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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4(화)
전근대 여성의 신명과 풍류  
박   정   애

1. 전근대 여성은 무엇으로 살았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을 기준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가부장제하의 여성은 자신을 주재(主宰)하는 남성, 곧 아버지나 남편이나 아들의 정치적·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을 획득한다. 작가 이문열에게 선택된 󰡔선택󰡕의 주인공, ‘정부인 안동 장씨’라는 특정한 기호 “나는 조선왕조 선조 연간에 태어나 숙종 연간에 이 세상을 떠난 한 이름 없는 여인의 넋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특정하는 유일한 기호는 아버지의 핏줄을 드러내는 장이라는 성씨와 훌륭한 아들을 기려 나라에서 내린 정부인이란 봉작뿐이다.” 이문열, 󰡔선택󰡕, 민음사, 1997, p. 7.
는 그런 정황을 말해준다. ‘정부인’은 남편이나 아들의 벼슬에 상응하여 부인이나 모친이 받는 외명부 봉작(封爵)의 하나로서 개가(改嫁)할 경우에는 박탈당하였다. ‘안동 장씨’란 이 여성의 부계 조상의 성씨이거니와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는 서양여성에 비하여 한국여성이 대접받고 살아왔다는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안동 장씨’와 같은 종류의 기호란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문 간의 ‘여성 교환’이 이루어질 때 여성이라는 교환물의 품질을 보증하는 일종의 브랜드일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재주와 인품이 비범했던 이 양반여성은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제한적 정체성의 틀에 스스로를 가둘 수밖에 없었고 그 안에서나마 긍정적인 자기실현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신사임당과 유사하다.
두루 알다시피 신사임당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가 도달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체의 한 상징으로 기능해 왔다. 아름다운 시와 그림과 글씨를 남긴 예술인이면서 한 가정의 지혜로운 주부 역할을 다해냈으며, 무엇보다도 율곡이라는 대학자를 낳아 기른 영광스런 어머니가 바로 사임당인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여자의 정도(正道)는 재예(才藝)가 아니라 숙덕(淑德)에 있었고, 그 숙덕(淑德)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남편과 아들을 뒷바라지하고 출세시켜 가문의 영예를 드높이는 것이었다. 남편과 아들 중 전근대사회의 여자에게 더욱 중요한 쪽은 아들이었다.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는 변변한 자손으로 키우지 못한 여자는 비록 사임당을 능가하는 재예와 숙덕을 겸비했다 하더라도 ‘사임당’이라는 상징적 월계관을 쓸 수 없었다. 아들의 존재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가 자신의 본질적인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일종의 유사남근이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허난설헌을 바라보는 가부장제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거북하고 불편했을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허난설헌은 여자에게는 이름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 감히 초희(楚姬)라는 이름과 경번(景樊)이라는 자(字), 난설헌(蘭雪軒)이라는 호(號)를 지어 가졌으며, 한국 문학사 최초의 여성전문시집인 󰡔난설헌집󰡕으로 중국과 일본에서까지 화려한 문명을 떨친 국제적 시인이었다. 중국 문사들과 환담하던 중에 경번이 허난설헌의 이름이나 호로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아 준 북학파(北學派) 실학자 박지원은 “우리나라 부인들은 일찍이 이름이나 자가 본국에서 나타난 자를 찾아볼 수 없으니, 즉 난설헌 호 하나만으로도 과분한 일이다! 하물며 이름이 경번으로 잘못 알려져 여기저기 기록되어 있으니 천년에도 씻기 어려운 일이다. 후에 재능 있는 여자들이 이를 밝혀 경계의 거울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박지원, 󰡔열하일기󰡕, 김성남, 󰡔허난설헌󰡕, 동문선, 2003, p.65에서 재인용.
