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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4(화)
한국의 양명학과 생명사상  
김 세 정 (충남대 철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양명학이 한반도에 처음 전래된 지 어느덧 48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양명학은 전래 초기부터 이황李滉(1501~1570)에 의해 선학禪學보다 더한 배척의 대상으로 규정되고, 이후 퇴계 문하에 의해 ‘이단異端’,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배척받으면서 고난과 시련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그러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양명학은 이요李瑤(생몰년 미상), 장유張維(1587~1638), 최명길崔鳴吉(1586~1647) 등에 의해 수용되고, 나아가 정제두鄭齊斗(1649~1736)와 강화학파江華學派에 이르러 한국양명학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당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보여준 주자학적 대의명분大義名分의 허위의식과 비주체성 및 실천성의 부재 등을 비판하고 양명학적 ‘양지론良知論’과 ‘지행합일설’ 그리고 ‘인간평등론’ 등에 근거하여 실심實心, 실질實質, 실리實理, 실사實事의 정신과 주체성, 실천성 및 자주성을 회복함으로써 당시 시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점, 즉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占의 한말전환기에 박은식朴殷植(호는 白巖, 1859~1925)과 정인보鄭寅普(호는 爲堂: 1892~ 미상)는 양지론良知論을 근간으로 한 ‘인간평등론’과 ‘천지만물일체설天地萬物一體說’에 근거한 양명학을 통해 서구문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동북아시아의 공통적 과제와 일제日帝로부터의 국권회복國權回復이라는 시대적·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비록 한국에서 양명학이 수용 단계부터 이황과 그 문하에 의해 사문난적 또는 이단으로 심한 배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주체성’과 ‘실천성’, ‘시대정신’ 및 따뜻한 ‘생명애’를 보여 온 뜻있는 선각자들에 의해 수용·발전되면서 한국의 양명학으로 뿌리 내리게 된다. 발표자에게 맡겨진 ‘한국의 양명학 속에 내재된 생명사상’을 고찰하기에 앞서 먼저 한국양명학의 뿌리가 되는 왕양명의 생명철학의 특성들을 고찰하고, 시론적 단계에서 한국양명학의 생명사상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한국양명학의 뿌리 - 왕양명의 생명철학
철학자로서, 교육자로서, 무관으로서, 경세가로서 중국 명대明代 중기를 살다 간 왕양명王陽明(1472~1528, 이름이 守仁, 자는 伯安, 陽明은 호)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역경과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 주체적이고 역동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면서 자신의 독창적 ‘심학(心學) 사상’인 생명철학을 수립하였다.  
1) ‘심즉리(心卽理)’와 인간 주체성의 확립
왕양명의 대표적 학설 가운데 하나는 그가 37세 때 귀양지 용장龍場에서 오도悟道 후에 제창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이다. ‘심즉리心卽理’는 주희의 ‘격물설格物說’과 ‘성즉리性卽理’에 대한 반론이다. 주희에게 있어 ‘격물格物’은 객관적 대상 사물에 나아가 그 곳에 내재된 형이상학적인 객관적 존재의 원리·법칙[所以然之故] 또는 경전에 담긴 선험적인 보편적 당위의 규범[所當然之則]으로서의 ‘리理’를 탐구·인식함[卽物而窮其理]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본성(性)만이 리理로 정의 될 뿐, 마음(心)은 리를 지각하고 운용하는 기능적인 측면만을 지닌 기적氣的 존재로 정의된다. 󰡔朱子語類󰡕, 권5, “性便是心之所有之理, 心便是理之所會之地.”, “靈處只是心, 不是性, 性只是理.”, 󰡔朱子文集󰡕, 권24, “人之一身, 知覺運用, 莫非心之所爲.”
따라서 주자학에 있어 마음과 리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이라는 이원적 체계를 지니게 되며, 주희의 격물설은 심리心理 이원에 근거하여 리에 대한 마음의 종속성과 향외적, 주지주의적, 사변적 성격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양명은 주희의 ‘격물설’은 대상 사물에 나아가 고정불변한 이치인 ‘정리定理’를 구하는 것으로써, 이는 내 마음이 사물 가운데에서 리理를 구하는 것이 되어 마음과 리를 양분하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傳習錄󰡕(中), 「答顧東橋書」, 135조목.
‘격물格物’을 새롭게 해석한다. ‘격물’은 ‘올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 올바름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正其不正而歸於正]으로 정의되는 바, 대상과 관계 맺음 과정에서 마음으로부터 의지가 발동하는 단계에서 ‘사사로운 욕망에 기인한 사의私意를 제거하고 본심本心에서 직접적으로 발현한 성의誠意를 실천으로 이행하는 ’위선거악爲善去惡’을 의미한다. 󰡔王陽明全集󰡕 권26, 「大學問」, 972쪽 참조.

‘심즉리설’은 양명의 새로운 격물설의 토대가 된다. ‘성즉리’만을 주장하는 주희와 달리 양명은 ‘심즉리心卽理’와 ‘심즉성心卽性’을 주장한다. 먼저 양명은 “이 마음이 물에 있은 즉 리가 된다.[此心在物則爲理] 예컨대 마음이 어버이 섬기는 데 있으면 효가 된다[此心在事父則爲孝]”(󰡔傳習錄󰡕(下), 「黃以方錄」, 321조목)고 주장하고, 또한 “리란 마음의 조리(條理)이다. 이 리가 부모에게 발휘되면 효孝가 된다”(󰡔王陽明全集󰡕, 권8, 「書諸陽百卷(二)」)고 주장한다. 따라서 양명에게 있어 효와 같은 ‘리’는 주자학에서와 같이 인간 마음 밖의 불변하는 선험적인 당위의 도덕규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와 같은 천지만물과의 감응感應 과정에서 상황에 부합되도록 마음으로부터 항상 새롭게 ‘창출創出되는 실천 조리’를 의미하는 바, ‘마음이 곧 리’가 되는 일원의 계기를 갖는다.  
아울러 양명은 “마음의 본체는 성性이니, 성이 곧 리理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효도의 리가 있고 효도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효도의 리는 없다”(󰡔傳習錄󰡕(下), 「答顧東橋書」, 133조목)고 주장한다. ‘성性’이란 주자학에서와 같이 미발未發, 즉 마음이 순응해야 하는 작용성이 없는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마음 그 자체의 ‘유기적 속성’으로서 ‘성’은 상황에 따라 효와 같은 구체적인 실천 조리로 드러나게 된다. 예컨대 부모님과 마주하기 이전부터 자식은 마땅히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하는 선험적인 당위의 도덕규범으로서의 리가 선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으로부터 유기적 생명성으로서의 ‘성(性)’이 발현되어 상황에 부합되는 구체적인 실천 조리로서의 ‘효의 리’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음이 곧 리’[心卽理]이며 ‘성이 곧 리’[性卽理]라고 말할 수 있으며, ‘리는 내 마음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心外無理]’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심즉리설은 외재적 도덕규범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주고, 실천 조리와 실천 행위를 창출하는 주체적이고 역동적이며 창조적인 인간상을 정립해 준다.

