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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4(화)
코란의 삶의 철학  
알파슬란 아측겐치(터키, 파티흐대학 학장)

우리가 삶을 보는 관점에는 논리적 관점,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합리적 존재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합리적 관점이 있다. 이러한 합리적 관점에서 이해한 삶이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못한다면, 삶이란 우리에게 무의미해질 것이다. 삶의 합리적 측면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경험은 첫째 지각을 통해 얻은 것과 둘째 정서와 감정에 의해 얻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의 능력을 이용하여 삶을 보는 두 가지의 측면은 지각적 측면과 감정적 측면으로 요약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모두 마음(mind)에 의해 다스려진다. 인간의 지각(senses)은 그것이 욕구하는 바가 충족되면 만족하게 된다. 예를 들면, 만약 눈이 보게 되면 이 세상에 “본 의미”(seeing meaning)를 부여하게 될 것이고, 만약 귀가 듣게 되면 이 세상에 “들은 의미”(hearing meaning)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인식적 표상(perceptive representations)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지각에 의한 삶의 총체적 경험은 마음에 의해 합리적으로 평가될 것이고, 이어서 이 세상과 삶에 “인식적 의미”(perceptive meaning)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한편, 마음은 감정에 의해 형성된 표상도 받는다. 어느 한 감정은 그것이 충족된다면 삶을 의미 있게 느끼게 될 것이다. 어느 한 감정의 기능이 실현되면 그것은 충족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것의 기능이 실현되어 충족된다면 삶을 의미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 충족된다는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있어서 감정은, 개별적이건 전체적이건, 완전히 충족되지 않음으로서 마음을 괴롭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때문이다.

① 감정의 범위는 너무나 넓어 우리가 미치지 못한다.
② 때에 따라서는 어느 한 감정의 기능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때가 있고, 충족되지 못한 이 감정은 결국 영원에 대한 욕망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이러한 두 가지 미완성의 감정으로부터 받은 표상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하여 당혹하게 된다. 결국 우리의 마음이 이러한 미완성의 감정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될 때 우리는 삶을 무의미하다고 여기게 된다. 바로 그러한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삶을 의미 있게 해석하려는 합리적 근거를 찾으려 고심하게 된다. 이러한 추구의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관념과 과거에 대항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괴롭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삶을 유한한 과거로부터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는 무한정 넓은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의 인식 과정으로부터 또 다른 감정을 갖게 되는데, 무한정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것이다. 만약에 한 가지 감정 또는 전체의 감정 혹은 몇 가지 감정의 미충족으로 인해 삶의 끝이 이렇게 무한하다고 인식되면, 우리의 마음은 삶을 무의미하다고 해석하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어떤 과정의 의미를 해석하는 이론적(합리적)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마음은 어떤 과정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합리적으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어떤 과정이 시작과 끝으로 완성된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마음은 그 과정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삶은 마음에 의해서도 인식(인지)된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은 미래를 무한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삶을 지각과 감정들로부터 표상을 받는 합리적 원칙들에만 근거하여 해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은 삶을 의미 깊게 해석하기 위하여 항상 외부의 요소를 필요로 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코란은 삶의 해석학에 있어서 외부 요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필자가 대충 설명한 것은 코란의 삶의 철학과 관련하여서 세 가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 삶의 합리적인 관점, 둘째 삶의 감정적인 관점, 셋째 삶의 의식적인 관점이다. 각 관점은 삶에 있어서는 각 영역을 나타내고, 코란은 그것들을 탁월한 방식으로 평가(해석)하여 인간 삶의 의미를 밝혀주고 있다 본인의 연구방법은 코란의 시구들을 활용하여 그것들을 일관된 사상의 연결체로 결합시킴으로써 코란의 삶의 철학을 밝혀보고자 한다.