고 썼고, 홍대용 또한 “여자가 덕행으로 이름을 전하지 못하고 약간의 시로 이름이 썩지 않은들 무슨 다행함이 있겠느냐” 󰡔을변연행록󰡕 1766년 2월 6일의 일기. 김명희, 󰡔許蘭雪軒의 文學󰡕, 집문당, 1987, p. 12에서 재인용.
고 비판했다. 이렇게 재승덕박(才勝德薄)의 표본으로 공인된 난설헌 허초희는 기실 세속적 기준으로 볼 때 신사임당이 거둔 성공의 대척점에 있다시피 한 패자였다.
그녀는 남편과 불화했고 어린 남매를 사별한 뒤에 뱃속의 아이를 유산했으며 친정집마저 옥사에 연루되어 참화를 입은, 한마디로 박복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 또한 하필 조선이란 좁은 땅에, 하필 여자로 태어나, 하필 김성립의 처가 되어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자신의 현실에 끝내 승복하지 않은 반항아였으며, 여자와 남자가 자유로이 만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선계(仙界)를 꿈꾼 발칙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다. 그것도 다만 백주에 선계를 꿈꾸는 데에 그치지 않고 빼어난 유선시(遊仙詩) 99수를 남긴 문학 천재였다. 스스로 지상에 유배된 선녀라 여겨 화관을 쓰고 향을 피워 놓고 시문을 읊었다는 그녀에게 유교 가부장제가 틀 지워놓은 사족(士族) 여성의 정체성이란 감옥과 진배없어서 그녀는 그 감옥 안에 고인 물처럼 썩어갈 수밖에 없었다. 고로 천여 편에 이르는 시들을 모두 불태우라고 했다는 그녀의 유언은 그렇듯 속절없이 썩어간 자기 삶에 대한 ‘자학적 애도’이자 여성 시인의 생명력을 압살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자학적 저항’으로 읽힌다.
대다수 여성들이 남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정의된 정체성의 감옥에 단단히 갇혀 있었던 시대에 황진이는 제도와 규범을 넘어 ‘흘러넘치는’ 여성이었다. 물론 황진이가 안동 장씨,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처럼 양반가문의 적녀(嫡女)였다면 황진이의 삶 역시 안동 장씨나 신사임당처럼 체제에 적극적으로 순응함으로써 성공하거나 허난설헌처럼 체제로부터 소외됨으로써 패배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성종 때 양가의 적녀로서 여러 남성들과 색사를 벌인 어우동은 결국 국법으로 사형을 당하지 않았던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황진이가 가문의 낙인이 찍히지 않은 사생아였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황진이 자신에게도 우리 문학사에도 축복이 된다.
여러 기록들에서 유추한 바, 황진이는 황진사의 서녀(庶女)이자 맹녀현수(盲女絃首) 진현금의 딸이다. 기녀가 되어서도 성품이 고결하여 시정의 천한 족속이 천금을 준다고 하여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풍류명사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았다. 당대의 일류 문사 소세양이 “30일만 동숙(同宿)하고 만약에 하루라도 더 머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장담한 후 진이에게 왔다가 이별의 날에 진이가 준 한 수의 시에 감동하여 스스로 나는 사람이 아니노라 탄식하며 더 오래 머물렀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진이를 만나고 싶어 송도에 왔다가 진이가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를 읊는 소리에 뒤돌아보다 말에서 떨어졌다. 30년을 면벽수도하여 생불(生佛)이라 일컬어지던 지족선사(知足禪士)가 진이를 만나고 난 뒤 파계했다. 선전관 이사종은 당대의 명창이었는데 진이와 사귀려고 천수원 냇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에 이사종을 사랑하게 된 진이가 6년간 동거하자고 제의하였다. 처음 3년은 이사종의 집에서 진이가 그의 부모, 처를 돌보며 생활비를 대었고, 나중 3년은 이사종에게 진이의 일가(一家)를 돌보게 하였으되 기한이 이르자 헤어졌다. 금강산 유람을 소원하던 진이는 재상의 아들 이생에게 양식을 짊어지게 하고 자신은 베치마, 짚신 차림에 죽장(竹杖)을 들고 금강산에 들어가 골골샅샅이 구경했는데, 때로는 걸식도 하고 때로는 중에게 몸을 팔아 양식을 구하기도 했다. 평생 화담 서경덕의 인격과 학덕을 사모하여 배움을 구했다. 이상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이덕형의 󰡔송도기이(松都記異)󰡕, 허균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임방의 󰡔수촌만록(水村漫錄)󰡕, 서유영의 󰡔금계필담(錦溪筆談)󰡕, 김택영의 󰡔송도인물지(松都人物志)󰡕에 걸친 황진이 관련기록은 김탁환의 역사소설, 󰡔나, 황진이󰡕(푸른역사, 2003) 부록을 참조했음.
