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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4(화)
스리랑카에서의 생명과 문화  
찬디마 위제반다라


스리랑카에 대해 언급하고 싶어 하는 학자들은 스리랑카가 심각한 갈등에 직면한 국가라고 할 것이다. 싱할라들의 싱할라는 스리랑카를 구성하고 있는 최대 종족의 이름이다. 이외에도 스리랑카에는 타밀, 무어, 버거족들이 있다.
점진적인 변화와 거의 평화적인 환경이 서구의 힘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차단되기 전까지 스리랑카는 최근까지 ‘싱할라 불교 국가’라고 알려져 왔다. 현재 국민들은 아직도 ‘싱할라 불교 국가’인지 아니면 다종교 국가인지 의아해 하고 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사용해가며 (그 부분에 대해) 토론은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삶은 변하는 것이며 문화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결론 이외에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다.

스리랑카의 시작에 관해서는 다른 많은 오래된 문화들처럼 많은 전설들이 전하지만 가장 주가 되는 의견은 스리랑카 섬으로 2500여 년 전에 인디아로부터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는 것이다. 인디아의 전설에 의하면 (현대의) 서부 벵갈과 방글라데시라고 일러지는 지역인 방가 지역과 관계가 있다고 되어 있다. 스리랑카의 첫 번째 왕인 위자야는 인간 여왕을 유괴하여 같이 살았던 사자의 손자였다. 스리랑카의 개국설화는 삼국유사에 소개되는 호원(虎願)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이는 남방 지역과 한반도의 교류가 활발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졸고 아시아의 불교설화, 우리출판사)
그리고 위자야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부처가 입멸한 바로 그 날 스리랑카에 도착했다. 부처가 입멸한 날에 대해 북방불교와 남방불교는 차이가 있다. 한국 중국등의 북방불교권에서는 부처의 탄신일이 음력 4월 8일인데 반해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등의 남방 불교권에서는 부처의 탄신, 성도, 입멸이 웨삭 또는 베사카라 하여 양력 5월의 만월일 - 음력 4월 15일 - 이다.
사회학자들에게는 신화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스리랑카와) 인디아와의 관계와 ‘싱할라 불교인’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고대인들이 선호하는 동물과 관련된 토템적인 이야기 이며 사자는 일반적으로 용감하고 당당하며 훌륭한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싱할라들에게도 절대 저속하고 상스럽지 않은 신사처럼 행동해야만 한다는 감정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형제와 누이들간의 결혼을 통하여 순수한 혈통을 보존해 왔던 부처 자신의 종족인 샤카족과 동일한 종족이기를 원하는 신화의 형식에 기인한 것이다.

신화는 사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다. 신화는 오로지 매혹적이거나 상징적이거나 간접적인 방법으로 약간의 사실들을 묘사할 따름이다. 스리랑카 섬의 일반적인 대부분의 이야기들을 분석한 역사가들은 싱할라는 세 종류의 선주민들과 방가 지방과 남인도에서 건너 온 사람들의 혼합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위자야의 사람들은 적당한 배우자감을 찾아 남인도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는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아소카 황제에 의해 스리랑카 섬으로 소개 되었다. 첫 번째 전도사는 마힌다 장로였으며 후에 마힌다의 누이인 상가미타 공주도 건너왔다. 그 당시 스리랑카의 수도는 아누라다푸라였다. 아누라다푸라는 잘 계획된 큰 도시였으며 마하왐사 스리랑카의 역사서로 대사(大史)라고 한다. 대부분의 남아시아 지역에 이렇다할 역사서가 없는데 반해 스리랑카는 풍부한 역사서를 가지고 있으며 마하왐사 이외에도 출라왐사, 디이파왐사등이 있다.
에 는 문명에 있어 매우 도시적 감각을 지닌 도시라고 묘사 되어 있다. ‘도시의 중앙이나 외곽모두 국가 행정적인 것은 잘 구성되어 있으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물들은 지정으로 높은 수준이다. 농업을 위한 관개 시설은 높은 수준이며 체계적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국가로서의 스리랑카의 진정한 시작은 불교가 소개된 이후이다.’라고 라훌라가 말했다. 왈폴라 라훌라는 스리랑카 출신 불교 학승으로 불교관련 단일 서적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팔린 책인  What the Buddha Taught의 저자이다.

사실상 불교가 고대 스리랑카를 하나로 묶는 데에는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역사가들은 처음에는 인디아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주해 와 스리랑카 섬의 여러 지역에 정착하였다. 그들이 여러 종족, 카스트, 씨족에 속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그들을 결속할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불교가 스리랑카에 들어와서는 급속히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두따가미니왕 (기원전 101-77)은 (인도 남부의) 엘라라왕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 (나라가) 하나 되기를 원했으며 왕은 (그를 위해서는) 모든 나라가 불교를 잘 보존토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를 위한 첫 번째 일이 두따가미니왕에 의해 스리랑카 섬의 각 지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참석하여 거행된 루완웰리사야 대탑의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의식이었다.