합리적인 관점
인간의 마음은 원래 유한하고 완성된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에 따르면, 마음은 무한한 존재를 무의미하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합리적 관점에서 존재의 유한함이란 그것이 완성된 것임을 말한다. 이러한 관념적 유한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존재가 명확한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삶과 존재에 목적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의 시간이 무한하다고 여겨지면, 삶은 무의미한 것으로 해석될 것이고 동시에 합리적 요소도 망각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코란은 합리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고, 존재와 삶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인간의 마음은 만족시키려고 시도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론적인 추동이 필요한데, 코란은 우선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코란은 존재 다시 말해서 삶이란 특정한 목적과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시작과 끝은 언제 실현될지 우리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무한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 관점 하에서는 시작과 끝은 시간을 잊어버린 상태에서 유한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하여 코란은 “거기에는 오로지 하나의 신(알라신)만이 존재한다. 그는 생명을 부여하고 또 죽게 만든다. 그러므로 신을 믿으라.”라고 주장한다.(7/al-A raf, 158. 코란의 인용에 대해서는 참고 문헌을 볼 것.) 이것은 어디까지나 합리적 관점이므로 코란은 신의 존재를 인간의 마음에 무의미한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진리는 지각에 의해 인식되지는 않고 코란에서 “heart"라고 하는 내부 인식적 능력(inner perceptive faculty)에 의해 인식된다.(Rahman, 1980, 34.) 따라서 코란은 ”그들은 그 땅을 여행할 때 “hearts"를 가지고 생각하고 귀를 가지고 들을 수 있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눈 먼 것은 그들의 (신체적)눈이 아니라 가슴의 ‘hearts'이다.”(22.al-Hajj, 46) 이것이 코란이 사람들로 하여금 합리적 관점으로 향하게 하는 방법인데,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천체와 지구의 창조와 밤낮의 순환에는 지각 있는 사람을 일깨워주는 징표가 분명히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서있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느님(알라신)을 찬양하고 천체와 지구 창조의 경이를 생각하고 찬탄하기를 “오 주여! 당신은 이것들을 창조함에 헛됨이 없나이다.”라고 한다.(3/Ali lmran, 190-195) 하느님 밖에 누가 천체와 지구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과수원을 무성하게 기를 수 있는 비를 하늘에서 내려주시는가? 너희로 인해 나무가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럴진대 하느님 밖에 다른 신이 있는가? 그럼에도 이들은 하느님의 동반자를 말한다. 그 분 밖에 누가 이 지구를 견고한 집으로 만드시고, 강물이 흘러가게 만들며, 산을 안치시키고, 바다와 바다를 서로 떼어 놓았는가? 그럴진대 하느님 밖에 다른 신이 있는가? 진실로 그들의 대부분은 이 진리를 모른다! 그 분 밖에 누가 고통 받는 이의 호소를 들어주시어 고통을 없애 주시며, 누가 그대들을 이 세상에서 그 분의 대리자로 삼았는가? 그럴진대 하느님 밖에 다른 신이 있는가? 그대들은 생각해 보지 않는구나! 그 분 밖에 누가 그대들을 육지와 바다의 암흑에서 인도하시는가? 누가 바람을 보내서 그 분의 자비(비)를 알려주시는가? 그럴진대 하느님 밖에 다른 신이 있는가? 그 분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지극히 높으시다! 그 분 밖에 누가 창조하시고 다시 창조하시는가? 누가 그대들에게 하늘과 땅으로부터 먹을 것 입을 것을 내어 주시는가? 그럴진대 하느님 밖에 다른 신이 있는가?(27/al-Alaml, 60-64)

그러므로 “하느님이 씨앗과 실과를 깨고 싹이 나게 하심이 분명하다. 그 분은 죽은 자를 소생시키시고 산 자를 죽게 하신다. 그럴진대 그 분은 전능하신 신이다. 어떻게 그대들은 이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는가? 그 분은 밤을 갈라 낮을 만드시고, 휴식을 위해 밤을 만드시며, 시간을 재기 위해 해와 달을 만드셨다. 이는 전지전능한 그 분의 결정이시다. 그대들이 육지와 바다의 어둠 속에서 길을 찾도록 별을 정해주신 분도 그 분이다. 하느님은 아는 자들을 위해 그 분의 징표를 자세하게 설명하신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대들을 한 사람, 한 곳, 한 성소로부터 나오게 하셨다.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것으로 온갖 식물들을 나게 하신다. 여기에 믿는 자들을 위한 증거가 있다. 그럴진대 그 분은 하느님 너의 주인이시다. 거기에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오로지 한 분의 하느님이 계실 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를 섬기라, 그 분은 모든 일의 인도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눈은 그 분을 보지 못하나 그 분은 눈을 보신다. 이제 그대들의 주로부터 명백한 증거가 주어졌다. 그 증거들을 보는 자는 자신에게 유익함이요, 눈 먼 자들은 자신에게 손해됨이라.”(6.al-Anam, 95-104. 또한 67/al-Mulk, 3-4, 24/al-Nur, 39, 2/al-Bagarah, 118, 52/al-Tur, 29-49.)
