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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4(화)
여성. 자연. 생명의 "오래된 지혜"를 찾아서  
윤박경 (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원)

여성, 자연, 생명의 ‘오래된 지혜’를 찾아서

 필자는 여성, 자연, 생명이 들려주는 지혜를 찾아가는 여행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에코페미니스트다. “오래된 지혜”를 지금 여기의 삶으로 살아내고자 길을 걷는 여행자로서 나는 내 안의 ‘나’와 여성들(타자), 그리고 자연 속의 뭇생명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며 더불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여기에서 소개할 “새만금 여성들의 갯살림 “갯살림”이라는 용어는 새만금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 삶을 유지하는 물질적 토대로서 ‘바다와 갯벌’(갯가, 바닷가)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생명이 태어나고 양육되고 성장하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이뤄져야 할 경제적 활동으로서의 ‘살림’이 결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만금 지역의 생태-문화적 체계에 기반하여 여성들이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살림살이’로서 갯살림은 새만금 지역 주민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접근을 가능케 한다. 또한 지금까지 삶을 유지하기 위해 통합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여성들의 경험을 부각시키는 데 유용하다.
”은 내 여행의 시작과 끝이 역설적으로 만나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갯벌 위의 살림꾼들과의 만남은 파괴를 성장으로, 생명의 재생과정을 수동성과 무가치한 것으로 경시해버리는 자본주의적 성장과 개발의 횡포에 가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존재들의 경험과 목소리들을 온전히 드러내는 한편,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긴 여행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새만금’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과 갯벌, 그리고 뭇생명들이 바로 그러한 존재들이었다.

1991년부터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 사안으로 우리 사회에 개발-환경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새만금 갯벌과 뭇생명들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와 서울행정법원의 방조제 공사 중지 결정, 그리고 보강 공사라는 명목으로 갈수록 막혀가는 물길과 더욱 황폐해져 가는 새만금 주민들의 삶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새만금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일련의 논쟁들과 운동 속에서는 간척의 일차적 대상지인 ‘갯벌’과 함께 살아온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갯살림을 꾸려온 여성들의 육화된 목소리에는 새만금 지역에서 살아온 ‘토착민들의 고단한 생존의 현실’과 방조제 공사로 죽어가는 ‘바다 생명들의 가녀린 외침’이 담겨져 있었다.

 이 글에서는 새만금 여성들의 갯살림을 통해 한국 여성들의 삶 속에 깃든 살림의 가치와 생태적 지혜를 드러내는 한편, 무분별한 개발과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성적 관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본문에서 다룰 내용은 필자가 2001년 4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실시한 새만금 현지조사와 새만금 여성들(부안의 ‘그레’마을)의 구술생애사를 기반으로 씌어진 졸저, 『새만금, 그곳엔 여성들이 있다』(푸른사상, 2004)의 내용을 발췌, 보완한 것이다.
 길 위의 풍경들  

풍 경 1.  새만금 여성들의 갯살림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부안 ‘그레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레’마을에서 ‘그레’는 새만금 지역의 여성들이 갯벌에 나가 백합(생합)조개를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현지에서는 ‘그레’ 혹은 ‘그랭이’로 불리운다. 여성들의 노동과정에서 ‘그레’는 여성과 갯벌을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갯벌에 대한 체화된 지식과 관리체계 그리고 생산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마을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갯것 뜯어먹고 산다’거나 ‘갯살림’이라고 흔히 표현한다. 갯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삶은 바다의 생태적 순환주기인 ‘물때’(조석시간)에 따른다. 갯벌에 나가 조개를 채취하는 ‘그레’마을 여성들에게 ‘물때’는 자신들의 노동공간인 갯벌의 드러남과 사라짐을 뜻하며, 갯벌에서 노동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어촌 지역에서 ‘물때’를 알려주는 달력은 여성들의 삶과 노동을 구성하는 원리이자, 삶의 일기다. 이렇듯, ‘물때’는 갯벌에서의 여성노동은 물론, 가정 내 여성들의 생명 재생산 활동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여성노동력 위주의 ‘갯살림’

