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4(화)
생명과 평화의 동아시아ㆍ태평양 신문명 창조  
김 지 하 (시인,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

전 인류 문명사의 대전환점이다.
전환점의 현실은 대혼돈(Big Chaos)이다. (註: 인간의 내면적 평화의 붕괴, 신자유주의 시장 세계화의 결점 노출, 테러와 전쟁, 문명 충돌, 지구 생태계 오염, 온난화, 쓰나미, 기상이변, 해수면 상승, 등등의 혼돈)
진정한 전환은 이 대혼돈에 대한 탁월한 과학적 처방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그 탁월한 과학은 혼돈에 침잠하면서도 혼돈을 빠져나오는 ‘혼돈적 질서(chaosmos)’라는 이름의 탁월한 인문학적 새 삶의 담론(discourse), 기준(paradyme), 원형(archetype)의 촉발에 의해 성취된다.
생명과 평화가 바로 그 담론이다. 생명은 혼돈이요 평화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매 혼돈적 질서는 그 기준으로서 새 삶과 새 세계의 원형인 ‘궁궁태극(弓弓太極)’을 인류 앞에 함께 제시한다.
아시아와 아시아의 웅변인 동아시아, 그 동아시아의 일대 축략인 한민족은 모든 동아시아,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인과 함께 지금 여기 인류사 앞에 생명과 평화의 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생명과 평화의 길은 전 세계인에 의한 대규모 아시아 르네상스의 과정이자 결과일 것이며 세계 문화 대혁명의 지속적이고 평화적인 과제요 사상인 것이다.
생명과 평화의 길은 우선 역동적인 ‘천(天), 지(地), 인(人)’의 삼축(三軸)과 균형적인 ‘음(陰)ㆍ양(陽)’의 이축(二軸), 그리고 그 양자를 총괄하는 ‘한(一元)’의 웅혼한 우주생명 사상의 길이다. 그것은 전 아시아, 동아시아와 한민족의 전통 사상사에 있어 그 중핵이요 그 법통이다.
‘천(天), 지(地), 인(人)’의 삼축(三軸)은 시간성, 공간성, 인간의 육체성으로도 압축되며 영성(靈性), 민중성, 여성성으로도 배치된다. 그것은 생명의 순환성, 관계성, 다양성으로도 계열화 되며 우주 물질 구성의 벼리(원리), 바탕(질료), 기운(주체)으로도 변별된다.
‘음양’의 이축은 혼돈과 질서, 역동과 균형, 상극과 상생, 숨은 차원과 드러난 차원, 혼돈한 신바람인 흥(興)과 교술적 비유인 비(比), 논리에 있어서는 ‘아니다와 그렇다(不然其然·No-Yes)’, 그리고 여성중심ㆍ혼돈중심으로 약간 기운(시중ㆍ時中) 기우뚱한 남녀균형, 혼돈적 질서 등으로 나타난다.
천·지·인의 삼축과 음양의 이축은 기실 ‘한’의 사상 및 문화 안에서 현실화 된다.
‘한’은 ‘낱(個)’이고 ‘온(全)’이며 ‘중간(中)’이고 ‘관계(間)’다. 그것은 하나님, 하느님, 한울님, 하눌님의 원어인 ‘한님’이며 사람의 줏대와 타자, 모든 생존의 원류인 ‘한 삶’이다. ‘한’의 가장 보편적이고 깊은 뜻은 ‘영원한 푸른 하늘’이다.
‘한’은 전 아시아와 동아시아, 특히 한민족의 문화, 경제, 정치의 공통의 눈동자로서 빛나는 전통을 이미 이루었다.
밖으로는 생명의 흐름, 안으로는 영성의 떨림이 교호 관련하며 중력과 초월이 서로 결합하는 유(儒)ㆍ불(佛)ㆍ도(道) 삼교의 포함(包含三敎)과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風流)의 문화.
활활발발한 교환(交換)과 인격 및 생태계를 함께 존중하는 따뜻한 호혜(互惠)가 이중교호하여 전혀 획기적인 재분배(再分配)에 도달한다는 신시(神市)의 경제.
야단법석의 직접 민주주의와 찬·반, 다수·소수의 전원일치제의 배합으로 거의 완전 민주주의에 접근할 수 있다는 화백(和白)의 정치.
그리고 커리, 고리, 커울리, 고굴리, 고구려의 신령한 예술혼이었던 ‘흰 그늘’의 미학과 ‘한살림’의 의미구조를 안에 갖춘 여성중심의 생명사회살림의 모권제(母權制)등이 모두 다 그 사상적 토대를 ‘한’에 두고 있다.
나, 그리고 우리는 파미르, 천산, 알타이, 바이칼, 아무르와 캄차카 등의 구비 전통들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직접 확인했으며 이 전통을 중심으로 한 일대 아시아 르네상스를 통해서 그리고 그와 함께 세계 대 문화혁명을 통해서 마땅히 새로운 문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야 하고, 또한 넉넉히 그것을 창조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참으로 경건하고 신실된 마음가짐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다음의 세 가지 제안을 동아시아, 전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공개적으로, 그러나 조용한 목소리로 선언하는 바이다.