이와 같이 하느님에 대한 생각은 마음속에 명확한 의미와 명료한 은유로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은 인간들에게 그들의 외부(지평선)와 그들의 내부에 증거들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도록 하실 것이다.”(41/Fussilat, 53) 마음은 하느님을 파악하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마음을 파악한다(6/al-Anam, 103). 이는 또한 선지자 Muhammad의 말에도 표현되어 있다. “하느님은 7만개의 빛과 어둠의 장막을 가지고 계신다. 만약 그 분께서 장막을 거두시면 그 분 용모의 광채가 그 분을 보는 모든 이들을 휩싸버릴 것이다.”(Ghazali, 1952, 77) 마음은 하느님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분은 인간의 말을 빌려 자태를 드러내므로 우리는 그 분에 대해 얼마간은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코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비와 동정의 하느님은 영원하시다. 그 분 낳으시지도 아니하시고 태어나시지도 않는다. 아무도 그 분과 동등하지 않다.(Quran, 112) 그 분은 창조주이시고, 만드시는 분이며, 조물주이시다.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그 분의 것이다. 천상과 지상의 모든 것들이 그 분을 위대하게 한다. 그 분은 전지, 전능하시다.(59/al-Hashr, 24)

오 그대들이여! 인용된 비유를 잘 들으라. 하느님 외에 그대들이 섬기는 신들은 파리 한 마리조차 창조하지 못한다. 그 신들을 모두 합해도 그 일을 못한다. 그리고 파리 한 마리를 그들로부터 빼앗아 가면 그들은 결코 다시 찾아가지 못한다. 호소하는 자와 호소를 받는 자 모두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바로 알지 못한다. 하느님은 강하시고 강하시도다.(23/al-Hajj, 73-74)

존재가 명확한 언어로 정의되면, 인간 삶의 의미는 명확한 시작으로 주어진다. 명확한 시작은 명확한 목적과 함께함으로, 삶은 합리적 관점에서는 완결성을 부여받게 된다. “한 인간이라도 목적 없이 방치될 줄 아느냐? 보라. 그는 한 방울의 정자가 아니었느냐? 이어 그는 응혈이 되고, 이어 하느님은 그를 적절한 균형으로 만드신다. 이럴진대, 그 분은 죽은 것에 생명을 줄 수는 있는 능력을 가지신 것이 아니냐?(75/al-Qiyamah, 31-40) 그대들은 목적 없이 창조되고 우리(Us)에게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하느님은 그 이상이시다.(23/al-Muninum, 115) 사람은 그가 목적 없이 방황하도록 방치될 것으로 생각하는가.”(75/al-Qiyamah, 36) "그렇지 않다! 진실로 이르노니 그대는 현재의 삶을 사랑하고 내세는 미루어 두어라. 어떤 이들은 그 날에 그들의 주님을 보며 기쁨으로 밝을 것이며, 어떤 이들은 그 날에 혹심한 재앙이 그들에게 닥칠 것을 알고 슬프고 어두울 것이다. 그 날에는 그대의 주님에게 돌아가리라.“(75/al-Qiyamah, 20-30)
이것으로써 코란의 삶과 존재의 철학에서 합리적 관점에 따른 순환이 완성된다. 이게 마음에 관한 이론적(합리적)근거가 마련되었고, 다음은 마음에 없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감정적 관점
인간은 단지 합리적 존재만은 아니다. 인간은 감정적, 감각적 존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감정적으로 일상의 삶을 지각하면서도 그들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에게 삶과 존재는 감정적, 인식적 관점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관점들은 이간 존재의 측면들로써 해석학의 주제로 다루어졌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였다. 코란은 이 모든 측면들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합리적 관점에 대한 코란의 대응을 보았다. 감정적 관점에 대해서 코란은 인간 감정의 광범위함을 인정하고, 인간 감정의 본성에 대한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살펴볼 때, 우리의 많은 열망과 감정이 현세에서 충족되지 못함을 알게 된다. 그 결과로 그것들은 충족이 안 된 상태로 남아있게 되고, 이러한 미충족의 감정은 마음에 불안감을 심어 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그러한 미충족의 감정을 언젠가는 충족될 희망에서 일생의 투쟁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은 무한한 미래가 있음을 알게 되고 이 때에 수반되는 감정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이 감정은 다시 삶 자체에 환원되어 적응된다. 우리의 주된 감정과 관련하여, 이 과정은 장황한 심리학적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코란의 삶의 철학을 자세히 설명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20세기 회교 사상가 Said Nursi(1872-1960)에 의해 발전된 한 사례에 국한하고자 한다.