어촌 지역의 삶과 노동은 흔히 ‘어촌=어업=바다=어부’라는 등식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등식은 어촌지역의 남성의 삶과 일, 그리고 생산 공간을 상징화하는 것으로, 공동체 내 여성들의 노동과 기여를 비가시화 시키곤 한다.
‘그레’마을 여성들은 가사노동 및 양육은 물론 갯일과 밭일, 땔감 구하기 그리고 고기와 조개를 팔아 곡식을 사오는 교역까지 담당해 왔다. 이와 달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마을로 돌아온 남성들은 험란한 작업환경에서 쌓인 고단함을 술과 노름 등으로 풀어냈다. 바닷가 남성들의 일상적 삶과 문화는 여성들로 하여금 가구의 생계와 소득의 일차적 책임을 담당하게 했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임신, 출산, 양육 그리고 가사노동과 같은 생명 재생산 활동 역시 여성들의 몫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레마을에서 ‘누구네 집이 제일로 좋게 만들어지는가는 누구네 집 여인이 조개를 제일로 잘 캐는가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레마을을 지탱하는 데 있어 여성들의 일과 수입은 매우 중요한 경제활동이었다.

 바다 가서 일하는 것은 고되기는 해도 내가 일을 하고 그만만큼의 보수가 있단 말이여.  내가 내 힘만큼 넘(남) 눈치 안봐가면서 내가 힘들면 힘든만큼 그냥 하다가 쉴 수 있고 그렇게 해 나가면서 내가 어떤 보상이 있는 거지. (갯일은) 진짜 최고로 좋은 건데. 나이 제한 없고 학력제한 없고. (D씨)

갯벌은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한테 자기가 땀흘려 일한 만큼 대가를 주고, 정직하게 자신들을 대해 준다고 여성들은 이야기한다. 갯벌은 어떠한 차별과 편견없이 여성들을 보듬어 안고, 여성들 역시 갯벌 속에서 당당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1년 365일 매일 반복되는 갯일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갯벌과 만나는 과정’이자, 물때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갯벌의 환경과 생합(백합조개)의 서식 특성을 몸으로 알아가는 ‘앎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체득된 갯벌 생태계에 대한 여성들의 체험적 앎은 생산성의 토대가 되며, 삶을 지속하기 위한 전략으로 노동과정에 다시 반영된다.

 자연자원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지속시키는 토대는 자연환경이다. 그레마을 여성들에게는 생합을 잡을 때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생합의 어린 새끼는 절대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 “키워야 또 잡어 먹잖어…아예 씨가 말라버리면 생합이 없어져 버려서 안된다”는 여성의 말 속에는, 그레마을 여성들의 맨손어업에 있어 갯벌 생산성의 유지가 곧 삶의 지속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내포돼 있다. 두 번째 원칙은 ‘물때에 순응, 협력하기’다. 여성들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생합 임자가 들어온다”고 표현한다. 생합의 주인은 바다와 갯벌이고 자신들은 잠시 한 물때 정도를 갯벌과 바다에게 허락을 받고 땀 흘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의 생합을 캐서 가져올 수 있을 뿐임을 알고 있다.
이렇듯 바다의 순환주기인 물때에 따른 여성들의 갯일은 갯벌에서 자라는 생합을 채취, 소비하여 삶을 지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생합이 자랄 수 있도록 바다 생태계의 재생과정에 협력하는 방식이라 하겠다.

  여성화된 공간, ‘갯벌’의 의미와 가치

 나? 육남매. 생합 잡어서 다 먹고 살고. 그것(생합) 아니면 죽었지. 여그는 그것 아니면 죽어. 여그가 생금밭이여. 날마다 캐도 또 가믄(가면) 또 있고, 또 가믄 또 있고.(…) 진짜 여그 사람들은 이것이 황금밭이거든. (B씨)

B씨의 말처럼 그레마을에서 갯벌은 다이아몬드 광산보다 더 좋은 ‘생금밭’으로 통한다.