2) ‘앎과 실천의 합일’[知行合一]을 통한 실천적 인간상 정립
양명은 또한 38세 때 주희의 ‘선지후행설先知後行說’을 비판하고 심리心理 일원적 체계에 근거한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제창한다. 양명에 있어 ‘마음’은 실천 조리를 창출하는 ‘역동적 창출성’과 의념과 사태에 대한 시비를 판단하는 ‘자각적 판단력’뿐만 아니라 실천행위를 이끌어 내는 ‘실천 지향성’, 그리고 이를 신체를 통해 실천 행위로 이행하는 ‘능동적 실천성’을 동시적으로 내재하기 때문에, ‘지知’와 ‘행行’은 사실상 마음 안에서 이미 합일의 계기를 지닌다. 따라서 양명에게 있어 ‘지’는 주자학에서와 같이 마음 밖에 존재하는 객관적 사물의 원리나 도덕적 당위의 규범에 대한 후천적·경험적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는 “의意 영명靈明한 것” 또는 “몸을 주재하는 마음이 발동한 의意의 명각明覺”으로 정의되고, ‘행’은 “의가 섭착涉着한 것” 또는 “명각의 감응感應”으로 정의된다. 󰡔傳習錄󰡕(下), 「陳九川錄」, 201조목, 및 󰡔傳習錄󰡕(中), 「答羅整菴少宰書」, 174조목 참조.
예컨대 어린아이기 우물에 빠지려는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깜짝 놀라 측은해하는 마음의 자각과 어린아이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동이 바로 마음의 선험적인 영명한 ‘지’를 의미한다면, 마음으로부터 발동한 의지가 몸을 통해 직접적으로 어린아이를 구하는 실천 행위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행’을 의미한다. 󰡔傳習錄󰡕(上), 「徐愛錄」, 8조목 참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자각과 어린아이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동 그리고 어린아이를 구하는 실천 행위는 인간의 마음과 천지만물 사이에 간격 없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감응感應 과정’이다.
양명은 나아가 “지는 행의 주된 의지이며, 행은 지의 공부이다. 지는 행의 시작이며, 행은 지의 성취이다.”(󰡔傳習錄󰡕(上), 「徐愛錄」, 5조목)라고 주장한다. 실천 행위를 이끌어 내는 실천 의지로서의 ‘지’가 직접적으로 실천 행위의 시작이라면 실제적인 실천 행위를 통해서만 마음의 자각과 의지의 발동으로서의 ‘지’가 비로소 성취되는 것이다. 아울러 “참된 앎(眞知)은 곧 실천하는 바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천하지 않으면 족히 앎이라고 말할 수 없다”(󰡔傳習錄󰡕(上), 「徐愛錄」, 5조목)고 하였다. 양명은 ‘지’가 결국 실제적인 실천 행위를 통해서만 참된 앎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봄으로써 강한 실천성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 인간상’을 정립하고 있다.
3) 선험적 생명 주체로서의 양지良知
양명은 50세 때에 이르러 ‘치양지설致良知說’을 제창하고, 나아가 54세 때 “대인은 천지만물로써 한몸을 삼는다”(大人者, 以天地萬物爲一體者也.)(󰡔王陽明全集󰡕 권26, 「大學問」), “대저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다. 천지만물은 본래 나와 한몸이다”(夫人者, 天地之心, 天地萬物, 本吾一體者也.)(󰡔傳習錄󰡕(中), 「答聶文蔚」, 179조목)라 하여, 인간을 중추로 한 ‘천지만물일체설天地萬物一體說’을 제창함으로써 자신의 독창적 심학 사상을 완성하였다.
먼저 ‘양지’는 ‘자가준칙自家準則’, ‘컴파스와 잣대(規矩尺度)’, ‘밝은 스승(明師)’, ‘금의 품질을 시험하는 돌(試金石)’, ‘지남철(指南針)’ 등으로 표현되듯,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인간 마음의 선험적인 ‘시비是非 준칙’임과 동시에 ‘능동적 시비 판단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양명은 나아가 “대저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다. 천지만물은 본래 나와 한몸이므로, 살아있는 존재물들[生民]의 고통은 무엇인들 내 몸에 절실한 아픔이 아니겠는가? 내 몸의 아픔을 알지 못하는 것은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는 자이다. 시비지심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알고 배우지 않더라도 능한 것이니, 이른바 양지良知이다.”(󰡔傳習錄󰡕(中), 「答聶文蔚」, 179조목)라고 주장한다. ‘양지’는 맹자에게 있어서의 능동적 실천성인 ‘양능良能’과 선천적 자각력인 ‘양지良知’의 통합체로써, 인간이 ‘천지만물의 마음’, 즉 우주자연의 핵심적인 중추적 존재가 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선천적·선험적·능동적인 ‘양지’는 ‘시비지심’, 즉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인심仁心’으로 발현되는 바,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반드시 ‘깜짝 놀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怵惕惻隱之心], 새와 짐승이 죽음에 직면하여 슬피 울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차마 견디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 풀과 나무가 꺾이고 부러지는 것을 보면 반드시 ‘가엾게 여기는 마음’[憫恤之心], 그리고 기와나 돌이 깨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애석하게 여기는 마음’[顧惜之心]과 같이 천지만물의 생명 손상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통각痛覺’ 현상을 수반한다. 󰡔王陽明全集󰡕, 권26, 「大學問」 참조.
따라서 ‘옳고 그름’[是非]은 곧 천지만물의 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옳고 그름이며, ‘시비지심’으로서의 ‘양지’는 천지만물의 생명의 온전성을 자각적으로 판단하고 생명 손상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선천적인 자각적 판단력으로서의 인간 마음의 ‘유기적인 생명성·생명력’으로서 천지만물과의 ‘감응’과 ‘통각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양지는 주자학에서와 같이 보편적·외재적 규범과 격식에 의거하여 시비판단 준칙을 고정된 틀(定理)로 미리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한 대상·상황과의 감응을 통해 시비판단의 준칙을 항상 새롭게 창출하고 이에 시비판단 작용을 진행하는 ‘수시변역성隨時變易性’을 지닌다. 󰡔傳習錄(下)󰡕, 「黃以方錄」, 340조목 및 󰡔傳習錄(下)󰡕, 「黃省曾錄」, 248조목 참조.
천지만물은 동일한 사건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물리적 자동기계가 아니라 ‘생생불식生生不息’, 즉 끊임없이 만물을 창생·양육하는 유기적인 생명체이기 때문에 천지만물의 중추적 존재인 인간은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시비판단 준칙을 새롭게 창출함으로써만이 천지만물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천지만물의 생명 창출·양육 과정을 온전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양지는 또한 ‘천리天理가 환하게 밝아 영명하게 깨닫는 곳[天理之昭明靈覺]’, ‘비어있으되 영명하며 밝게 깨닫는 것[虛靈明覺]’, ‘본래 스스로 밝은 것[本來自明]’, ‘자연히 밝게 깨닫는 것[自然明覺]’ 등으로 정의되듯 선험적 이성지나 후천적 경험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천적인 영명한 자각성自覺性’을 의미한다. 영명한 자각성의 주된 기능은 천지만물과의 감응感應을 통해 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시비판단 작용과 시비판단에 따른 실천 의지와 실천 행위를 창출하는 데 있다.
결국 인간 누구나 내재하고 있는 선천적 ‘양지’는 곧 천지만물의 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시비준칙’이자 천지만물과의 감응을 통해 이들의 생명의 온전성을 자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임과 동시에 실제적인 실천을 이끌어내는 ‘능동적 실천력’을 통합하는 인간의 본질적이고 사실적인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양지 실현[致良知]의 최후 경계 - 자연과 인간, 그 하나 됨의 세계
이러한 천지만물과의 감응과 통각의 주체인 ‘양지’가 바로 인간 누구나 ‘천지만물의 마음’으로서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 본원적인 바탕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양지를 선험적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과 안위에만 집착하는 극단적 개체 욕망인 ‘사욕私欲’의 발동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다. 사욕이 발동할 경우 만물일체의 인심仁心, 즉 ‘양지’는 차폐되고 인간 자신과 천지만물을 자·타, 주·객, 내·외로 분화시키고 나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들과 투쟁하고 극단에 이르러서는 혈육 간에도 싸움을 일삼음은 물론 종국에는 류類를 멸하게 된다. 󰡔傳習錄󰡕(中), 「答聶文蔚」, 180조목 및 󰡔王陽明全集󰡕, 권26, 「大學問」, 968쪽 참조.
따라서 사욕을 제거하고 양지를 회복하고자 하는 후천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치양지致良知’는 바로 이러한 양지의 발현을 가로막는 “사욕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의 선천적 본질로서의 양지를 회복시킨다”(󰡔傳習錄󰡕(下), 「黃直錄」, 222조목 참조)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양지는 그 자체가 자각적 시비 판단력, 실천 의지의 발동 및 능동적 실천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회복’이라는 의미는 단지 회복의 단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양지의 발현과 실천 행위의 창출’이라는 일련의 생명 전개 과정 모두를 포함한다.
‘성인’은 자신의 사욕을 제거하고 선험적 양지에 의거하여 자신과 천지만물이 하나의 생명체(一體)임을 자각함으로써 자·타와 물·아의 구별을 두지 않으며, 천지만물의 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자각적으로 판단하고, 이들의 고통이나 배고픔을 자신의 고통이나 배고픔으로 느끼는 등 만물의 생명 손상을 자신의 책임으로 자각하는 과정과 나아가 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피고 교양하는 등의 구체적·실제적 실천 과정을 통해 ‘천지만물과 하나 된 세계’, 즉 천지만물을 온전하게 창생·양육하는 궁극적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傳習錄󰡕(中), 「答聶文蔚」, 179조목 참조) 이는 곧 양지 실현을 통한 ‘자아의 생명 본질 실현’[內聖·成己·修己·明明德]과 ‘천지만물의 생명 본질 실현’[外王·成物·治人·親民]이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양명은 “군자가 수많은 변화에 응대함에 마땅히 행해야 할 때는 행하고, 마땅히 멈추어야 할 때는 멈추고, 마땅히 살아야 할 때는 살고, 마땅히 죽어야 할 때는 죽고, 일을 헤아려서 조정하는 것들은 그 양지를 실현하여 스스로의 만족(自慊)을 구하는 것 아닌 것이 없다”(󰡔傳習錄󰡕(中), 「答歐陽崇一」, 170조목)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양지 실현의 귀결처는 마음 밖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부귀영화나 타인들로부터의 칭송과 명예를 구하는 일이 아닌 인간 내면에서의 ‘스스로의 만족’(自謙)을 구하는데 있다. 양명은 또한 ‘즐거움’(樂)을 마음의 본체로 그리고 양지를 즐거움의 본체로 규정하면서, 󰡔傳習錄󰡕(中), 「答陸原靜書」, 166조목, “樂是心之本體.” 󰡔王陽明全集󰡕, 권5, 「與黃勉之二」, 195쪽, “良知卽是樂之本體.”
성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모두가 ‘진정한 즐거움’(眞樂)을 지니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사욕에 사로잡혀 진정한 즐거움을 망각하고 근심과 고통 속에서 헤매게 된다고 전제하고, 비록 이러한 상태에서도 즐거움 자체가 상실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각하고 자신에게 돌이켜 정성 되게 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본연으로서의 진정한 즐거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傳習錄󰡕(中), 「答陸原靜書」, 166조목 참조.) 따라서 ‘진정한 즐거움’은 인간 자신의 전우주적 사명 즉, 천지만물의 창생·양육 과정을 주체적·능동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을 완수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 자신과 천지만물이 하나 되는 ‘천지만물일체’의 토대이자 또한 천지만물일체를 통해 도달하는 최후의 경계이자 궁극적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