또한 그녀는 우리 고전문학사에서 가장 빼어난 시편을 남겼으며 고려의 음악을 창조적으로 이어받아 후세에 전승시킨 탁월한 예술가였다.
이렇듯 황진이는 어떤 고정된 정체성으로 자신을 틀 지우기보다는 끊임없이 자기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자기를 발명해내는 사람이었다. 기생으로, 예인으로, 시인으로, 열정적인 사랑의 주체로, 유랑객으로, 도학(道學)을 좇는 학생으로, 거듭거듭 자기를 발명해 나간 황진이는 스스로의 생명력을 최대한으로 시험하고 실현한 사람이었다.
허난설헌과 황진이는, 각기 입지가 매우 다르기는 하나, 당대의 문학제도 안에서 자기표현의 기술을 수련한 여성 지식인이었다. 그렇다면 문학제도 바깥에 있는 여성, 한문이든 한글이든 아예 문자 자체를 배우지 못한 여성은 무엇으로 자기를 재현할 수 있을까? 포스트마르크시스트이자 탈식민주의페미니스트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은「하위자는 말할 수 있는가?(Can subaltern speak?)」라는 에세이에서 다중(多重) 식민화의 그림자 속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침묵을 강요당해온 여성하위자(subaltern)의 재현 문제를 제기한다. 스피박은 여기서 지식인 여성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다. 하위자로서의 여성이 처한 구체적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하위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그들의 말을 의미 있는 담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지식인 여성의 진지한 ‘말 걸기’를 통해 여성 하위자의 삶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에 결성되어 현재까지 피해 당사자들과 연대하여 일본군 ‘위안부’ 범죄 해결을 끈질기게 촉구해 온 정신대대책협의회는 하위자를 향한 지식인 여성의 ‘말걸기’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문학제도 바깥에 있던 전근대 민중여성의 육성(肉聲)을 들을 수 있는 진귀한 자료로 조선 후기 내방가사 계열의 최고점이라 평가되는 「덴동어미화전가」 원제는 「화전가」이나 작중 등장인물인 덴동어미의 사연이 작품의 자질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에 흔히 「덴동어미화전가」로 불린다.
가 있다. 화전가는 원래 봉건 가부장제하의 규중부녀자들이 청명절을 전후하여 한 차례 화전놀이를 하고 그 감회를 풀어낸 일군의 가사를 가리키는 말로, 전근대 여성의 풍류노래이다. 화전놀이가 대개 사족(士族)부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화전가의 지은이가 글재주 있는 사족부녀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덴동어미화전가」는 문학적 자기표현의 수단을 가진 여성이 그렇지 못한 서발턴에게 말 걸고 그것을 담론화한 유의미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덴동어미화전가」의 서술자는 화전가의 틀 속에 액자형식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나라 여성 하층민의 대표성을 지니는 덴동어미의 사연을 담았다. 거듭된 상부(喪夫), 아무리 노력해도 끝나지 않는 가난과 지긋지긋한 고생살이로 요약되는 덴동어미의 삶은 화전가의 4·4조 음률에 맞추어 핍진하고도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은, 조선시대는 여성의 암흑시대이고 조선시대 여성은 남존여비와 삼종지도 따위 봉건 가부장제의 질곡에 묶여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고 산 가련하기 그지없는 피억압자들이라고 쉽사리 동질화한다. 시대와 신분, 가풍과 기질 등에 따른 무수한 차이는 간과하기 십상이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 삶의 조건과 투쟁하고 타협하면서 더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그들 또한 그들 삶의 조건과 최대한 투쟁하고 타협하면서 신명을 길어내고 풍류를 즐겼다는 사실을 간단히 지워버리는, 이런 식의 무심한 동질화는 경계하여 마땅할 터이다.
신명과 풍류는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고 삶의 차원을 높이는 힘이 된다. 이제, 허난설헌, 황진이, 덴동어미의 경우로 분류하여 전근대 여성의 신명과 풍류를 살펴보겠다. 이것은 21세기를 사는 ‘딸’이 저 오래 된 ‘어머니’들에게 말 거는 작업이기도 하다.  

