다름없이 이해되었다.... 영혼은 현실세계 전체에 가득 넘쳐있었으며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의 인간들은 영혼이 없는 죽어있는 질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죽어있는 물질을 가정하는 것이 친숙하지만 그들 고대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세계가 살아있는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자연스런 가정이었고, 우선 그들 시야에 보이는 현상들이 이 가정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 우리가 오늘날 영혼이 없다고 알고 있는 것도 대부분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생명의 역동성과 내면적으로 얽혀있는 것으로 본성상 그렇게 생명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흙, 바람, 물들이 생성되고, 소용돌이치며, 생명들을 먹이고, 파멸시키는데 있어서 이들은 단순한 물질의 종류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한스 요나스, 1994)

존재 자체를 생명력있는 전일적인 것으로서 파악하는 전통 속에서 아리스트텔레스는 생명을 영혼 또는 생기(vital force)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며, 모든 실재는 그것을 통해 형태와 운동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생명을 영혼과 질료가 결합된 구체적인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에 반해, 데카르트는 신적인 영혼과 과학자의 관찰 대상인 기계적인 몸으로 철저히 이분화한다. 영혼없는 물질과 물질성을 갖지 않는 영혼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인간의 물질적 몸은 인과적 원리에 지배되는 기계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3. 남성중심적 의료·생명과학

데카르트 이후 근대 생물학과 생의학 역시 기본적으로, 영혼과 분리된 물질로서의 몸을 대상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정신과 분리된 육체 중심적인 생명관은 사회 문화적인 환경, 더 구체적으로는 가족관계와 같은 친밀한 관계를 포함해서 여러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비로소 파악할 수 있는 생명의 고통(질병)이나 안녕(건강)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게 만드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사회적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생명 작용의 층위를 보지 못하는 결과를 갖는 것이다. 이런 이분화가 미친 인간이해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페미니즘 연구 안에서 활발히 전개되어왔다.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고 양육하는 일을 담당해왔던 여성들은 데카르트의 이분법적 도식이 생명을 말하는데 부적절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는 통합적인 것으로 보아야하며, 더 나아가 생명은 독립된 개체가 외부 환경과 관계 맺는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물질적인 환경 뿐 아니라 그 제반 환경과 연결되어 있는 관계적 성질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 입장의 주류를 이룬다. 특히 여성의 출산과 관련된 의료적 관행이나 기술, 지식 등은 이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근대 의료 과학 기술의 발전은,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의 생명 창조 능력을 남성들의 통제 아래 두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과학”의 틀 안에 속하는 의료기술은 생명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남성에게, 생명에 대한 책임은 여성에게 분배하는 생명권력구조를 만드는 수단으로 역할해 왔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남성권력의 구현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 몸의 생식기능과 관련되는 산과학사를 살펴보면, 이전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던 재생산이 근대 이후 남성 의사집단으로 대치되지면서 그 방식이나 의미들이 변질되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생산 지식과 기술이 여성들의 지식영역으로부터 남성지식으로 재편되어가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연구저서들이 나와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Ehrenreich and English (1979), Donnison (1977), Rich(1986)이 있다. 리치와 도니슨은 각각 그들의 책에서, 이전에는 외과적 처치가 필요한 응급상황일 때에만 개입하던 의사들이  어떻게 여성산파들을 몰아내고 분만과정에 개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 출산을 전적으로 몸(질료, 개체)의  기계적인 자연 현상으로 취급하는 근대 산과학에서 개발해낸 소위 출산 기술들은 여성의 몸과 태아를 그야말로 대상화함으로써 여성의 자기 소외를 체감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임신 출산은 여성의 건강한 생명 작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질병을 치료하는 (남성 의사들이 대다수인) 의료관리체계 아래 놓음으로써 여성의 생식능력 자체를 폄하하는 문화기제를 강화하고 있음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유전자의 발견과 더불어 인간공학이 발전되면서 이들 근대적 생명관은 그 모습을 더욱 정교화하고 있다. 1894년 프랭크 파슨스(Frank Parsons)의 인간공학에서 인용한 글을 보자. “생명은 어떤 상상가능한 형태로도 주조될 수 있다. 개나 사람을 당신이 특정하게 그려봐라, 그리고 당신이 환경 통제권을 나에게 주고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나는 당신의 꿈들을 살과 피로 입혀낼 것이다”. 이 글은 생명을 지배하는 물질적 원리인 유전체의 신비가 밝혀지면 그 어떤 생명형태도 인간이 설계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출발한 유전학의 발전은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생명현상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들 생명 공학의 발전이, 역사적으로 여성을 성권력 관계에서 종속적 위치에 놓이게 했던 물적 조건에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여성해방에 기여할 것이라고 본 여성주의도 있다(Shulamith Firestone, 성의 변증법). 생명과학기술이 더 이상 인간 생명 창조를 위해 여성의 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발전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의학기술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이들 생명공학이 그 역사가 지녀온 성격을 달리하여 여성 억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 지적하고 있다.