 내가 그냥 집에서 이것저것 스트레스가 쌓였다가도 바다가믄은 그 넓은 바다 가서 마음 투~욱 터여 가지고 진짜 생합 잡는 재미로 거기에 몇 시간 정신 쓰이고, 안 나오면 먼 바다, 먼 산 쳐다보고. (E씨)

그레마을 여성들에게 갯벌은 ‘생금밭=목숨’과 같은 삶터로서 힘든 갯살림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주는 장소이다. 또한 그레마을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억압과 고통을 갯벌에서 일하면서 풀어냈다.

 인자 바다는 나의 행복이라고 정말, 내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 바다 덕이라고, 정말. 살면서 너무 힘들어가지고. (…) 우리 신랑이 완전히 미쳐버려 갖고 인자 날마다 집의도(집에도) 안 들어오고 돈 벌어 갖고 전부 술 먹고 바람피고 노름허고 그냥 미쳐 갖고 다니네. 그러니 나는 어떠겄는가, 잉? 신랑이 집의를 안 들어오니까 인자 우리 시누이들이 나를 볶아 먹어서. 날마다 뚜들어 맞고 살고. (…) 우리 신랑이 6번을 살림을 망해 먹은 거야. 그래갖고 14년 동안을 내가 생과부 생활을 했어, 14년 동안을. 그니까 그 세월을 바다 때문에 살었잖아. 바다 나가면 편안해. 너무 편안하고 평화로워. 딱 5시간 동안. 그때가 진짜로 행복한 시간이야. 밤에 잠 잘 때하고. 그래야 바다 가서 웃고 그러지, 집에서 웃을 수가 있간이? (F씨)

힘든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갯벌은 ‘행복의 공간’이었다. 이렇듯 그레마을 여성들에게 갯벌은 ‘자립과 희망의 생계 터전이자 마음의 안식처/치유의 장소’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여성들에게 갯벌은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주고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고통과 아픔을 풀어내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여성들의 생명 감수성

 나는 이 생합 나오는 것이 그렇게 사랑스럽다구. 이상하게 생합만 나오면 그 소리가 전 그렇게 사랑스럽게 들리는 이유가 생명이잖아요? (…) 나는 생합이 나오면은 ‘아휴, 너밖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 ‘나와줘서 고맙다’ 내가 그래유. (…) 진짜 마음 속으로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그러는디 가을 들어서 새만금 공사를 저렇게 한다고 하니까 ‘와, 너하고 나하고 언제 헤어질지...’ 그 생각만 하믄은 마음이 울컥울컥한다니까. (G씨)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가장인 그녀가 당당하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준 것은 다름아닌 갯벌이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낀 이 여성에게 갯벌에서 나오는 생합은 단순한 생계수단만이 아닌 자신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을 다 죽이는 거여. 없는 사람을 죽이는 거고, 우리 갯벌 생명들도 다 죽이는 거고. 여러 목쉼(목숨)이 다 죽어나가는 거여. 중단만 시켜갖고 이대로만 있어도 서로 의지하며 살 판인디..아~휴! (H씨)

 이렇게 막으면 갯벌 속에 있는 그 생명들이 다 죽는 거고. 근께 불쌍허지, 그 생명들이. 사람 생명은 그래도 지(자기) 몸둥이만 움찍거리면은(움직이면) 뭐라도 해서 먹고 살은께 괜찬혀. 그러지만 저런 생명들은 꼼짝도 못 허고 땅(갯벌) 속에서 죽은께 참 불쌍하잖아. (A씨)

갯벌에서 나오는 생합과 더불어 살아왔던 여성어민들의 삶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은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잔인한 짓’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여성어민들이 뭇 생명들에게 경외감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갯벌과 자신의 삶을 일체시켜 살아왔던 ‘갯살림’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체득된 생명감수성과 삶에 대한 책임감에 기반해 여성들은 갯벌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어왔다. 여성어민들의 위치에서 보면, 새만금 간척사업은 갯벌과 뭇생명들을 죽임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생명(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풍 경 2. 간척사업으로 위협당하는 여성들의 갯살림