     
2. 전근대 여성의 신명과 풍류

 2.1. 허난설헌의 유선시 - 여신들의 유토피아 상상하기

허난설헌이 남긴 유선시는 「유선사(遊仙詞) 87수」 이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展白玉樓上樑文)」, 「망선요(望仙謠)」 등을 합쳐 99수에 이른다. 조선, 중국을 통틀어 유선시를 남긴 여성시인으로는 허난설헌이 유일하다. 허난설헌은 유선시를 쓴 유일한 여성시인이면서 남녀를 막론하고 유선시의 최고 수준을 선보인 작가로 손꼽힌다.

누님의 시와 문장은 모두 하늘이 내어서 이룬 것들이다. 「유선시」 짓기를 좋아했는데 시어가 모두 맑고 깨끗해서 사람의 솜씨가 아니라 할 만하다. 또한 문장이 기이하게 뛰어났으며, 그 중에서도 사륙문이 가장 아름다웠는데, 「백옥루상량문」이 세상에 전한다. 작은형이 일찍이 이렇게 말씀했다. 경번의 글재주는 배워서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대체로 이태백과 이하가 남겨 놓은 글이라 할 만하다. 허균, 󰡔학산초담󰡕, 박혜숙, 󰡔허난설헌 평전󰡕, 건국대학교출판부, 2004, p.34에서 재인용.
 

인용문에서 허균이 회고하듯 허난설헌은 유달리 유선시 짓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실제로 󰡔난설헌집󰡕에 실린 211수의 시편 중에서 절반 가까이의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유선시이다. 명나라 종군 문인 오명제가 편집한 󰡔조선시선󰡕에 “허난설헌이 친필로 쓴 「유선곡」 81수를 구했지만 본래 작품은 3백 수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박혜숙, 위의 책, p.172.
 난설헌은 왜 이렇듯 선계의 유희에 상상력을 집중했을까?
우선은 오문장가 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을 가리킨다.
를 낳은 양천 허씨 집안의 분위기가 도교와 매우 친근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겠다. 난설헌의 부친인 초당 허엽은 이지함, 노수신, 박지화 등과 함께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난설헌의 신선사상은 아버지 허엽을 통해 중개된 서화담의 도가사상에 일정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난설헌 스스로 신선 설화가 수록된 중국문학의 보고(寶庫)인 “󰡔태평광기(太平廣記)󰡕 읽기를 좋아하여 그 긴 글들을 모두 외웠다” 임상원의 󰡔교거쇄편(郊居瑣編)󰡕, 김성남, 앞의 책, p.113에서 재인용.
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도가에의 경도가 상당했다. 불행한 결혼생활은 선계로의 도피 심리를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난설헌의 아우 허균 또한 “󰡔성소부부고󰡕의 「몽해(夢解)」라는 글에서 세상일에 변고를 겪은 뒤부터는 명리를 향한 마음은 끊고 수련에만 뜻을 두고 도가의 경전이나 비결(秘訣)을 많이 읽으면서 연구에 빠져들었더니, 꿈속에서 진인을 만나기도 하고 난새와 학을 타고 오색구름 속에서 퉁소 소리를 들은 것이 여러 번이었다고 했다.” 박혜숙, 앞의 책, p.185.
현실의 고통과 속박은 그러한 고통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게 했고, 그 갈망은 기왕의 도가적 영향권 아래에서 선계의 유희에 대한 집요한 상상으로 현현했을 터이다.      
허난설헌 유선시가 펼쳐 보여주는 판타지의 세계는 실로 광대하고 신비로우나, 여기서는 「유선사 87수」의 첫 수와 마지막 수만 감상해 보자.