3. 한국양명학과 생명사상

1) 최명길의 실질實質과 생명 중시 사상
양명이 주희의 격물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독창적 심학사상을 수립하고 있듯, 조선의 대표적인 양명학자 최명길崔鳴吉(호 遲川: 1586~1647) 또한 당시 주자학자들의 ‘명분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그는 먼저 “대저 명名은 실實의 그림자이니, 명분名分만을 따라 그 실질實質을 책망하면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형적形迹은 마음이 드러난 것이니 형적만을 고집하여 마음을 구한다면 잃는 것이 또한 많을 것이다. … 아아! 지금 세상 사람들이 숭상하는 것은 명분이요, 신이 힘쓰는 것은 실질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논하는 것은 형적이요, 신이 믿는 바는 마음입니다.”(󰡔遲川集󰡕, 권8, 「疎箚 論典禮箚」)라고 하여, 당시 ‘명분名分’만을 고집하는 주자학자들을 비판하고 마음의 주체적이고 ‘실질實質’적인 태도를 중시하였다.
최명길은 나아가 양명의 ‘심즉리설心卽理說’과 ‘양지설良知說’을 수용하고, 󰡔遲川集󰡕, 권17, 「雜著·復箴」 및 󰡔遲川集󰡕 卷8, 「論典禮箚」 등 참조.
“언제든지 내 마음의 체體로 하여금 연비어약鳶飛魚躍하는 천天에 합하게 할 것 같으면 비록 갇힌 속에 있을지라도 스스로 영귀무우咏歸無雩의 취향이 있을 것이라, … 이른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란 언제나 허명虛明·징철澄澈한데 들어 있어 희노애락喜怒哀樂 사이에 나타나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옛 사람들이 용공用功함에 있어 동정動靜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일월日月 한서寒暑의 대사, 풍운風雲 연우煙雨의 변태變態 어떤 것이나 다 도체道體의 유행인 동시에 내 마음의 작용으로 더불어 어울려 하나이니 깨달음이 여기 이르러 항상 체인體認하게 되면 희미하던 것이 자연히 분명할 것이며 황홀할 사이라 하던 것이 자연히 항구 순숙純熟할 것이다.”(󰡔遲川集󰡕 卷17, 「寄後亮書」)라고 하여, 심본체心本體의 작용은 동정動靜을 일관一貫하여 부단히 천지유행天地流行과 하나로 합合한다고 보았다.
마음의 실질을 중시하는 태도와 마음의 주체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최명길은 병자호란 때 당시의 실정을 냉철히 파악하여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주화론主和論’을 펴는 도리밖에 없음을 깨닫고 의리義理를 절대적 가치로 인정하는 주자학파인 김상헌金尙憲(호 都正, 1570~1652)의 ‘척화론斥和論’에 대항하여 주화론을 주장하였다. 최명길은 이념적 대의보다는 ‘현실을 중시’하여 ‘현실적 상황과 주체가 합치된 곳’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고 평가된다. 송석준, 「韓國 陽明學과 實學 및 天主敎와의 思想的 關係性에 關한 硏究」(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1992), 91쪽 참조.
다음과 같은 주장을 속에서 최명길은 양명의 주체성과 수시변역隨時變易 사상에 근거하고 주화론을 주장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이 이렇게 화친和親을 주장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이해로만 아뢰어 전하를 잘못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 정세를 참작하고 의리義理를 헤아리며, 선유들의 정론定論에 고증도 해 보고, 조종祖宗께서 행하신 역사적 발자취를 참고하여, 이렇게 하면 반드시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고, 이렇게 하면 백성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하면 도리道理에 해로울 것이고, 이렇게 하면 사리事理에 합당할 것임을 익히 생각하여, 그것이 꼭 옳다는 자신自信이 서서 아뢴 것입니다.(󰡔遲川集󰡕 권11, 「丙子封書」 제3)
대개 도道에는 정도正道와 패도覇道가 있고, 일에는 가볍고 중요한 것이 있으니 의義도 때에 따라 달라집니다.(義亦隨之) 성인께서 󰡔주역󰡕을 지을 때에 중도中道를 정도보다도 귀하게 여긴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遲川集󰡕 권11, 「丙子封書」 제3)
최명길은 먼저 자신이 주화론을 주장하는 것이 단지 실리적인 이해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의리’를 기준으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의리는 고정 불변한 규범과 원칙에만 얽매여 시대적 변화와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명분과 형식에만 집착하는 주자학적인 정리론적定理論的 의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명길이 말하는 의리는 위민爲民과 민본民本, 즉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보살피는 일이며, “의義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의리는 고정 불변한 외재적 형식과 규범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태에 따라 변화하며 자신의 본심에 의거해서 설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양명 또한 ‘의義’는 ‘양지良知’로서 고정 불변한 법칙과 규범에 집착함 없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수시변역성隨時變易性을 지닌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바, 󰡔傳習錄(下)󰡕, 「黃省曾錄」, 248조목 참조.
최명길의 주화론은 단지 실리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명의 수시변역에 근거한 의리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최명길은 또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에 ‘화친을 주장한다<主和>’는 두 글자가 신의 일평생 신변의 루累가 될 줄로 압니다. 그러하오나, 신의 마음은 아직도 오늘날 화친和親하려는 일이 그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遲川集󰡕, 권11, 「丙子封書」 제3)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경망하게 큰 소리를 쳐서 오랑캐들의 노여움을 도발, 마침내는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내는 일조차 못하게 된다면 그 허물이 이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같은 곳)
이러한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최명길이 주화를 주장한 전제는 이념적 명분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수호하려는 현실에 대한 그의 주체적 판단에 있으며, 주화론의 궁극적 목적은 명분과 형식주의로부터 벗어나 백성과 국가를 위난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생명 중시’에 있었다.