간척사업을 간단히 정의하면, 갯벌을 ‘쓸모없는 땅’, ‘저개발’, ‘생산성이 낮은’, ‘낙후’ 된 것으로 여겨 이를 메워 더 높은 생산성과 상업적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공장부지나 농경지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발논리가 갖는 문제점은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과 이에 적응하며 살아온 주민들을 선별적으로 희생자화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간척사업의 경우, ‘황무지’로 전락한 갯벌과 함께 가치절하 되고 비가시화된 집단은 갯벌에 의지하여 살아온 가난한 여성들이다.

 아, 지금 생명이 살아 있는데 쓸모없는 땅이라니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지. 그 속에서 우리 인간이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살아있는 땅이지. 우리는 그걸(해조류) 먹고 사니까. 이런 뻘땅을 왜 저렇게 해 놓은 거야? 우리가 거그서 농사 지어서 돈을 벌 듯이 조개 잡어서 돈을 버니까 (농지와) 똑같은 땅이지. (G씨)

그녀에게 갯벌은 ‘조개나 몇 개 캐먹고 마는 죽어있는 황무지’가 결코 아니다. 여성들은 갯벌을 ‘뻘땅’ 혹은 ‘뻘밭’으로 부르며 육지의 농경지와 똑같은 생산공간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갯벌에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구체적인 삶터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왔다.

가부장적 보상체계에서 배제된 여성들

그레마을에서 맨손어업 종사자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정부가 제시한 ‘맨손어업 보상에 대한 등급별 기준’을 보면, 그 기준은 재산정도와 맨손어업의 종사여부, 조업실적 등으로 여기에는 ‘실제 맨손어업을 하느냐’보다는 가구단위의 재산정도와 겸업유무에 따라 차등적으로 구분되고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 자원/재산에 대한 접근기회와 통제권이 성별에 따라 불평등하게 제한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가부장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토지에 대한 소유나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토지와 양식장, 배와 같은 개별가구의 재산은 일반적으로 남성 가장의 명의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레마을 여성들 대부분은 재산정도와는 무관하게 갯벌에 나가 조개를 채취할 뿐만 아니라, 남성을 도와 어장과 김양식 및 가공공장에서 일하거나 농사일을 병행하고 있다.  

 여자라는 것은 완전히 소외되어 있어요. 어떤 일이든지 결정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고요. 그 보상 문제로 몇 번 데모를 했었고요. 정말로 문제가 되는 건 포패업(맨손어업)이었고 포패업하면은 남자보다 여자였어요. 그러면은 거기에 여자들이 사실은 끼어야 되는데 중심은 남자들이었거든요. 남자들에 의해서 결정을 하고. 뭐 (지역)유지라고 하는 이런 분들이 관(청)하고 서로 개입이 되어 가지고 흐지부지해서 그냥 끝낸 거예요. (방조제)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운 것도 다 여자고, 시위하느라고. 전부다 스크랩하고 쭉 눕고, 하여간 용감했어요. 진짜 큰 일은 여자들이 하고. (…) 근데 결국 그게 실패했던 게 뭐냐면은, 남자들이 발이 넓다 보니까 연줄이 있어 가지고 거기서 압력을 넣었다든가 하면은 그냥 포기하고 사그라진 거예요. (a씨)

새만금어업 피해보상은 토지, 배, 양식장면허권과 같은 남성의 소유권과 생산성, 그리고 남성 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가부장적 원리에 의해 이뤄졌다. 이 결과 맨손어업에 종사해 온 여성들은 보상체계와 의사결정과정 모두에서 소외와 배제를 경험하는 것은 물론,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인한 고통과 피해를 감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생태계 변화에 따른 여성들의 고통