遊仙詞 1.

千載瑤池別穆王         천년 고인 요지에서 목왕과 헤어지곤
暫敎靑鳥訪劉郞         파랑새더러 유랑에게 들르자 하였네
平明上界笙簫返         동트는 하늘에선 피리소리 들려오니
侍女皆騎白鳳凰         시녀들은 모두 다 흰 봉황을 탔구나

 87.
六葉羅裙色曳烟         여섯 폭 비단치마 안개 속에 잡아끌며
阮郞相喚上芝田         완랑을 불러내어 지초밭으로 올라가네
笙歌暫向花間盡         피리소리 홀연히 꽃 가운데 스러지니
便是人寰一萬年         그 사이 인간세상에선 일만 년이 흘렀구나

 주나라 목왕과 헤어지고는 금세 또 유랑(한 무제 유철(劉撤))을 만나러 가는 첫 수의 주인공은 서왕모이다. 󰡔태평광기󰡕에 기록되어 있는 여신 서왕모는 남신 동공왕과 함께 음양의 두 기를 다스리며, 하늘과 땅을 양육하고, 천지만물을 제조하는 절대자이다. 득도하여 신선이 된 자들은 반드시 곤륜산 궁궐에 가서 서왕모에게 참배를 올려야 했다. 난설헌의 상상세계는 이 서왕모가 다스리는 여신들의 천국이다. 이들은 난새나 봉황, 용을 타고 이동하고, 파랑새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피리와 퉁소를 즐겨 불고, 선도(仙桃)와 단사(丹沙)를 먹고, 경액주(瓊液酒)를 마시고, 조회를 하거나 선경(仙經)을 읽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연회를 연다. 주목왕과 한무제를 연달아 만나는 서왕모를 위시하여 청동, 상원부인, 강궐부인, 항아, 동비, 서한부인, 남악부인 등의 선녀들은 여러 남신들이나 인간세상의 뛰어난 남성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유혹하고 사랑하고 놀이를 즐기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재회한다. 육신과 영혼이 모두 자유로운 그들은 재미난 놀이 같은 삶을 영원토록 누린다. 난설헌 유선시가 구축한 유토피아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 수의 주인공은 난설헌 자신이다. 그녀는 여섯 폭 비단치마를 끌며 완랑 완조(阮肇)를 가리킴. 유신(劉晨)과 완조가 천태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선녀를 만나 반년을 머물고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7대가 흘러 있었다 한다.
과 함께 지초밭으로 간다. 선계의 피리 소리가 지초 꽃 가운데로 홀연히 스러진다 싶더니 둘은 인간세상으로 돌아와 있고 그 사이 세월은 일만 년이나 흘렀다. 꿈꾸지 않고는 살 수 없으되, 역시나 허망할 수밖에 없는 꿈꾸기의 마지막을 안타까이 확인하는 대단원인 것이다.
이렇듯 유선시의 시인 난설헌은 현실에서 허락되지 않는 신명과 풍류를 상상 속 신선세계에서나마 마음껏 누리고자 했다. 을유년(1585)에 기이한 꿈을 꾸고 쓴 「몽유광상산시(夢遊廣桑山詩)」에서 “연꽃 스물일곱 송이 떨어지고”라고 노래한 난설헌은 기축년(1589), 스물일곱 살 되던 해 봄에 “삼구홍타(三九紅墮)”란 시구를 징험하듯 세상을 버린다. 시재(詩才)만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력까지를 선계에의 상상에 기투한 시인은 그렇게 꿈처럼 갔다.      