스리랑카 문명의 지배적인 기초와 가치의 체계는 불교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왕들은 왕이 지켜야할 열 가지 덕목 (Dasa Raja Dhamma)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다. 이 열가지 덕목은 세금을 받아들이는 국왕에게는 담세자인 백성을 위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불경 Jâtaka에 소개 되고 있는 내용이다. 국가와 지도자와 국민과의 관계를 나타낸 내용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적인 덕목이 잘 설명되어 있다. 그 열가지는 보시, 지계, 시사(施捨), 정직, 유화(柔和), 고행(苦行), 친애(親愛), 무해(無害 즉 不殺生), 인욕(忍辱), 무위배(無違背) 등이다.
승려들이 220계를 받아 지키며 살아가는데 반해 재가자들은 5계를 수지하며 지낸다. 대체로 승리자의 네 가지 삶 이를 사섭(四攝)이라 하는데 이에는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가 있다.
즉, 사섭을 지키고, 육체적 성취를 위한 네가지 방법, 진정한 자유인 해탈을 위한 여덟가지의 길 즉 팔정도등이 불교가 지향하는 광명으로 이끄는 주요 원리들이다. 과학적 물질주의나 기독교를 포함한 서구 사상과 접촉하면서 비록 많은 규범들이 약화되기는 하였어도 이 가치는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5계는 수호를 위한 의식이나, 공양을 할 때나, 증여를 할 때나, 마을의 수도원의 모든 의식을 시작할 때마다 시행되고 있다. 의식이나 축제나 법회에 참석하는 인원은 그래도 늘고 있다. 중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피릿의식의 실을 자신들의 손에 감지 않으려고 하던 시절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은 피릿의식의 실을 자랑스럽게 매일 손목에 감고 있으며 그들은 친구에게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서로 찬양하며 (종교적 행동이)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 모두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서구의 이데올로기와 (다양한) 현대적 전달 수법들의 증가는 더욱 해롭다. 자살율, 뇌물 공여, 잠행적 행위등 범죄율이 늘어나고 있다. 불루 필름이나, 책, 인터넷, 비디오나 도박 같은 범죄, 여행이라는 명분을 총한 매춘의 증가등은 사람들의 마음을 좀먹는데 이들은 종교적 가치 그 자체만 가지고는 조절 할 수 없다. 경제적 행위들은 판단할 가치가 없다고 오래된 경제학자들 역시 가르쳐왔다. 사회학자들이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세상에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발전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어떤 가치들은 사회적으로 조건지어 있으며 관계되어 잇지만 그곳에도 정당한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불교의 오계는 명확하게 보편적이며 별도의 어느 참고적인 것이 없다하더라도 불교에 적용시킬 수 있다.

스리랑카에는 동시에 힌두교도 존재한다. (스리랑카에서의) 한두교는 주로 타밀인들이 믿고 있다. 하지만 스리랑카 불교도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 힌두교와 유사한 신앙과 수행을 하고 있다. 불교인들은 힌두교의 신을 숭배하거나 신을 위하여 공양을 바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힌두교의 (사원이나) 성지에서 진행되는 축제에 참석한다. 불교 사원의 주요건물들 안에도 부처의 상 옆에 힌두의 신의 상들을 모시고 있다. 불교도들은 이 신들을 영원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공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구나 내세에는 신으로도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일시적인 은혜를 입기위해 불교도들은 힌두 신들을 공경하고 전승하는 것이다.

불교와 힌두교간의 평화적인 상호공존은 각종 축제에서 잘 나타난다. 불교도들이 따르는 많은 구절들에는 힌두적인 요소가 많이 드리워져 있다. 매년 4월 13일 거행되는 새해맞이 축제는 힌두교도와 불교도가 공히 즐기고 있다. 상서로운 시간들도 (힌두교도와 불교도) 모두 같으며 그들이 행하는 행위 역시 유사하다.

힌두교와 불교도 모두 유사하게 사회적 가치를 증진 시킨다. 나눔, 비폭력, 관대함등이 그들이다. 그러므로 스리랑카인들은 주로 매우 평화적이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행복하다. 그들은 그들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신(神)처럼 대한다. 설사 잘 모르는 이가 방문하거나 예고하지 않고 방문하더라도 음식과 마실 것을 주는 것은 일반적이다. 인색함은 항상 경별의 대상이다. 스리랑카인들이 항상 웃음을 띤 얼굴로 친절하게 대화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심미적인 멋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예술과 좋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것을 애호한다. 스리랑카가 상좌부 불교의 종주국으로 추앙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단순히 파알리 불전을 싱할라 문자로 옮겼다는 것 뿐 아니라 싱할라로 쓰여진 많은 불교관련 시나 문학작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로 인디아의 전통으로부터 유래된 것이지만, 그들의 음악은 서구나 동남아시아의 영향도 받았다. 회화가 전래된 이후 스리랑카에는 세계적으로 괄목할만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기원전의 작품으로 담불라 동굴벽화등이 있으며 시기리여 벽화는 3세기 의 작품으로 그 회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현재 잠복되어 있는 스리랑카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 설명을 마무리할 수는 없다. 처음에 말을 했듯이 문화적으로 풍부하고 철학적으로 유려한 이면에 경제적으로 퇴보하는 섬이라는 심각한 위기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파괴적이고 부패한 정치 때문이다. 힘에 굶주린 정치인들이 힘을 키우기 위해 잘못된 선동을 불필요하게 사람들을 분열 시켰다.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카스트나 종교, 종족 그리고 지역감정 등을 조장하였다. 그것은 문제를 만들기는 쉬우나 해결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콜롬보에서 타밀인과 무슬림들의 점포들의 단골은 싱할라들이다. 타밀인 의사들은 싱할라인 환자를 돌보기 위해 바쁘다. 비록 그들 사이에 미심쩍은 것들이 있다하더라도 그들은 아직까지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문화를 더욱 행복하고 밝게 만드는 긍정적인 정착을 확신한다. 싱가폴처럼 우리는 ‘한 영토, 한 국가’라는 것을 생각할 때이다.

(사) 생명과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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