2) 정제두와 강화학파의 주체성과 평등사상
정인보에 의해 조선 양명학파의 제일류 중에서도 가장 대종大宗으로 평가 받는 정제두鄭齊斗(호 霞谷, 1649 ~1736)에 이르러 한국의 양명학은 비로소 전개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본래 주자학을 공부한 정제두는 “물物에 나아가서 리理를 찾아내려 한다면(卽物而窮其理) 덕성德性을 바탕으로 한 리理의 본 모습을 볼 수 없다.”(󰡔霞谷全集󰡕, 권9, 「存言」(下), 319쪽)고 하여 주자의 격물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양지良知의 학문은 그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의 리理가 모두 물物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 근원은 모두 마음에서 나온 것이어서 마음을 근본으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있으며 본원本源이 있게 된다.”(「存言」(中), 308쪽)고 하여, 향외적이고 주지주의적인 주자 격물설의 문제를 주체적 마음(양지)를 핵심으로 하는 양명학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먼저 정제두의 ‘심성론心性論’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인심人心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영靈이며, 천지만물을 모두 모아 놓은 것(總會)이다. … 인심은 감응感應하는 주체이며, 만리萬理의 체體이다.”(「存言」(中), 309쪽)라고 하여, 양명의 천지만물일체설을 수용하여 인간을 천지만물의 마음으로서의 감응 주체로 파악하고 있다. 인간 마음이 천지만물과의 감응 주체가 될 수 있는 근거는 그의 ‘생리설生理說’에서 찾을 수 있다. 정제두는 각 존재물들의 필연적인 존재법칙인 ‘물리物理’의 상위개념으로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생리生理’를 제시한다. ‘생리’는 인간의 특성으로서 인간 이외의 존재와 다른 ‘도덕적 능동성’으로 파악된다. 물론 인간도 다른 존재물들과 마찬가지로 필연법칙으로서의 존재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정신생기精神生氣’라고도 표현되는 도덕적 능동성을 지니며, 이 도덕성에 의해 단순히 존재법칙의 지배만을 받는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 달리 ‘신묘한 생명력’을 실천을 통해 표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霞谷全集󰡕, 권8, 「存言」(上), 285쪽~286쪽 참조.
그는 나아가 “모든 리理 가운데서 생리生理를 주로 삼고 생리 가운데 진리眞理를 택하면 이것이 바로 리理이다.”(「存言」(上), 287쪽)라고 하여, 생리의 핵심처로 ‘진리眞理’를 상정한다. 그는 또한 “만물을 통섭하는 본체(統體)로서 조리있는 흐름(條路)들의 주인 노릇을 하는 존재가 진리眞理이니,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는 명덕明德이 바로 이것일 뿐이다.”(「存言」(上), 286쪽)라고 하여, 진리眞理가 명덕明德임을 밝히고 있다. ‘진리眞理’는 ‘생명력의 으뜸’(命元)이며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알맹이’(本有之衷)로서, 󰡔霞谷全集󰡕, 권8, 「存言」(上), 285쪽.
구체적으로는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는 명덕이다. 또한 지극히 순수한 최고의 가치기준이며, 생리를 본체와 작용으로 나눌 때 본체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이 진리의 단계에 이르면 인간의 본래성인 ‘영통성靈通性’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물들과 감응할 수 있게 된다. 김교빈, 󰡔양명학자 정제두의 철학사상󰡕(한길사, 1996), 40~46쪽, 52쪽 참조.

정제두는 생리설을 토대로 양명의 양지설을 수용하고 있다. 그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곧 양지良知이다.”, “측은지심은 사람의 생도生道이며, 양지 또한 생도이다. 양지는 측은지심의 본체로서, 측은해 할 줄 아는 까닭에 양지라고 할 뿐입니다.”(󰡔霞谷全集(上)󰡕 권1, 「與閔彦暉論辨言正術書」, 21-22쪽)라고 하여, ‘양지’란 바로 타자의 생명 손상을 아파하는 감응과 통각의 주체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나아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래 사람의 생리生理 속에는 밝게 깨닫는 능력(明覺)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두루 잘 통해서 어둡지 않게(周流通達而不昧) 된다. 따라서 측은惻隱해 할 줄 알고, 수오羞惡할 줄 알며, 사양辭讓할 줄 알고, 시비是非를 가릴 줄 아는 것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못하는 것이 없다. 이것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덕德이며 이른바 양지良知라고 하는 것이니, 또한 인仁이라고도 한다.(󰡔霞谷全集(上)󰡕 권1, 「與閔彦暉論辨言正術書」, 21쪽)
양지는 단지 측은지심이나 시비지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양지’는 생리生理의 영명한 자각성과 맹자의 사단四端 모두를 총칭할 뿐만 아니라, ‘인仁’, 즉 만물일체의 인심仁心을 의미한다. 양지는 수양을 통해 얻어지거나 외부의 자극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험적인 도덕적 자각 능력으로서 양지의 고유한 능력인 명각明覺의 기능을 통해 밖을 향해 막힘없는 실천으로 드러난다. 이에 정제두는 양지는 바로 양지양능의 통합체로서 지행이 일원임을 밝히고 있다.
본래 지知와 능能 두 글자는 둘로 가를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이런 것을 아는 것이 양지良知이며, 양지는 곧 양능良能이니, 오로지 지식知識 한 편에만 속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체로 양지설은 지각知覺 한 면만을 가지고 말할 수 없습니다. 천지가 능히 유행流行·발육發育하고, 만물이 능히 생생화화生生化化하는 것이 양지양능良知良能 아님이 없으며, 자연지리自然之理가 양지양능의 체體 아님이 없습니다. 우리가 능히 측은惻隱·수오羞惡하고 능히 인민仁民·애물愛物하는 것에서부터 능히 중화中和·위육位育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양지양능 아닌 것이 없습니다. 천天이 나에게 준 것(天之所與我)이며, 생각하지 않고 배우지 않아도(不慮不學) 갖게 되는 것이니, 본연지체本然之體가 또한 양지양능의 체體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리心理가 하나라고 하고 지행知行을 합하는 것이니, 갈라 나눌 수 없습니다(다만 사람이 능히 채우지 못하고, 하나로 하지 못할 뿐입니다.)(󰡔霞谷全集(上)󰡕 권2, 「答閔彦暉書」, 31쪽)
양지는 양명에서처럼 선천적 자각력인 양지와 능동적 실천력인 양능의 통합체이다. 후천적으로 생각하거나 배워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본래 있는 모습 그대로인 양지 본체가 천지만물과 감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시비를 자각하고 능동적으로 측은해하고 부끄러워하며 타인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는 즉, 천지만물을 보살피는 실천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만물은 생성되고 길러지며 인간 자신의 생명 본질 또한 실현된다. 이것이 곧 ‘치양지致良知’인 것이다. 이에 정제두는 “치양지致良知(本體를 知라 하고, 用功을 行이라고 하며, 그 知의 體를 大本이라 하고 行에서 致知하는 것을 達道라고 하며, 그것이 자기에게 들어 있는 것을 明德이라 하고 사물에 드러난 것을 親民이라고 하니, 모두 하나일 뿐 둘로 나눌 수 없다) 지행知行의 본체本體가 한가지일 뿐입니다.”(󰡔霞谷全集(上)󰡕 권2, 「答閔彦暉書」, 30쪽)라고 하여, 천지만물일체를 실현하는 치양지, 즉 명명덕과 친민이 하나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정제두의 철학사상 내재하는 의의는 먼저 ‘인간 주체성의 강조’와 ‘평등 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주자학자들은 인간 내면에 담긴 본연지성本然之性의 보편성을 말하면서도 다시 기질지성氣質之性에 의한 차별성을 매우 강조했던 것과 달리, 정제두는 양지良知의 본체(眞理)가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에 본질적으로 다 존재한다고 보아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에 기초한 주체성을 강조하고 아울러 평등 의식을 드러냈다. 예컨대 정제두는 당시 신분적 차별이 매우 엄격한 신분적 봉건체제 속에서 “가장 좋은 법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천민을 없애서 사내종과 계집종을 두지 않는 것이다.”, “국가 소유의 천민을 없애자.”, “개인 소유의 천민들이 생겨나는 것을 끊어 없애자.”라고 하고, 더 나아가 “양반을 없애자.”고 하였고, 여자의 인권과 관련 “쫓아낸 부인들에게 개가改嫁를 허용하고, 자식이 없이 과부가 된 30세 미만 사람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등 󰡔霞谷全集(下)󰡕 권22, 「箚錄」, 335쪽~360쪽 참조..
과감하게도 신분적 차별의식을 없애야 한다는 인간 해방론을 주장하고 남녀의 차별의식마저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정제두의 견해들은 ‘양지가 인간 누구에게나 들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문제를 넘어서서 천민까지도 두루 평등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민중을 향한 인간 자체의 해방을 암시한 것으로도 평가되기도 한다. 김교빈, 󰡔양명학자 정제두의 철학사상󰡕, 205~206쪽 참조.