2.2. 황진이 - 우주의 영성과 감응한 풍류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이 주옥같은 작품이라는 데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해 일찍이 가람은 <우리가 물려받은 몇천 수 시조를 몽땅 내어놓고 바꾸자 해도 바꿀 수 없는 시조>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 시조를 나직이 읊조리다 보면, 저절로 ‘과연!’이란 탄식이 터져나오게 마련이다. 얼마나 골똘했기에, 시인은 동짓달의 그 차고 긴 밤의 허리를 볼 수 있었을까? 나는 가람보다 한 술 더 떠서 이 시는 세계적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최원식, 「冬至에 대한 단상」, 󰡔문학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1, p. 315.  
최원식은 시조 「동짓달」의 여러 텍스트 중 가장 아름다운 본(本)으로 김태준(金台俊)이 교열한 󰡔청구영언󰡕의 그것을 꼽는다.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헤내여
            春風 니불 아래 셔리셔리 너헛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구뷔구뷔 펴리라

최원식은 「동짓달」이 시조의 비밀을 완벽하게 장악한 천재 황진이의 시조들 중에서도 백미라고 평가하면서, 동지에 대한 사유를 축으로 「동짓달」 종장의 ‘어룬님’과 화담 서경덕을 연결한다. 최원식에 의해 황진이는 16세기 개성에서 서화담이 이끈 자유롭고 불온한 써클의 대모(代母)이자 동지에의 사유에 스며 있는 혁명의 씨앗을 청신하게 계승한 조숙한 근대인으로 호명된다.      
그의 해석에 동의하는 한편으로 나는 이 시조가 품고 있는 우주적 영성에 대하여 보론(補論)을 시도하고 싶다. 동짓날 밤이라는 시간의 허리를 끊어내어 굽이굽이 펼칠 수 있는 피륙의 질감으로 이미지화할 수 있는 시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한국시조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 시공합일(時空合一)의 발상은 생명 가진 것들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 아울러 우주의 시공간을 통째로 사고하는 영성의 소산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나긴 동짓날 밤 홀로 앉아 어룬님을 그리는 고독한 주체는 시간에서 공간을 보고 공간에서 시간을 보았고, 만유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으리라.
또한 「동짓달」은 시조의 외형적 음수율뿐만 아니라 완벽에 가까운 내재적 음악성을 갖추고 있는 바, 이는 우선적으로 황진이가 동짓날 밤의 날선 긴장과 간절한 염원의 시상을 담아내기 위해 선택한 시어들이 한결같이 ‘ㄹ’, ‘ㄴ', 'ㅁ’, ‘ㅇ’ 등 흐름소리를 포함한, 귓맛 빼어난 우리말인 데서 만들어진 것이다. 차가운 동짓달 밤, 우주의 시공간 안에서 오뚝한 시인의 영성이 절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전달할, 제 소리를 찾아 시어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기록에 따르면 황진이는 죽음을 앞두고 “곡(哭)을 하지 말고 고악(鼓樂)으로써 인도해 달라”, “죽은 뒤 산속에 묻지 말고 큰 길에 장사지내 달라”, “생전의 업보로 관도 덮지 말고 동문 밖에 시체를 버려 갖은 버러지와 동물들로 나의 몸을 먹게 함으로써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서종남(徐宗男)은 이를 “妓女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悔恨과 自虐의 유언”이라고 하면서 이것의 의미는 “자유분방했던 자신의 생에 대한 뉘우침” 내지 “봉건적 윤리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의 사회에서의 일탈된 자신의 파격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도덕적 책임의식을 인정한 것” 서종남, 「황진이 시가에 나타난 의식구조」, 󰡔시조학논총 13󰡕, 1997, pp.131-132.
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황진이의 이 유언은, 일차적으로 유교적·가부장제적 장례 문화에 대한 통렬한 조소이면서 이차적으로는 황진이가 죽음을 ‘기(氣)의 우주적 환원’이라는 차원 황진이의 스승인 화담은 무형의 선천태허(先天太虛)의 세계에서 기의 취산(聚散)작용으로 말미암아 후천(後天)의 천지 만물이 생성된다고 보았고, 후천의 만물이 그 현존을 끝마치고 사라지는 죽음은 취합(聚合)되었던 기가 다시 흩어지면서 태허의 氣의 세계로 환원 또는 복귀하는 것이라 여겼다.
에서 파악하고 포용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나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듯하다.
“곡(哭)을 하지 말고 고악(鼓樂)으로써 인도해 달라”는 유언에서, 죽음은 비감(悲感)의 대상이 아니라 유락(遊樂)의 대상으로 전도된다. 자유롭게 살았기에 아무런 원(怨)도 한(恨)도 남지 않았고 원한(怨恨)의 찌꺼기가 없기에 즐거이 삶과 이별하고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자기 삶에 대한 최고의 긍정이 담긴 유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죽은 뒤 산속에 묻지 말고 큰 길에 장사지내 달라”, “생전의 업보로 관도 덮지 말고 동문 밖에 시체를 버려 갖은 버러지와 동물들로 나의 몸을 먹게 함으로써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으라”라고 한 유언에서도 나는 회한과 자학이라거나 뉘우침과 도덕적 책임의식 같은 것보다는 황진이의 자기 긍정이 이른 어떤 경지를 느낀다. 산속에 묻지 말고 큰 길에 장사지내라, 관도 덮지 말고 동문밖에 버려서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으라는 말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기능적 정체성에 갇힌 세상의 뭇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강력한 암시 로 읽힌다. 또한 갖은 버러지와 동물들로 나의 몸을 먹게 하라는 말에서는 주검이 벌레들에게 먹히고 무기물로 분해되었다가 다른 생명의 몸을 이루는 생명의 순환, 나아가 우주만유의 순환을 깨닫고 받아들인 존재의 달관이 엿보인다.  