유전공학이 여성에게 제기할 문제를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살피고 있다. 하나는 인간 유전체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요, 다른 하나는 연구 결과물로 얻어진 인간 유전정보의 활용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유전체 연구 과정에 여성의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으며, 또한 얻어진 유전정보가 남녀평등의 이념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남녀차별의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지, 그리고 유전정보를 여성에게 불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 등의 주된 물음이 연구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인간 유전체 연구 과정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취급될 것인가? 최근 유전자 변형 아기 출산 및 배아복제 등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조작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전자 조작 속에는 언제나 여성의 난자가 이용되고 있다. 즉, 과학자는 남성에게서는 체세포를 얻어 핵을 추출하지만, 여성에게서는 난세포를 채취하여 그로부터 핵을 제거하게 된다. 따라서 여성 몸에 대한 착취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 유전체 연구 과정에서 여성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구자는 반드시 대상자로부터 ‘충분한 정보에 의거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받아야 하는 등, 무엇보다 생명의료윤리의 대원칙인 자율성 존중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보지만, 이것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 조영미가 여성의 출산의료기술 경험을 인터뷰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위 시험관 아기를 갖기 위해 난자를 추출하는 과정들에 참여한 여성들이 그들의 몸의 고통은 물론 심리적 훼손을 심각하게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몸이 마음과 분리된 것이 아닌 다음에야, 이들의 경험은 단순히 몸의 소외나 몸의 착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의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마치 아기를 낳는 기계처럼 느껴진다고들 말한다.  
더 나아가서 소위 체세포 핵이식 복제술로 인한 자녀 출산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부에서는 핵이식 복제술로 인해 자녀 출산에 남자가 배제됨으로 말미암아 남성 소외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견한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현실적 여건은 거꾸로 여성이 소외되는 현상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복제술을 보조생식술로 이용할 경우 여성불임의 경우에도 남성의 체세포에서 핵을 채취하여 대리모를 이용하여 남성의 유전자가 섞인 자녀, 그것도 아들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해질 경우 여성은 대리모를 통한, 또는 대리모로서의, 출산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예견의 신빙성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체외수정, 난자기증, 인공수정, 대리모 등의 의료기술들이 남성(남편)과 유전적 연결성을 갖는 아이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는 것에서도 더해진다 현실의 제반 윤리규정이나 규제들이 기존의 가치관과 질서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며, 그럼으로써 그런 가치관을 강화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비판은 난자 기증을 통한 체외수정을 남편과 유전적으로 관계되는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이용할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데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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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체 연구에 의해 밝혀진 성과들이 남녀차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결과에 따라 인간과 다른 동물간의 유전체상의 차이는 물론, 한 인간의 생애에 나타나게될 유전적 질병의 지도까지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유전체 정보는 남녀 관계에 어떤 함의를 갖는 것인가? 이들 비교유전체 연구 결과물이 남녀 관계에 어떤 의미 효과를 갖게될 것인가를 전망한다는 것은 곧 그에 관한 담론들이 현실의 남녀관계의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들을 구성하게될 것인가를 고려한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들 유전체 연구들이 자본주의적 이익과 분리될 수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어있음으로 인해 그 연구 자체가 생명을 상품화해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이미 지적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유전체 연구들이 가부장적 관념들과 상호결합되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들 연구들이 여성의 삶을 해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보다는 기존의 억압적 질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리라는 전망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각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지면 유전자 검사 및 유전자 상담이 크게 성행할 것이고, 유전자 검사는 인간 개체 발생의 모든 단계, 그러니까 정자 난자, 수정란, 배아, 태아, 어린이, 성인 등 모든 단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때,  예를 들어, 가장 일상적인 현상이 바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성감별일 것이며, 그 결과 이차적 성 선택인 임신중절이 이루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인 콤플렉스로 인한 유전자 성형까지도 첨단의학사업으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른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이는 실천적 필연성인지 모른다. 수정란 단계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예 원하지 않는 성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유전적 특성을 지닌 수정란은 폐기처분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유전공학과 재생산 기술의 발전 및 적용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은 FINRRAGE 이다. 지나 코리아(Corea, 1985), 마리아 미즈(Mies, 1987), 로빈 롤랜드(Rowland, 1985) 등이 참여한 이 그룹은 1984년 네덜란드의 그로닝겐에서 개최된 제 2회 국제 여성회의에서 12개국에서 참가한 5백여명의 여성들이 ‘새로운 생식 기술에 관한 페미니스트 국제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그 다음해 7월에 스웨덴에서 긴급회의를 열 것을 결정한데서부터 비롯하였다. 결정에 따라 이듬해 이들은 스웨덴 회의에서 <재생산 및 유전자 공학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국제연대>(Feminist Inrernational Network of Resistance to Reproductive and Genetic Engineering)로 단체명을 정하고, 유전공학 및 재생산기술에 반대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이 우생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중시한 것이다. 그 품종개량을 목적으로 한 동물실험을 통해 동물의 재생산을 더 통제할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체외수정과 같은 재생산 기술은 배아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코리아는 이들 과학에서, 동물들이 현재 마치 사육기계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과 같은 식으로, 여성들이 전문적인 사육자의 명령에 따르는 어머니 기계(mother machine)가 될 미래를 예감한다. 앞으로 유전적으로 완벽한 아기의 제조를 목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들 재생산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일반적 자연 재생산과정은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결국 이들  전문가(남성)가 인간의 창조를 완벽하게 통제할 것이고 마침내 여성은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Judy Wajcman,1991:114).