Nursi는 삶의 의미를 인간의 영원에 대한 열망과 관련하여 분석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 매우 넓다고 상상하는데, 실은 그것은 매우 좁은 “지금(now)"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좁은 세상의 양쪽은 거울처럼 투명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 눈길이 갈 수 있는 곳까지 펼쳐지게 된다. 두 벽 사이의 좁은 틈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세상은 광활한 대지처럼 넓게 보인다. 과거인 오른편, 미래인 왼편은 모두 실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는 무한한 속성 때문에, 지극히 순간적이고 좁은 현재를 나래 펼치듯이 펼치는 것이다. 현실은 상상과 혼합되어 우리는 부재하는 세계를 실재하는 양 가정하게 된다.
현세에서 우리의 “현재 시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잣는 실과 같다. 빠르게 자으므로 마치 표면을 가진 것처럼 넓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가느다란 선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실제로는 가느다란 실처럼 좁은 것인데, 환상과 상상에 의해 그것의 양 편이 펼쳐진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일이 잘못되면, 그 상황에서 우리가 겪는 감정은 공허감을 일으킨다. 우리의 삶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고 우리는 불안하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거울이 달린 두개의 벽 사이에 낀 사람과 비슷하다. 두 거울은 서로를 반사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벽이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지각하게 된다. 그가 벽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순간 그는 벽에 머리를 부딪치게 될 것이고, 그제에 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불안함을 환상으로 해석하고 그 환상을 물리쳐 버리게 되면, 넓었던 세상은 무덤보다도 좁고 실보다 가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Nursi, 1995, 186)
위의 설명한 바가 감정적 관점에 따른 현세의 삶에 대한 코란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코란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현세의 삶이 하나의 놀이와 오락과 같은 것 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따라서 최상의 삶은 그대들이 안다면 의로운 이들을 위한 내세의 삶이다.(6/al-Anam, 32. 또한 29/al-Ankabut, 64, 47/Muhammad, 36) 코란은 우리가 우리의 삶이란 번개보다 빨리 지나가고 강물보다 빨리 흘러감을 깨닫게 한다. 현세의 삶과 육체적 동물적 삶은 이렇게 짧은 상상의 세계임으로, 코란은 인간이 이러한 육신성(corporality)을 떠나 heart와 정신의 삶의 차원으로 들어가기를 요청한다. 우리는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가 상상한 세계보다 더 넓은 광명의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Nursi, 1995, 186) 코란은 신성한 결합(Divine Unity)의 신비함과 지식을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을 활동케 함으로써 그러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이미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감정적 관점은 인간의 종말에 다음과 같이 시작을 생각함으로써 완성된다. 즉 코란은 ”하느님은 최초로 생명을 있게 하시었고 그것을 다시 가져올 것이다. 그 분은 모든 창조물을 아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36/Ya Sin, 79)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가 이룬 일을 보라. 겨울에 모든 것이 죽은 후 그 분은 대지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는다.”(30/al-Rum, 50) 그리고는 새 생명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우리(Us)에게 홀로 오라. 애초에 우리는 너희를 창조하였다.(6/al-Anam, 94. 또한 19/Maryan,95)