첫째, 한국과 미국은 모든 아시아와 모든 유럽을 압축하는 정동(正東)과 정서(正西)에 주어진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의 소명을 받들어 생명과 평화의 동아시아ㆍ태평양 신문명의 창조적 파트너십을 단단하게 구축해 나갈 것을 선언하며 제안한다. 이 문명의 창조를 통해 지구 현실의 대혼돈에 대해서 탁월한 인문학적 원형, 기준, 담론의 제시와 이에 의해 탁월한 혼돈적 질서의 과학을 촉발ㆍ완성시킨다.
둘째, 그 파트너십의 한국 쪽은 남북한의 점진적, 지속적 평화통일 노력이라는 전제(前提)를 함축한다.
셋째, 바로 이 문명이 내포하고 의미하는 바 전지구 및 인류 문명사의 과제 해결의 높고 큰 대의명분을 깊이 숙고하고 일본과 중국은 이 파트너십의 창조작업에 대해 전적으로 보필·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천시(天時)라는 역사적 필연의 요구와 지리(地利)라는 동아시아 위상의 큰 변화를 보면서 사실은 내내 고민해 왔다. 그것은 그 요구와 변화를 감당할 만한 집단적 주체와 그 주체의 창조력(人和)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시작으로 그 집단적 주체가 홀연히 나타났다. 그리고 그 주체의 창의적 정신이 놀랍게 드러났다. 10대, 20대, 30대 초, 중반의 청소년과 어린이, 더욱이 그 절반을 훨씬 넘는 여성들, 젊은 주부들의 엄청난 활력이 눈부시게 폭발했고 그 활력과 창의력은 이후 ‘한류(韓流)’를 통해서 작열하기 시작했다. 정역(正易)의 핵심 사상인 ‘기위친정(己位親政)’의 명백한 조짐이다. (註: 동아시아 과학의 간지(干支)로 볼 때 제일 마지막인 기(己), 즉 이 세상에서 찌꺼기 취급을 받는 청소년, 어린이와 여성들이 스스로 정치를 담당하는 후천개벽)
나는 아직은 크게 드러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한국의 깊고 넓고 오묘한 콘텐츠와 미국의 이미 드러난 그 어마어마한 하드웨어, 과학ㆍ기술ㆍ자본ㆍ전세계적 영향력과 현실적 추진력이 결합할 때 전인류 문명사의 대전환이 반드시 가능하리라는 낙관에 잠겨 있다.
‘참된 과학의 첫 샘물은 문학·예술이다.’ 제프리 츄의 말이다.
‘문화가 교역을 유도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말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대서양 루트에서 동아시아ㆍ태평양 루트로 옮져지고 있다.’ 헨리 키신저의 말이다.
마지막으로 1879년에서 1885년 사이에 충청도 연산에서 김일부(金一夫)선생이 공표한 정역(正易)의 중요한 두 매듭이 우리 앞에 청청하게 살아 있다.

‘간태합덕(艮兌合德-한국과 미국의 후천 문명 공동 창조의 파트너십)’
‘진손보필(震巽補弼-일본과 중국이 이 일을 곁에서 충심으로 보필함)’

김일부의 정역은 다름아닌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이미 예언된 후천개벽기의 한국역(韓國易)이며 민중역(民衆易), 중생역(衆生易), 여성역(女性易), 세계역이다. 정역의 검토는 그러므로 주역과 그 이전의 복희역(伏羲易), 그리고 주역 및 정역 사이, 선후천 문명 사이의 복잡한 지구현실 관계에 대한 새로운 역학적, 즉 생명학적 심사숙고가 전제된다.
따라서 ‘궁궁태극(弓弓太極)’의 전 지구과학적 탐구와 그 창조적 작업이 지금 곧 한국과 미국 어느쪽에서든가 바로 시작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주역’의 우주 질서 체계인 ‘율려(律呂)’를 ‘여율(呂律)’이라는 혼돈적 질서로 뒤집어 놓은 것이 바로 다름아닌 한반도 남쪽의 정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 미국의 지성과 과학은 이같은 혼돈적 질서의 원형ㆍ기준ㆍ담론을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 생명과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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