새만금 방조제 공사의 진행과 함께 그레마을 여성들이 느끼는 일차적 변화는 갯벌 생태계의 변화다. 방조제로 바닷물의 유입속도가 느려지면서 조금 때는 육지 근처의 갯벌까지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이 결과 갯벌은 말라 소금기가 올라왔고 시커멓게 색깔이 변해가며 썩는 냄새가 났다. “뻘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바다가 이미 조업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져 버렸어요. 사람은 늘어나고 작업할 수 있는 장소는 좁아지니까 이제는 투쟁밖에 안 되는 거죠. (b씨)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주민들은 유일하게 남은 생합(백합)과 숭어잡이로 몰리게 됐다. 이러한 집중화 현상은 갯벌 생태계의 변화와 어패류 감소를 더욱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간의 경쟁과 갈등을 초래하여 마을 공동체를 분열시켰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갯벌 생태계가 변화하고 이로 인해 어장이 황폐화되면서 그레마을 주민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생계수단은 생합과 숭어였다. 그러나 2002년부터는 그나마 나오던 숭어마저도 급격히 수가 줄어들면서 배를 가지고 숭어잡이를 하던 남성들도 생합을 잡으러 다니게 되었다. 이 결과 그레마을에는 생합을 잡는 ‘그레꾼’들이 증가하게 됐다.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그물과 배로 생합을 남획하는 행위가 늘어나게 됐다. 그레만으로 생합을 잡던 여성들은 생합을 채취할 수 있는 공간을 침범 당하게 되었다. 그레꾼의 증가와 그물 및 배의 조개 남획은 여성들의 생산활동을 축소시키고 생산성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듯 개발의 팽창에 따라 여성이 생산적 활동으로부터 추방되는 것은 대체로 개발 계획이 생계와 생존을 위한 자연자원의 토대를 강탈, 혹은 파괴하는 방식에서 연유한다. 자연의 생산성과 재생가능성이 손상된 만큼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 자연자원에 대한 여성적 관리와 통제를 제거함으로써 여성의 생산성을 파괴한다 Vandana Shiva, Staying Alive, 강수영 옮김, 『살아남기: 여성, 생태학, 개발』(서울:솔출판사, 1998),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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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당하는 ‘갯살림’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시작된 후, 갯벌의 변화에 따른 생합 채취량 감소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여성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게 된다. 생합채취로 가구의 생계를 유지했던 여성들에게 생합 채취량 감소는 갯살림을 위협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휴, 덤프차가 자갈을 실어다 막 철철 부서. (새만금 방조제)공사를 하는 거여. 그 붓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어. ‘아휴, 이거 어떡하나 (…) 하루하루 죽음이 닥치는데..’ 진짜 아찔하더라고, 가서 보니까. 그 자갈 붓는 소리에 내 몸이 섬뜩섬뜩 막 몸서리쳐져. (G씨)

여성들에게 방조제 공사장의 ‘돌 붓는 소리’는 갯살림의 터전인 갯벌이 막히는 것을 의미한다. 바닷물이 들어와야 갯벌과 조개들이 살아갈 수 있고 이들과 더불어 자신들의 삶이 지속될 수 있다. 여성들은 생명을 실어 나르는 물길(바닷물의 흐름)을 가로막고 서 있는 방조제가 죽음처럼 여겨진다.

바다와 갯벌은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 여성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구성해왔던 정신적, 물질적 토대였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초래하고 있는 해양 생태계의 파괴는 갯벌의 수산자원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해 온 그레마을 여성들에게 있어 물질적이고 문화적인 생존의 문제다. 갯벌 생태계의 악화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여성들은 누구보다도 더 소리 높여 갯벌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여성들의 ‘갯벌=생계/삶’에 대한 절박한 태도는 갯벌을 살려내기 위해 갯벌을 관리하고 지키는 집단적인 대응으로 이어지게 된다.