당시 주자학파(의리학파)에서는 당시의 난세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존주대의尊周大義’의 명분론을 내세워 한결같이 ‘존중화尊中華·양이적攘夷狄’론을 제시하고 ‘숭명배청崇明排淸’론을 고집할 뿐 일체 다른 주장을 용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제두는 당시 명분만을 숭상하다가 허虛와 가假가 판을 치게 된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고 실實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霞谷全集(上)󰡕 권2, 「答閔彦暉書」, 35~38쪽 참조.
대청對淸 관계에서 주자학파와 뜻을 달리하게 되었다. 당시 화이론華夷論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던 상황에서 정제두는 과감하게 대청 관계에서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도 능히 선왕先王의 예禮를 행할 수 있다면 또한 배울 만한 것이 있다고 본다.”(󰡔霞谷全集(上)󰡕 권2, 「答閔彦暉書」, 38쪽)고 하는 등 당시 폐쇄적 명분론에 속박되어 있던 한족 중심의 전통적 인간 차별의식을 탈피하여, 한족이나 오랑캐가 하나라는 ‘화이일야華夷一也’의 ‘인간 평등론’을 주장하였다. 김길락, 󰡔한국의 상산학과 양명학󰡕(청계, 2004), 391~393쪽 참조.
정제두는 오랑캐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당연히 양지良知를 지니고 있으며, 양지가 가리어지지 않고 제대로 드러낼 수만 있다면 교류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배타적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 입장에서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교빈, 󰡔양명학자 정제두의 철학사상󰡕, 201쪽 참조.
일찍이 정인보는 정제두를 허虛와 실實을 명석하게 분변하여 양지를 근거로 실을 세우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경세론에서는 무조건 보수적인 면에 집착하기보다는 시세時勢의 변통變通과 변법變法에 능하였다고 평한 바 있다. 鄭寅普, 󰡔陽明學演論(外)󰡕(삼성문화재단, 1975), 169쪽.
정제두는 주체성과 실천성을 기저로 하는 생리설과 지행합일설 및 치양지설을 바탕으로 당시 교조주의적이고 명분론적 사고에 경도된 주자학파들의 폐단을 비판하고 ‘인간 주체성의 회복’과 ‘인간 평등’ 및 ‘주체적이고 평등한 외교’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정제두가 강화도로 들어가 제자들을 모집하고 문인들에게 양명학을 강론하여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면서 ‘강화학파江華學派’가 형성되었다. 강화학파의 성향은 정제두의 학문과 학풍을 계승하여 발전시켜 온 관계로 학문의 진취성과 다양성을 지녔음은 물론 전통적으로 인간을 속박해 온 굴레를 탈피하고자 자유로운 학풍 조성에 이바지하였으며, 후기 실학사상과 연계되어 ‘실사구시적’ 성향을 지니고 발전해 왔다고 평가된다. 김길락, 󰡔한국의 상산학과 양명학󰡕(예문서원, 2004), 397쪽 참조.
강화학파 또한 인간의 천부적 양지良知를 근거로 하여 심학心學에 역점을 두었다. 그들은 양명의 ‘심즉리설心卽理說’과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 그리고 ‘치양지설致良知說’에 이론적 근거를 두었으되, 시문학詩文學과 훈민정음 그리고 사학 등 폭넓게 연구하여 인간의 주체적 사관 확립에 역점을 두어 고질적 노예사상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천문天文·지지地誌·의약·역법曆法 등 실용實用과 실사實事에 역점을 두어 劉明鍾, 󰡔韓國의 陽明學󰡕(동화출판사, 1983), 166~167쪽, 189쪽 및 196쪽 참조.
대의명분론이나 허위의식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실질적으로 민초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 연구에 주력하였다. 또한 주자학파와 개화파의 상당수가 조선의 패망과 더불어 친일을 통해 현실과 타협한 것과는 달리 강화 학인들 속에는 자신의 ‘실심實心’을 속이고 현실과 영합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또한 도학파의 많은 사람들이 보편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도에 대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위도爲道 의식을 실천해 간 모습과는 달리 철저한 민족 주체 의식을 기반으로 한 실천으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점은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부자기不自欺’가 양심에 내재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부자기不自欺’의 양심은 참과 거짓을 가리는 궁극의 잣대일 수밖에 없으며, 구체적인 개별자들의 양심에 기초한 학문은 보편 지향과 달리 개별자의 주체 지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강화학의 본령이 도학파의 보편 지향과 달리 민족 주체에 입각하여 앎과 행함을 일치시키는 실천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교빈, 「실심으로 살아가 양명학자들」, 󰡔조선유학의 학파들󰡕(예문서원, 1996), 474~475쪽 참조.


3) 박은식의 만물일체의 대동사상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점, 즉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占의 한말전환기에 박은식(호는 白巖, 白菴, 謙谷: 1859~1925)과 정인보鄭寅普(호는 爲堂: 1892~ 미상)는 양명학을 통해 서구문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동북아시아의 공통적 과제와 일제日帝로부터의 국권회복國權回復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먼저 ‘국권회복’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직면한 박은식은 51세(1909) 때 양명학에 입각한 유교개혁을 주장하는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발표하였다. 또한 52세 때에는 주자학을 지리한만支離汗漫하다고 비판하고 간이직절簡易直切한 양명학 수용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왕양명선생실기王陽明先生實記」를 발표하면서, 양명학의 대중화를 통한 국권회복을 주장한다. 박은식은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에서 양명학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오늘날의 유학자들이 각종 과학 이외에 본령학문本領學問을 구하고자 할진대, 양명학에 종사하는 것이 실로 간단절요簡單切要한 법문法門이라. 대개 치양지학致良知學은 직지본심直指本心하여 범인을 초월하여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문로門路이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심술心術의 은미함에 있어 성찰省察하는 방법이 긴요하고 절실하며 사물을 응용함에 있어서 과감력果敢力이 활발하니, 이는 양명학파의 기절氣節과 사업의 특별히 드러난 공효功效가 참으로 많은 까닭이다. 󰡔朴殷植全書󰡕(단국대부설 동양학연구소 1975년 간행본) 下卷, 「儒敎求新論」, 47쪽.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박은식은 “천부적 양지는 천하만인天下萬人 누구나가 차별 없이 동일하게 품수하고 있다”고 하는 ‘인간평등론’에 근거하여 ‘민권신장론’과 사상의 자유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한편, 개개인의 자립화와 인간의 주체성을 근본으로 하는 ‘자주정신 계발’을 강조하고, 자주정신의 확대를 통하여 국가와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朴殷植全書󰡕 下卷, 「告我學生諸君」, 「儒敎求新論」, 「王陽明先生實記」 참조.

나아가 박은식은 양명학을 본령학문으로 수용하여 서구 문명의 장점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에 바탕을 둔 제국주의 이론이 한일 합방이라는 현실로 드러나자 양명학의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에 입각한 ‘대동사상大同思想’을 제창하여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를 ‘세계 평화의 논리’로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인류 공존의 길’을 모색하였다. 송석준, 「한말 전환기의 사상과 양명학: 백암 박은식의 사상을 중심으로」, 󰡔陽明學󰡕 5호, 2001, 161~164쪽 참조.
박은식은 양명학의 핵심을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인仁’으로 이해하였으며, 󰡔朴殷植全書󰡕 中卷, 「王陽明實記」, 63쪽, “按先生之學이 致本心之良知하야 以同體萬物爲仁이라.”
예컨대 박은식은 “왕자王子의 학學에 이르러서는 천지만물일체天地萬物一體의 인仁을 미루어 성인이 입교立敎한 본의本意를 밝힘으로써 사해四海를 일가一家와 같이 보았고, 만백성을 일인一人과 같이 보았으니, 이것이 (양명학의) 대지大旨가 아니겠는가?”(󰡔朴殷植全書󰡕 下卷, 「日本陽明學會 主幹에게」, 237쪽)라고 하고, 왕양명의 「대학문大學問」에 나오는 천지만물일체설을 「공부자탄신기념회강연孔夫子誕辰紀念會講演」에서 소개하는 등, 󰡔朴殷植全書󰡕 下卷, 「孔夫子誕辰紀念會講演」, 59~60쪽.
양명의 천지만물일체설에 근거하여 대동사상과 ‘사해동포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어느 인종이든지 인간이면 누구나 양지를 가지고 있으며, 만물과 하나 되는 인仁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생물을 살리고 인류 전체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다. 박은식은 만물이 일체된 경지에서 보면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능력과 각기 자기에게 맞는 직분이 있을 뿐 황인종과 백인종 간에 인종적 차별은 없다고 하였다. 예컨대 “하늘이 사람을 낳음에 성분性分의 영능靈能과 직분職分의 권리權利를 부여함은 동·서양과 황·백인종이 같다.”(󰡔朴殷植全書󰡕 中卷, 「夢拜金太祖」, 217~218쪽)고 하고, “상제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공평하여 모든 것을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하늘의 보살핌과 땅의 싣는 것으로 모든 물류物類의 나는 것, 뛰는 것, 움직이는 것, 심은 것과 각종 인종, 즉 황인종·백인종·홍인종·흑인종 등으로 하여금 모두 함께 살게 하고 함께 길러지게 하여 서로 눌리거나 피해를 보는 것이 없게 하십니다. 성인은 이를 본받아 만물을 일체로 삼고, 사해를 일가로 삼아 경계와 울타리가 없게 합니다.”(「夢拜金太祖」, 212~213쪽)라고 한다.
인간의 심체心體는 지역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동연同然하고 각기 적절한 직분이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개인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사해동포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해동포주의가 실현될 때라야 비로소 모든 사람과 만물이 공평하여 경계와 울타리가 없으며, 인종간의 차별도 없어진다. 박은식은 ‘양지’에 근거하여 생존경쟁의 폐해와 제국주의 침략의 부당성을 통렬히 비판하고, 만물이 하나 됨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국가 경계를 넘어서는 ‘대동평화’의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대개 하늘의 도는 모든 중생을 아울러 낳고 길러 모든 것에 후박함의 구별이 없으니, 도덕가는 이를 원본으로 삼아 만물일체의 인仁을 발휘하고 추진하여 천하의 경쟁을 그치게 함으로써 구세주의救世主義를 실현한다.(󰡔朴殷植全書󰡕 中卷, 「夢拜金太祖」,, 215쪽)
박은식은 공평무사한 성인은 모든 생물과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므로 사해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고, 생민의 화란을 구제할 수 있으며, 경쟁의 폐해를 그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양명학을 주창한 것은 인류 평화의 근본을 세우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朴殷植全書󰡕 下卷, 「日本陽明學會 主幹에게」, 237~238쪽.
대동사상은 인류가 대동평화를 향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朴殷植全書󰡕 下卷, 「孔夫子誕辰紀念講演會」, 59~60쪽.  
그런 측면에서 그의 대동사상은 ‘평화적 사해동포주의’를 표방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정심, 「朴殷植의 近代的 大同思想에 관한 연구」, 󰡔陽明學󰡕 10호, 2003, 217~221쪽 참조.