태아와 여성의 몸을 분리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이 기술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전쟁의 새로운 단계가 될 것이라 보는 마리아 미즈는 “기술적 진보의 방법이란 살아있는 유기체들 간의 자연적인 연결고리들을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남성공학자의 계획에 따라 이들 유기체를 기계처럼 재조립하기 위하여 나눌 수 있는 가장 최소의 요소들로 나누어서 해부하고 분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술이 목표하는 곳은 생명이 자연과 여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다. 즉 재생산 기술과 유전공학은 남성의 자연 지배의 “최후의 미개척 분야”를 정복하려는 것을 의미한다.(Judy Wajcman,,115)
이 같은 맥락에서 FINRRAGE가 채택한 결의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성의 신체는 생명을 만들어 낸다는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과학기술에 의한 인간 생산을 위한 원료로서 수탈되고 분해 당하고 있다. 이 같은 과학기술개발은 우리들 여성과 자연, 착취당하는 세계사람들에게 선전포고하는 것이다. 유전자 공학과 재생산공학은 신체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수탈하는 것이다 ... 우리는 유전자 공학과 재생산 공학 개발이나 그 응용을 저지한다.“ (리사 터틀,1986: 165) 이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국가들과 이 문제를 가지고 접촉하고 있다. 그 목적은 생식공학과 유전자 공학 분야에서의 개발을 국제적으로 감시하는 것, 그 같은 개발이 세계 각국 여성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 행복에 장래 어떤 의미를 갖게되는가를 조사하는 것, 생식공학과 유전자 공학에 대한 사회적 반응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 등이다.
 

물론 이상의 논의가 의학이나 유전공학등의 생명과학 자체를 부정하거나 거부한다고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여성들 자신들조차 이들 의료적 도움이 전무한 출산과정을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여성들 스스로 이들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과거에는 운명으로 감수했어야할 여러 질병이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들 과학이 가져온 긍정적 측면들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기본적 인권들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것을 막자는 것에 있다.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성억압적 권력 사용의 측면에 예민한 감각을 키울 필요를 강조한 셈이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그런 부당한 권력 사용 자체를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과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생명 규범이라 믿는데 까지 이르게 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이 가부장적 남성이나 의료관계자, 정부, 종교 등에 의해 억압당하지 않고,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데 관련된 권리를 가지도록 할 것을 요구한다. 박은정이 <생명공학시대의 법과 윤리>에서 소개하고 있는 카프만(Arhur Kaufmann)이 제시한 생명과학의 여섯가지 원리 중에는 “모든 여성들이 다 그렇게 하기를 원할 수 없는 한, 단순히 편안하고자 아기를 스스로 포태하지 않으려는 특별한 권리를 향유하고자 하지 말라(정언명 혹은 보편성 원리)”는 세 번 째 명령이 있다 박은정(2000), <생명공학시대의 법과 윤리>, 서울:이대출판부, 102쪽
. 필자는 이것이 어떻게 그의 첫 번째 원리, “개인이 그 소질에 따라, 평범하건, 잘못되었건, 그에 고유한 삶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과 양립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성의 소질이 아이를 낳는데 있다고 가정하거나, 어떤 여성의 소질에 따른 삶의 고유한 방식도 아이를 낳는 일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면, 위의 두 원리간의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정은 모두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필자가 보건대, 이 두 원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카프만은 세 번째 원리를 다음과 같이 수정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모든 여성들이 다 포태하지 않기를 원할 수 없는 한, 포태가 그 여성 개인의 소질에 따라 그 고유한 삶을 추구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라”.