풍 경 3. 생존을 위한 여성들의 저항

그레마을 여성들의 갯벌 지키기는 2001년 여름, 하리 갯벌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여성들의 ‘갯벌 지키기’는 외지인 갯벌출입 통제, 그물철거 사건 그리고 조개 남획 방지를 위한 방배출입 통제 등으로 이뤄졌다. 또 2002년 6월에는 생합(백합) 생산자들이 그레마을 생합 소매상들을 상대로 ‘생합가격 보장’을 요구하며 생합 채취와 판매를 집단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새만금 반대운동과 여성들의 만남

하리 마을 여성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갯벌 지키기’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갯벌 생태계가 악화됨에 따라 생계위협을 느낀 여성들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갯벌 지키기’가 지역 새만금반대운동과 결합돼 새만금 방조제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새만금 갯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서 갯벌에서 생명을 느끼고 그 생명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감성을 이야기한 분도 여성들이에요. 그리고 ‘이 갯벌이 어머니의 자궁이다’라고 이야기 한 분도 여성이에요. 그 다음에 이 갯벌이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대한다고 말씀하신 분도 여성이에요. 새만금반대운동의 본질, 뿌리는 이 여성한테 다 나왔어요. (…) 저는 여성어민들이 이 새만금반대운동의 주역이라고 봐요. 또 진짜 그 분들이 바다와 갯벌에 가장 애절하기 때문에. (c씨)

‘부안사람들’의 활동가인 c씨는 지역 여성어민들로부터 새만금반대운동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관점을 발견하고 배울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갯벌은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생존이 달린 목숨과도 같은 삶터이기 때문에 ‘죽고 살기로 갯벌을 못 막게 해야 한다’고 여성들은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절박한 심정은 ‘새만금 갯벌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는 것으로 모아질 수 있었고, 여성어민들과 새만금반대운동이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지역 새만금반대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다.

여성 주도의 저항

2002년 4월,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70% 이상 진행된 상태였다. 방조제를 쌓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토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토석은 새만금 사업 지구내의 산을 깎아 충당하게 되는데 그레마을 주변의 해창산이 바로 토석 채취를 위해 깎여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안사람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해창산 토석채취를 반대하는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여성들도 이 농성에 참여했다. 농성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중반에 접어들면서 몇몇 여성들은 생계도 포기한 채, 매일같이 농성장으로 달려와 공사를 저지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공사를 다시 시작하는 시공업체 인부들에 맞서 덤프 트럭 앞에 드러눕거나 포크레인 위에 올라타기, 트럭 앞을 가로막기, 공사 진입로 한 가운데 앉아 있기 등 온 몸으로 저항했다. 농성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태도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온 몸으로 맞서는 여성’과 ‘뒷짐지고 서 있는 남성’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아주머니들이 더 바다 가보면은 그렇게 생겼으니까 더 그렇게 헐 수밖에 없지. 아주머니들은 우리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우선 현재 바다 가야 돈을 버는디 바다가 이렇게 후딱 막어 버리면은 못 살게 생기니까 그렇지. 안 그려? 밥을 굶고 갈치던(가르치던) 자식을 못 갈키게(가르치게) 생겼잖아. (I씨)

여성들에게 바다가 막히는 것은 생계터전을 잃어버리는 절박한 상황이었던 것에 비해, 배를 가지고 있는 남성들은 수협에서 제공하는 면세유를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농성장에는 군 수산과 직원들과 경찰, 새만금 사업단 직원들이 와서 농성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어갔다.  그렇게 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남성들 대부분은 농성장에 오지 않으려 하거나 오더라도 ‘뒷짐지고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남성들 모두가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갯벌에서 주로 맨손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남성들은 농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해창산 농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그레마을에서 성과 계급에 따른 노동분업의 구조 속에서 재산과 권력을 갖고 있지 않은 ‘주변화된 집단’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여성

농성 중반에 접어들면서 싸움은 더 빈번해졌다. 농성으로 몇 주 동안 공사를 못해 경제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던 시공업체는 공사를 방해하는 농성단원들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여성들의 분노는 더해만 갔다.