4) 한말 정인보의 감통感通의 생명사상
강화학파 이건방李建芳(호는 蘭谷: 1861~1939)으로부터 양명학의 대의大義를 배운 정인보는 1930년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을 저술하여 국내에서 최초로 양명학과 중국양명학파는 물론 조선의 양명학파를 체계적으로 정리·소개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양명학연론󰡕에서 정인보는 “과거 수백 년간 조선의 역사는 실로 허虛와 가假로서의 연출한 자취”로써, 실심實心과 유리된 사리私利, 사욕私欲, 명분名分, 허화虛華 등을 일삼았다고 비판한다. 정주학程朱學을 신봉한 조선조 유학자들, 즉 정주학을 빌려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는 ‘사영파私營派’와 그 학설을 배워 중화적中華的 전통을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존화파尊華派’들에 의해 주도 된 당쟁黨爭과 살육殺戮과 세도勢道 등은 ‘실심實心’을 떠나 이기심 옹호를 위한 허虛와 가假의 연출이었다는 것이다. 즉 정인보는 과거 수백년간의 조선의 역사는 ‘실심實心’과 ‘실행實行’을 떠난 허虛와 가假로써 연출한 자취이며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은 가행假行과 허학虛學이라고 진단한다. 鄭寅普, 󰡔陽明學演論󰡕(삼성문화재단, 1975), 10쪽~12쪽 참조.

이러한 비판을 전제로 정인보는 ‘실심實心’에 기초한 ‘실행實行’을 주장한다. 즉 실심인 ‘양지良知’의 회복을 통해 개인의 주체의식 확립과 한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전인류의 화합을 꾀하고자 양명학을 연구한다. 정인보는 왕양명이 역설한 것은 ‘치양지致良知’요 배척한 것은 주희의 즉물이궁기리卽物而窮其理하는 격물설이라 주장하면서, ‘치致’는 ‘이룬다’, 즉 ‘그 한도를 다한다’는 뜻이요, ‘양지良知’는 ‘천생天生으로 가진 앎’으로 누구나 다 같은 것으로 ‘치양지致良知’ 바로 이러한 앎을 앎답게 이루어 놓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鄭寅普, 󰡔陽明學演論󰡕, 15쪽~16쪽 참조.
정인보는 명덕明德·친민설親民說이 곧 ‘치양지설’로서, “명덕을 밝히는 일과 민중을 친親하는 것이 한 일이라. 만일 민중과 간격間隔이 있어 그의 이해와 안위安危가 내 몸의 통양痛痒같이 감통感通되지 못하면 명덕본체明德本體가 무엇이 밝았다 하리오. 민중을 친親하는 것이 곧 내 마음을 밝힘이요, 내 마음을 밝히는 것이 곧 민중을 친함이다.”(󰡔陽明學演論󰡕, 21쪽)라고 하여, 명덕·친민하는 ‘치양지’는 다름 아닌 감통을 통해 민중과 아픔을 함께하는 일로 보고 있다. 치양지는 국가 민중을 심내사心內事로 통감痛感하여 오직 말려 해도 스스로 마지 못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정인보는 양명 심학을 ‘우리의 마음이 타고난 그 번밑대로 조그만 협사挾詐가 없이 살아가려는 공부’라고 정의한다. 鄭寅普, 󰡔陽明學演論󰡕, 26쪽 참조.
이 ‘번밑 마음’은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본심’이자 ‘양지’이며, 鄭寅普, 󰡔陽明學演論󰡕, 26쪽~27쪽 참조.
양지의 주요 특성은 ‘감통感通’에 있다고 본다. 그는 양명의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일체一體라 함’은 본심과의 감통感通되는 그 한 곳으로 좇아 본심에는 피차彼此의 간격이 없음을 실조實照하고 하는 말이며, “민물民物과 나와의 감통感通됨이 간격이 없어야 비로소 양지의 진체眞體가 밝은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본심이란 감통에서 살고 간격間隔에서 죽는다. 만일 생민生民의 질통疾痛이 곧 내 질통으로, 생민의 곤고困苦가 곧 내 곤고로 그 감통됨이 내 몸에 있음 같을진대 스스로 분주奔走 부제扶濟함을 마지못할 것이니, 그 몸이 거꿀어졌을지라도 본심은 살았다. … 이 감통의 중단은 곧 양지의 폐색蔽塞이요, 양지의 폐색은 곧 생명의 운절殞絶이니 어느 때든지 일점一點 양지 잠깐 반짝하는 곳에는 의연依然히 민물民物 일체一體의 감통이 있는 것이다.(󰡔陽明學演論󰡕, 100쪽~101쪽)
양명은 천지만물과 인간이 일체一體이며, 인간은 천지만물의 마음으로써, 인간의 천부적 양지는 천지만물과의 감응 주체이자 통각의 주체로 규정한 바 있다. 정인보 또한 인간 ‘양지’를 천지만물과 감통하는 주체, 특히 생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통각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정인보는 󰡔양명학연론󰡕 「후기」에서 “본심상本心上 성의誠意는 언제나 감통적感通的이니 감통적인지라 은미한 속 일점 광명이 곧 일체一體의 인仁의 발핵發覈이니 민중의 통양痛痒이 내 통양痛痒임이 실로 내 마음의 본체 이러함이요. 일로부터 대언大言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내 번밑마음의 천생으로 가진 앎󰡕(양지)을 찾으려거든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곳을 묵성黙省하여 보라.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그 곳의 진수眞髓를 찾으려거든 민중의 감통感通, 간격間隔에 있어 어느 것인가 이를 자증自證하여 보라”(󰡔陽明學演論󰡕, 187쪽)고 주장한다. 이렇듯 정인보는 양명학에 대한 체계적 소개는 물론 양명의 천지만물일체설에 근거하여 민중의 고통과 고난을 자신의 고통과 고난으로 느끼는 본심 양지의 감통에 근거하여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4. 마무리하는 말
양명이 추구한 이상적 인간상인 ‘성인聖人’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삶의 장 한 가운데서 천지만물과의 감응과 통각의 주체인, 자신의 선험적인 생명 본질인 ‘양지’를 실현하여 타자와 자연만물의 생명 손상을 아파하고 이들의 생명을 온전하게 보살피고 양육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창생·양육 과정에 주체적·능동적으로 참여하거나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역동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이다. 양명은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통해 인간 마음의 본체(양지)를 단지 인식 능력에 국한시키지 아니하고 전우주적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천지만물의 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시비를 판단할 수 있는 선험적인 ‘자각력’과 실천 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창출력’, 그리고 이를 실천으로 이행할 수 있는 능동적인 ‘실천력’을 부여함과 아울러 인간을 천지만물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중추적인 존재 즉 ‘천지만물의 마음’으로 자리매김시킴으로써, 위계적 질서와 외재적 규범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줌은 물론 주체적이고 창조적이며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인간상을 수립하였다. 아울러 양명의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은 인간의 내면적 자각과 반성을 통해 인간 자신을 천지만물과 안과 밖, 자아와 타자로 분리시키고 천지만물과의 대립·투쟁을 야기하는 극단적 개체 욕망을 제거하고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회복하여 실제적 실천 행위를 통해 천지만물을 온전하게 창생·양육하는 인간의 본질적 사명을 실현하고자 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인간의 생명 본질로서의 ‘양지’는 총체적 우주자연 안에서 만물과 상보적이고 유기적인 관계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실천 활동을 통해 이들의 생명은 물론 자신의 생명을 온전하게 유지시켜 나가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천지만물과의 유기적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양지의 실현’은 다름 아닌 만물의 생명을 온전하게 유지시켜주는 일이자, 동시에 인간 자신의 생명 본질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양지 실현’은 인간이 만물과의 감응 과정에서 극단적 개체 욕망을 제거하고 유기적 생명성으로서의 양지를 온전히 발휘하여 우주자연의 생명 창출 과정에 주체적·긍정적·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인간의 우주자연의 중추적 역할과 사명을 실현하는 일로 귀결된다.