카프만을 굳이 거론한 이유는 생명윤리학자들 조차도 생명의 절대적 가치 또는 인류존속의 가치를 앞세워 여성들이 한 개인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인격권을 이차적인 것으로 만들곤 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4.  나가는 말

여성주의자들이 서구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 자연 또는 신의 보편적 관점에서 정의되어왔던  "생명" 개념의 남성적 한계를 비롯하여 근대 과학적 틀 속에서 구성되는 생명관의 편파성을 실제 의료제도나 유전공학의 장을 통해 밝히는 작업들을 하는 이유는 가부장적인  편파성을 넘어서 여성의 입장이 반영되는 "생명" 의 재개념화가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성에 따라 생명관이 다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여성의 생활세계가 이제까지 남성의 그것과 달리 주어져왔던 점을 인정할 때, 그 속에서 형성된 여성 주체가  생명을 경험하게되는 방식이 남성의 그것과 다르리라 추론하는 것은 타당하다 할 것이다. 특히 생명을 잉태하고 자신의 몸을 통해 길러내는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과 다르게 생명을 체험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지 모른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이 차이가, 이분법적인 지배종속의 권력 관계 속에서 세계를 파악하는, 남성들의 생명 이해가 가져온 폐해들을 치유할 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여성주의적 “생명”이란 “이것”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경쟁하는 개체로서보다는 전일적인 것으로서, 위계적이기 보다는 그물망과 같은 관계로서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여성주의적 생명관이라 말할 수 있겠다.      
특히 생명이 경쟁적 유전자들의 생존경쟁을 통한 재생산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전환적 발상을 요구하고 있다. “ 그들은 당신과 내 안에 있다. 그들이 우리를,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의 보존이 우리 존재의 궁극적 이유이다. 그들은 오랜 길을 왔고, 그들의 복제들이다. 이제 그들은 유자자의 이름에 의해 가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들이다.”라는 리차트 드워킨의 말에게 확인되고 있듯이, 유전자가 곧 생명 그 자체가 되고 있는 이 시대의 생명관과 자본주의적 시장 논리가 결합할 때 그것이 초래할 사회상은 상당히 위험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미 유전공학은 21세기 “자아 실현”을 보장하는 기술로 표방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19세기 유전 공학이 인종적 순수성과 완전성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담론화되면서 인종 우생학을 발전시킨 것에 비해, 민족적 정체성보다 개인적 정체성이 중심이 되고 있는 21세기 유전공학은 개인의 욕망 실현이라는 포장으로 우생학의 모습을 가린 채 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최대한 효율적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 인이 이들 공학적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자발적인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자신의 유전자에 대한 개인적 자기 결정권의 행사이며, 자신의 유전자에 대한 적극적인 소유권 행사로 인식되고 있다. 이미 성장 호르몬 주입에 의한 유전자 치료 등에서 그 같은 예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 비슷한 키, 비슷한 체중, 비슷한 외모의 인간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상상하게 한다. 개인의 자아 또는 생명을 최대한 실현시키면서 동시에 사회적 효율성 역시 최대화할 것을 목표하는 경영학적 유전공학이 초래하게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인종적 우생학에 기초한 사회를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섬뜩하다.  
방향을 선회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길 또는 여성주의적 실천은 이들 지식과 기술이 초래하는 폐해들에 대한 비판적 감각을 발휘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바로 여성주의자들이 앞에서 보여준 바 방식이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자의 입장에서 겪게되는 폐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대변할 수 없는 생명의 연계망 속 다른 존재자들의 입장에 서서 이들 생명공학의 착취적 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것이다.  
어느 생명철학자가 이렇게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생명이 무엇인가, 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등의 근본적 물음이 대답될 때 비로소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명을 다루어야 하는지, 어떻게 유전체 연구들이 진행되어야 하는지가 대답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와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식의 사고는 오히려 문제에 대한 독단적 대립만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그 역순의 사고이다.  구체적이고 어떻게 생명들이 다루어져왔는지, 생명과학 연구들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관련되는 당사자들에게, 특히 약한 존재에게, 어떤 결과들을 가져왔는지를 통해 생명에 대한 이해에 접근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가시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그 동안 침묵되었던 소리들을 경청하는 담론의 장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박은정(2000), <생명공학시대의 법과 윤리>, 서울:이대출판부,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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