2.3. 「덴동어미화전가」에서 덴동어미의 말 - 여성언어의 치유력

신경정신과의 치료는 거의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말과 마술은 원래 동일한 것이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말은 원래의 마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말로써 다른 사람을 크게 행복스럽게 해줄 수도 있고,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 프로이트, 󰡔정신분석 입문󰡕, 삼성 출판사, 1995, p.57
다. 전통사회에서 무당이 맡은 역할은 어찌 보면 말로써 사람의 원(怨)과 한(恨)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정신과 의사가 맡은 역할과 유사한 것이다.
「덴동어미화전가」의 화전놀이에서 덴동어미가 수행하는 역할 또한 심상(心傷)한 자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말로써 그를 위로하고 신명을 불어 넣어주는 무당의 그것이었다. 덴동어미의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고생팔자 고생이리 슈지장단 상관읍지
            쥭乙고생 사람 칠팔십도 사라잇고
            부귀호강 난사람 이팔쳥춘 요사니
            고생이라도 이잇고 호강이라도 이잇셔
            호강사리 제팔자요 고생사리 제팔자라
            남의고생 꿔다나 탄덜 무엿고
            죠흔일도 그뿐이요 그른일도 그뿐이라
            츈삼월 호시졀의 화젼노름 와서덜낭
            꼿빗쳘 곱게보고 새소래 죳케듯고
            발근달은 여사보며 말근발람 시원다
            조흔동무 존노름의 셔로웃고 노다보소
            사람의눈이 이상여 제대로보면 관계찬고
            고은꼿도 색여보면 눈이캄캄 안보이고
            귀도또 별일이지 그대로 드르면 관찬은걸
            새소래도 곳쳐듯고 실푸마암 졀노나네
            맘심자가 제일이라 단단게 맘자부면
            꼿쳔졀노 피거요 새난여사 우거요
            달은매양 발근거요 바람은일상 부거라
            마음만여사 태평면 여사로보고 여사로듯지
            보고듯고 여사하면 고생될일 별노읍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불교적 진리와 상통하는, 듣는 사람의 설움과 시름을 풀어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의 인용문은 덴동어미의 말에 상심(傷心)을 치료한 청춘과부의 화답이다.