 차 못 다니게 공사장 진입로 한 가운데 앉아 있었더니 나를 막 끗고(끌고) 다니길래 차 앞에 가서 누워버린 거지. (…) 경찰도 안 무섭고 어떤 놈도 안 무서워. 인자 대통령이 와도 안 무서울 정도야. 왜 막었냐? 나 먹고 살라고 막었다. 니네들은 다 배우고 똑똑하고, 권력 있으니까 돈 벌지만 우리는 뭣 모르고 가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게 우리 만족인데 그것마저 뺏어 가면은 우리는 어떻게 하냐고? 진짜 우리 목숨을 끊는 거나 다름없는 거지. 뭐 살인이 달리 살인이여. (J 씨)

J씨는 여성가장으로 많은 빚을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죽음의 호수로 변해버린 시화호를 다녀온 후 새만금 반대운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강한 확신과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나는 보상 얘기를 잘 안 쓰는 게 이 자연을 보호하고 이 생명을 살리자는 그런 뜻을 가지고 지금 운동을 하잖아. (…) 왜그냐면은 생명 때문에. 하느님이 정말로 귀한 것을 주셨는데 사람의 힘으로 파괴시키고 이걸 막는다는 것은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내 뜻은 나도 생명을 귀하게 여기자. (J씨)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생명은 갯벌과 바다의 생명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런 갯벌을 지키기 위한 해창산 농성은 ‘갯벌의 생명을 살리는 운동’인 것이다. 농성단원들과의 상호 작용과 저항 경험의 의미화를 통해 그녀는 자신을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그래서 이 생명들을 살리는 사람’으로 정체화하게 된 것이다.

 바다 생명 다 죽는다! 건져내자 건져내자, 바다 생명 건져내자. 걱정마라 걱정마라, 느그 생명 건져주마. 걱정마라 걱정마라 느그 생명 우리가 다 건져주마. 바다 생명 다 죽는다! 우리가 건져내세, 바다 생명 건져 내세. 부안사람 똘똘 뭉쳐 다 나와갖고 우리가 바다 생명 건져내 백세, 천세, 만세 이 (강)변에서 사세. (K씨)

위의 내용은 농성 기간 중, 새만금 방조제 공사 저지를 위해 여성들이 주도했던 ‘새만금사업 장례식’에서 당시 81세였던 K씨가 즉석에서 외친 구호이다. 이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같은 개발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을 죽이는 일이고, 바다생명을 살리는 주체는 여성(지역주민)이며, 새만금 지역의 지속가능한 생존/발전은 갯벌과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해 온 자신들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여성들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갯살림’은 지속되어야 한다

여성들의 ‘갯벌 지키기’와 ‘해창산 농성’은 갯벌과 자신들의 삶이 맺어온 연결 고리를 다시 잇기 위한 여성들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현재의 개발을 다시 보고, 갯벌을 다시 회복하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 방조제가 막아지고 생명이 죽어 나가면은 작지만 크게 생각하면 우리 인간 스스로가 죽어나가는 삶이다. (…) 그 많은 생명들이 살아 있음으로써 우리는 거기서 노동하며 벌어먹고 우리가 쓰고 생명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데, 그 생명들이 죽음으로 인해 사람은 자기 목숨을 자꾸 단축시키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L씨)

인간의 삶과 자연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일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여성들에게 있어, 새만금 간척사업은 물질적인 성장과 풍요라는 인간의 탐욕으로 갯벌과 뭇생명들을 죽임으로써 인간 스스로의 생존마저도 위협하는 행위인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로 갯벌이 막히게 되면 마을 주민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고향을 등지고 사람들이 떠나면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닷일 이외에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어민들이 도시나 다른 지역으로 간다해도 ‘노숙자’나 ‘도시 빈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의 토대인 갯벌을 파괴하면서까지 지역이 발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지금 당장 새만금간척사업을 중단’하는 것만이 갯벌의 무수한 생명들을 살리고 자신들도 갯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죽어가는 생명들을 한 번이라도 와서 보고 그 생명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새만금 갯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며 여성들은 안타까움과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 새만금 만큼의 갯벌이 있는 곳에 나를 이주만 시켜줬으면 쓰겄어. (아, 새만금)갯벌만큼만, 이 뻘이 있는 데 만큼만. 거그다 나를 이주만 시켜주면 나는 더 이상....만약에 그럴 경우에는 현금도 필요 없고...진짜 나는 그러고 싶어. 내가 죽을 때까지 바다에서 그냥 조개 잡고 그것 먹고, 나 그러고 살고 싶어. 아무 것도 필요없어. (…) 진짜 뭐 대답은 못 들어도 그냥 바다하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진짜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속에서 살다가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G 씨)