최명길은 양명의 ‘심즉리설’과 ‘양지설’을 수용하여 당시 ‘명분名分’만을 고집하는 주자학자들을 비판하고 마음의 주체적이고 ‘실질實質’적인 태도를 중시하였으며, 이념적 대의만을 중시하는‘척화론斥和論’에 대항하여 ‘현실을 중시’하여 ‘현실적 상황과 주체가 합치된 곳’에서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한 방안으로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였다. 그의 주화론의 근거가 되는 의리는 위민爲民과 민본民本, 즉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보살피는 일이며, “의義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의리는 고정 불변한 외재적 형식과 규범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태에 따라 변화하며 자신의 본심에 의거해서 설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바, 최명길의 주화론은 양명의 수시변역에 근거한 의리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또한 최명길이 주화를 주장한 전제는 이념적 명분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수호하려는 현실에 대한 그의 주체적 판단에 있으며, 주화론의 궁극적 목적은 명분과 형식주의로부터 벗어나 백성과 국가를 위난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생명 중시’에 있었다.
정제두는 향외적이고 주지주의적인 주자 격물설의 문제를 주체적 마음(양지)를 핵심으로 하는 양명학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는 ‘생리설生理說’을 통해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다른 ‘도덕적 능동성’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 마음의 ‘영통성靈通性’을 모든 사물들과 감응할 수 있는 주체로 보았다. 그리고 인간 ‘양지’란 바로 타자의 생명 손상을 아파하는 감응과 통각의 주체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양지’는 생리生理의 영명한 자각성과 맹자의 사단四端 모두를 총칭할 뿐만 아니라, ‘인仁’, 즉 만물일체의 인심仁心을 의미한다. 이러한 양지 본체가 천지만물과 감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시비를 자각하고 능동적으로 측은해하고 부끄러워하며 타인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는 즉, 천지만물을 보살피는 실천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만물은 생성되고 길러지며 인간 자신의 생명 본질 또한 실현된다. 이것이 곧 ‘치양지致良知’인 것이다. 정제두는 양지良知의 본체가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에 본질적으로 다 존재한다고 보아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에 기초한 ‘주체성’을 강조하고 아울러 ‘평등 의식’을 드러냈다. 또한 당시 주자학파의 ‘존주대의尊周大義’의 명분론을 근거하여 ‘존중화尊中華·양이적攘夷狄’하는 ‘숭명배청崇明排淸’론에 대응하여 ‘화이일야華夷一也’의 ‘인간 평등론’을 주장하고, 배타적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 입장에서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보았다. 정제두는 주체성과 실천성을 기저로 하는 생리설과 지행합일설 및 치양지설을 바탕으로 당시 교조주의적이고 명분론적 사고에 경도된 주자학파들의 폐단을 비판하고 ‘인간 주체성의 회복’과 ‘인간 평등’ 및 ‘주체적이고 평등한 외교’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정제두의 문인들인 ‘강화학파江華學派’는 인간의 천부적 양지良知를 근거로 하여 심학心學에 역점을 두었다. 인간의 주체적 사관 확립에 역점을 두어 고질적 노예사상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며, 대의명분론이나 허위의식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실질적으로 민초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 연구에 주력하였다. 또한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부자기不自欺를 토대로 철저한 민족 주체 의식에 입각하여 앎과 행함을 일치시키는 실천으로 드러났다.
최명길을 비롯한 초기 양명학자와 정제두와 강화학파의 학인들은 한결같이 당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보여준 주자학적 대의명분大義名分의 허위의식과 비주체성 및 실천성의 부재 등을 비판하고 양명학적 양지론良知論과 지행합일설 그리고 인간평등론 등에 근거하여 실심實心, 실질實質, 실리實理, 실사實事의 정신과 주체성, 실천성 및 자주성을 회복함으로써 당시 시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김길락, 󰡔한국의 상산학과 양명학󰡕(예문서원, 2004) & 유명종, 󰡔韓國의 陽明學󰡕(동화출판사, 1983) 참조.
반면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점, 즉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占의 한말전환기에 박은식과 정인보는 양명학을 통해 서구문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동북아시아의 공통적 과제와 일제日帝로부터의 국권회복國權回復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박은식은 “천부적 양지는 천하만인天下萬人 누구나가 차별 없이 동일하게 품수하고 있다”고 하는 ‘인간평등론’에 근거하여 ‘민권신장론’과 사상의 자유, 개개인의 자립화와 인간의 주체성을 근본으로 하는 ‘자주정신 계발’을 강조하고, 자주정신의 확대를 통하여 국가와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양명학의 핵심을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인仁’으로 이해하고, 천지만물일체설에 근거하여 ‘대동사상’과 ‘사해동포주의’를 제창하여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를 ‘세계 평화의 논리’로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인류 공존의 길’을 모색하였다. 정인보는 ‘실심實心’에 기초한 ‘실행實行’을 주장한다. 실심인 ‘양지良知’의 회복을 통해 개인의 주체의식 확립과 한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전인류의 화합을 꾀하고자 하였다. 그는 ‘양지’를 천지만물과 ‘감통感通’하는 주체, 특히 생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통각의 주체로 규정하고, 명덕·친민하는 ‘치양지致良知’는 다름 아닌 감통感通을 통해 민중과 아픔을 함께하는 일로서, 치양지는 국가 민중을 심내사心內事로 통감痛感하여 오직 말려 해도 스스로 마지 못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인보는 양명학에 대한 체계적 소개는 물론 양명의 천지만물일체설에 근거하여 민중의 고통과 고난을 자신의 고통과 고난으로 느끼는 본심 양지의 감통에 근거하여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상의 내용에 근거하여, 한국의 양명학자들이 보여준 생명사상의 특성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심즉리설’과 ‘지행합일설’, ‘치양지설’에 근거한 ‘주체적·실천적 인간관’과 ‘인간평등론’이다. 먼저 최명길은 ‘심즉리설’과 ‘양지설’을 토대로 당시 ‘명분名分’만을 고집하는 주자학자들을 비판하고 마음의 주체적이고 ‘실질實質’적인 태도를 중시하였으며, 이념적 대의만을 중시하는‘척화론斥和論’에 대항하여 ‘현실을 중시’하여 ‘현실적 상황과 주체가 합치된 곳’에서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한 방안으로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정제두는 주체성과 실천성을 기저로 하는 생리설과 지행합일설 및 치양지설을 바탕으로 당시 교조주의적이고 명분론적 사고에 경도된 주자학파들의 폐단을 비판하고 ‘인간 주체성의 회복’과 ‘인간 평등’ 및 ‘주체적이고 평등한 외교’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특히 양지良知의 본체가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에 본질적으로 다 존재한다고 보아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에 기초한 ‘주체성’을 강조하고 아울러 ‘평등 의식’을 드러내었다. 아울러 강화학파는 인간의 천부적 양지良知를 근거로 하여 인간의 주체적 사관 확립에 역점을 두어 고질적 노예사상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며, 대의명분론이나 허위의식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실질적으로 민초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 연구에 주력하였다. 그들은 또한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부자기不自欺를 토대로 철저한 민족 주체 의식에 입각하여 앎과 행함을 일치시키는 실천으로 드러났다. 박은식 또한 천부적 양지는 천하만인 누구나가 차별 없이 동일하게 품수하고 있다고 하는 ‘인간평등론’에 근거하여 ‘민권신장론’과 사상의 자유, 개개인의 자립화와 인간의 주체성을 근본으로 하는 ‘자주정신 계발’을 강조하고, 자주정신의 확대를 통하여 국가와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정인보는 과거 수백년간의 조선의 역사는 허虛와 가假로써 연출한 자취이며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은 가행假行과 허학虛學이라고 진단하고, ‘실심實心’에 기초한 ‘실행實行’을 주장한다. 실심인 ‘양지良知’의 회복을 통해 개인의 주체의식 확립과 한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전인류의 화합을 꾀하고자 하였다.
둘째, 양지의 ‘수시변역성隨時變易性’에 근거한 주체적 시대정신이다. 양명학에 있어 ‘의義’는 곧 ‘양지良知’로서 고정 불변한 법칙과 규범에 집착함 없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스스로 옳고 그름의 판단 준칙을 설정하고 이에 시비를 판단하는 ‘수시변역성隨時變易性’을 지닌다. 고정 불변한 규범과 원칙에만 얽매여 시대적 변화와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명분과 형식에만 집착하는 주자학적인 정리론적定理論的 의리 또는 교조주의와 달리 한국의 양명학자들은 그들 자신이 당면한 중대한 시대 문제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주체적 양지의 수시변역성에 의거하여 시대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예컨대 최명길은 당시 척화론자들과 달리 명분과 형식주의로부터 벗어나 “의義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는 입장에 근거하여 국가와 백성을 수호하려는 현실에 대한 그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였다. 정제두 또한 주자학파의 ‘존주대의尊周大義’의 명분론을 근거하여 ‘존중화尊中華·양이적攘夷狄’하는 ‘숭명배청崇明排淸’론에 대응하여 ‘화이일야華夷一也’의 ‘인간 평등론’을 주장하고, 배타적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 입장에서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보았다. 강화학파의 학인들은 천문天文·지지地誌·의약·역법曆法 등 실용實用과 실사實事에 역점을 두어 대의명분론이나 허위의식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실질적으로 민초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 연구에 주력하였다. 나아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점, 즉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占의 한말전환기에 박은식과 정인보는 양지론을 근간으로 한 ‘인간평등론’과 ‘천지만물일체설’에 근거한 양명학을 통해 서구문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동북아시아의 공통적 과제와 일제로부터의 국권회복이라는 시대적·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셋째, ‘천지만물일체설’을 근거로 한 ‘생명 존중 사상’이다. 양명학에 있어 진수는 “인간과 천지만물은 한몸이며, 인간은 천지만물의 마음”이라고 하는 ‘천지만물일체설’이다. 여기서 인간 마음, 즉 양지(萬物一體의 仁心)는 천지만물과의 감응의 주체로서 천지만물의 생명 손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통각의 주체이다. 최명길은 비록 천지만물일체설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의 본체의 작용은 동정動靜을 일관하여 부단히 천지의 유행天地流行과 하나로 합合한다고 보아, 인심을 매개로 천지와 인간이 하나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그가 “이에 ‘화친을 주장한다(主和)’는 두 글자가 신의 일평생 신변의 루累가 될 줄로 압니다.”라고 하면서도 끝내 주화를 주장한 것은, “힘을 헤아리지 않고 경망하게 큰 소리를 쳐서 오랑캐들의 노여움을 도발, 마침내는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불인不忍한 마음 때문이다. 최명길이 주화를 주장한 전제는 이념적 명분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수호하려는 현실에 대한 그의 주체적 판단에 있으며, 주화론의 궁극적 목적은 명분과 형식주의로부터 벗어나 백성과 국가를 위난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생명 중시’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제두는 “인심人心은 천지만물의 영靈이며, 천지만물을 모두 모아 놓은 것(總會)이다. … 인심은 감응하는 주체이며, 만리萬理의 체體이다.”라고 하고, ‘양지’란 바로 타자의 생명 손상을 아파하는 감응과 통각의 주체, 즉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인심仁心으로 파악함으로써 양명의 천지만물일체설을 온전하게 수용 전개하였다. 이러한 양지 본체가 천지만물과 감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시비를 자각하고 능동적으로 측은해하고 부끄러워하며 타인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는 실천 행위를 수행한다. 이러한 ‘천지만물일체설’은 ‘계급 타파’와 ‘인간 평등 의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한말 전환기 박은식은 양명학의 핵심을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인仁’으로 이해하고, 천지만물일체설에 근거하여 ‘대동사상’과 ‘사해동포주의’를 제창하여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를 ‘세계 평화의 논리’로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인류 공존의 길’을 모색하였다. 정인보 또한 ‘양지’를 천지만물과 ‘감통感通’하는 주체, 특히 생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통각의 주체로 규정하고, 명덕·친민하는 ‘치양지致良知’는 다름 아닌 감통感通을 통해 민중과 아픔을 함께하는 일로서, 치양지는 국가 민중을 심내사心內事로 통감痛感하여 오직 말려 해도 스스로 마지 못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생명과 평화의 길