        덴동어미 말드르니 말슴마다 개개오래
            이내슈심 풀러내여 이리져리 부쳐보셔
            이팔쳥츈 이내마음 봄츈짜로 부쳐두고
            화용월태 이내얼골 꼿화짜로 부쳐두고
            슐슐나 진슘은 셰우츈풍 부쳐두고
            밤이나 낫지나 슷슈심 우새나 가져가게
            일촌간장 싸인근심 도화유슈로 씨여볼가
            천만쳡이나 싸인스름 우슘끗테 나읍네
            구곡간장 깊푼스럼 그말끗테 실실풀여
            삼동셜 싸인눈니 봄츈자만나 실실녹네

이론가들은 ‘타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여자들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에서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이 여성 언어는 “남성의 논리와 명료성과 일관성의 튼튼한 원칙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반논리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논리의 공식적인 언어에 저항하는 데 있어서 여자의 언어는 ‘비개인적’인 것으로 될 수 있고 ‘복수화’될 수 있으며, ‘탈중심’과 ‘다성악적 혹은 대화주의적’이 될 수 있다. 여성 언어는 논리적인 담론의 권위를 가정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언어의 계급을 탈피한다. 다이앤 헌들, 「여성주의와 대화론」, 󰡔바흐친과 문학 이론󰡕, 문학과지성사, pp.186-187.

고생팔자나 호강팔자를 동렬에 놓아 버리고, 좋은 일이나 그른 일이나 모두 그뿐이라는 덴동어미의 말은 사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틀린 발언이다. 그러나 헌들의 여성 언어이론을 참고하면 여성 언어는 논리의 공식적인 언어에 저항한다. 기실 진리가 논리로써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이론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덴동어미의 말 역시 다성악적으로 들린다. 그녀의 말은 당연히 그녀 개인의 말이지만 동시에 침묵을 지키는 혹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 수많은 민중 여성들의 말이기도 한 것이다.

3. 우리는 오늘, 왜, 그녀들을 호출하는가

우리가 과거의 인물을 현재로 호출하는 이유는 당연히도 현재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이다. 그 현재적 욕망이란 관음증일 수도, 자기정당화일 수도, 현실도피일 수도, 부재하는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도무지 언표(言表)할 수 없는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임꺽정, 장길산, 허준, 이순신, 명성황후는 물론이요 여성 하위자를 등장시켜 새로운 감각의 퓨전사극 열풍을 일으킨 다모(茶母)와 대장금(大長今) 역시 창작자와 독자의 현재적 욕망이 맞닿은 모종의 지점에서 불현듯 호출되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어떤 인물이 현재에 부각된다는 사실은, 현재의 어떤 욕망이 그 인물의 가면을 쓰고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현대인은 중세의 갖은 질곡들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는 각종 ‘현대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현대 자본주의의 가공할 속도에 멀미를 앓으며 살아간다.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주의에 대한 일상적 분노까지 감당해야 하는 페미니스트 여성의 삶 역시 더했으면 더했지 덜 힘들지는 않은 형편이다. 자기 시대의 시공간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이 자기 시대를 살면서 동시에 자기 시대를 뛰어넘어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범한 일이다. 일중독과 물신주의, 자기소외라는 내 시대의 질곡에 허덕이며 날마다 메말라 가는 범인(凡人)인 나로서는 저 전근대의 어느 시대, 자기 안에 마르지 않는 신명의 우물을 가지고 있어 목숨 다하는 날까지 풍류를 길어 올렸던 지상의 여신들이 그립다.  
영육이 모두 자유로운 여신들의 천국을 황홀하게 그려낸 16세기 ‘한류’의 선구자 난설헌 허초희. 그녀의 신령이 21세기를 사는 내 몸에서 다시금 지피기를 기원하며, 나는 오늘, 허난설헌을 부른다.
가지가지 끼를 고스란히 발현하고 원한 없이 우주 만유의 순환 구조 속으로 돌아간 16세기의 전설적인 자유인 황진이. 그녀의 신령이 21세기를 사는 내 몸에서 다시금 지피기를 기원하며, 나는 오늘, 황진이를 부른다.      
엉송이 밤송이 다 찧어본 고생살이 끝에 마침내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신명의 언어를 가지게 된 덴동어미. 그녀의 신령이 21세기를 사는 내 몸에서 다시금 지피기를 기원하며, 나는 오늘, 덴동어미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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