자신들이 반대하고 끝까지 싸워도 정부가 새만금 갯벌을 막을 수밖에 없다면 ‘새만금 갯벌과 똑같은 곳’으로 이주시켜 주거나, 자신이 죽을 때까지(“갯벌이 안 막히면 아무 걱정없이 눈을 감을 수 있다”) 20년만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여성들은 이야기한다.

길 위에서 길을 만나다
: “나-여성(타자)-자연”=생명_치유를 향한 살림의 길.  

 몇 달 동안을 뜬눈으로 병간호해서 병원에서도 포기한 자식의 생명을 살린 여성, 남편을 집어 삼켜버린 바다에서 나오는 고기를 15년 동안이나 먹지 못하면서도 그 바다/갯벌에 의지해서 4남매를 키워내야 했던 여성, 남편의 외도/가산탕진으로 14년동안 생과부로 시부모와 자식들을 보살펴온 여성, 술버릇 사나운 남편의 구타와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며 황소처럼 일해 살림을 지탱해 온 여성 등등.

새만금 여성들의 삶은 희생하고 순종하는 그런 어머니의 삶은 아니었다. 그 여성들은 가족과 자식을 위해 칼바람 맞으며 쉼없이 조개를 캐서 삶을 지탱해나가는 자립의 어머니였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폭력과 시집살이에 맞서 싸우는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들이었다. 또한, 방조제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갯벌과 뭇생명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인간의 탐욕으로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품고 길러온 생명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갯벌과 바다에 고마워할 줄 아는 여성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개발론자들에 맞서 새만금 갯벌과 뭇생명을 살리기 위해 온 몸으로 저항하는 투사가 되었다. 그들에겐 결코 타협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렇듯, 내가 만났던 새만금 여성들은 적극적이고 강한 생명력으로 ‘삶/갯벌’을 살려내는 진정한 살림꾼들이었다. 여성들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새만금 갯벌 ‘살림’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뭇생명들의 삶터인 갯벌(자연)을 지키고 파괴된 갯벌을 보살피며 가꾸는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인간-자본-남성의 이해에 가려 억압당하고 가치 절하됐던 자연과 여성을 비롯한 ‘타자화된 것’들이 갖는 긍정성과 가치를 살려내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새만금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삶터인 갯벌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조개를 캐러 여성들과 함께 가 본 갯벌은 여성들의 삶의 애환과 의지로 가득찬 삶의 현장이자, 생명의 땅 그 자체였다. 갯벌은 더 이상 추상화된 자연이 아닌, 사람과 함께 공존하며 수많은 생명들을 품고 길러내는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왔다. 새만금에서 난 처음으로 갯벌과 뭇생명들이 죽어가고 산이 깎여 나가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렇듯, 새만금은 내 안의 풀리지 않은 문제와 여성들의 삶, 그리고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연(새만금 갯벌)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 장이었다.  

새만금 여성들과 갯벌이 나에게 준 메시지는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그러니 우리가 그 아픔을 함께 치유해 나가자”였다. 억압과 폭력으로 고통당하는 여성들(타자)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때, 그리고 개발의 미명하에 살점이 찢겨져 나가고 피흘리는 자연의 아픔에 눈물로써 참회할 수 있을 때야말로 여성들(타자)간의 연대와 자연과의 화해는 물론, 우리가 더불어 평화로울 수 있으리라. 또한 “삶/생존을 놓고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새만금 여성들의 생존의 관점은 삶의 위기, 생태적 위기라는 절대절명의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

(사)생명과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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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