<발표자 소개>

김 세 정 (金 世 貞)

1967년 생,
성균관대 유학과 졸업(문학사), 동 대학원 유학과에서 석,박사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부록 방문연구교수, 충남대 유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성대, 한남대, 충남대 시간 강사, 학술진흥재단 박사후 연구원 (충남대 철학과)
2001.6 ~ 2005.5 : 한국양명학회 편집이사 겸 편집위원장
2002.6 ~ 2004.9 :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전임강사
2003.3 ~ 현재: 한국철학사연구회 연구이사 겸 편집위원
2003.9 ~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양명학연구실 실장
2004.9 ~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기획관리부장
2004.10- 현재 :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조교수
2005.1 - 현재: 동양철학연구회 감사 및 편집위원
2005.4 - 현재: 충남대학교 도서관 고서위원
2005.6 - 현재: 한국양명학회 감사 및 편집위원
2005.6 - 현재: 대한철학회 연구위원장

<저서>
1. (공저)『왕양명 철학 연구』, 청계출판사, 2001.03
2. 김세정, 『양명학 인간과 자연의 한몸 짜기』, 문경출판사, 2001.12
3. (공저)『동양사상의 이해』, 경인문화사, 2002.09
4. (공저)『東洋哲學과 現代社會』, 충남대 유학연구소 편, 이화출판사, 2003.10
5. (공저)『전통사상과 현대사회』, 충남대 유학연구소 편, 심지, 2005.02
6. (공저)『韓國思想과 東西交涉』, 심산출판사, 2005.05

<학위논문>
1. 1990.2,   「朝鮮朝 後期 實學思想에 관한 硏究」,  성균관대학교 학사학위논문
2. 1995.6,   「王陽明의 格物致知說에 관한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3. 1998.12,  「王陽明의 生命哲學에 관한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연구논문>
1. 1995.12,  「王陽明 格物致知說의 變遷 過程」, 『儒學硏究』 3집,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 1997.3,   「맹자 심성론의 연원에 관한 고찰」, 『哲學硏究』 59집, 대한철학회
3. 1997.9,   「왕양명 良知論의 형성 과정에 대한 고찰」, 『哲學硏究』 62집, 대한철학회
4. 1997.9, 「二十一世紀儒學的作用 “以陽明的萬物一體說爲中心”」, 『孔子思想與二十一世紀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香港孔敎學院·中文大學 (金吉洛·金世貞 공동연구)
5. 1997.12,  「王陽明의 良知를 근간으로 한 온인간관」, 『東洋哲學硏究』 17집, 동양철학연구회
6. 1998.1,   「孟子의 心性論」, 『東洋思想과 現代社會』, 율곡사상연구원
7. 1998.6,   「王陽明의 生命中心의 有機體的 宇宙觀」, 『東洋哲學硏究』 18집, 동양철학연구회
8. 1998.8,   「孟子 心性論의 一元論的 체계」, 『東西哲學硏究』 15호, 한국동서철학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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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04.2, 「왕양명의 생명철학과 참 자아 실현의 교육론」, 『양명학』, 11호, 한국양명학회
32. 2004.12, 「왕양명의 유기체적 대동사회와 친민정치론」, 『동서철학연구』, 34호, 한국동서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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