이제까지 우리는 인간의 감정의 범위는 매우 넓고 그것들을 충족시키기에는 끝이 없다고 말하였다. 코란은 인간에게 이러한 막대한 감정들이 주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유한한 현세에 맞추어 질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코란은 이러한 감정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보다 넓은 삶을 열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우리는 믿는 자들과 의로운 일을 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주어 그들이 그 밑에 강물이 흐르는 파라다이스로 보상받게 할 것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열매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2/al-Baqara, 25) 그리고 책임의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에게 파라다이스는 가까워진 것이다.(그들은 이렇게 듣는다.) “이것이 너희에게 약속한 바이다. 그것은 주의 깊고 보이지 않는 자비로운 분 앞에서 겸손하며, 성심(Sincere heart)을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다. 평화의 파라다이스로 들어가라. 그 때가 영생의 날이 될 것이다.(50/qaf, 31-34)
코란적인 감정은 내세의 삶의 범위는 인간의 감정과 열망을 포용할 만큼 넓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만족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이 유한한 현세에 책임을 가져온다. 그러한 책임은 코란에서는 인간에게 도덕적 임무로 부과된다. 또는 코란의 표현대로 “누가 선한 일을 선택하는가.”(누가 악한 일을 선택하는가.)를 보기 위한 시험(trial)으로 부과된다.(67/al-Mulk, 2 및 76/al-Dahr, 1-3) 인간이 이 임무를 맡는 곳은 현세이고, 그 임무는 오로지 인간만이 자발적으로 맡을 수 있는, 코란의 표현에 따르면, “맡긴 것”(Trust)인 것이다. 우리는 코란은 마음에 의해 대변되는 합리적 관점, heart에 의해 대변되는 감정적 관점, 그리고 우리의 현세에 의해 대변되는 의식적 관점의 근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의식적 관점은 도덕적 영역으로서 거기서 인간은 엄청난 임무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임무는 신념을 구성하는 두 측면에 의해 간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모든 관점들은 인간의 삶에 구현되어 있고 실제 생활에 응집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주제에서 다룬다.

의식적 관점
현세에서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임무(도전)는 창조의 목적을 깨닫고 그 깨달음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부딪쳐야 할 진정한 임무(도전)이란 왜 그가 여기에 있고 왜 그가 사는 곳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인간은 현세에서 당장의 관심사들 특히 이기적 이해관계와 물질적 관심에 너무나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코란에서 al-akhirah라고 하는 삶의 “궁극(end)"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항상 도덕률을 범하고 있다. ”너희는 부주의함에 빠져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너의 베일을 벗기고 너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50/Qaf, 22) 따라서 코란은 인간에게 taqwa라는 진정한 책임의식을 갖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그 책임감은 사회의 도덕적 질서에 필수적이다. 이러한 목표는 지상에서 인간이 이상적 질서로 추구해야 할 바로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진리를 설명하든 아니든 그러한 인간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그들의 hearts와 귀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베일에 가려있다. ... 그들은 하느님과 믿는 이들을 속이려고 든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속일 따름이며, 그것 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들의 hearts에는 병이 있고 하느님은 그 병을 크게 하신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슬픈 벌이다. 그들 자신에게조차 거짓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지상에서 타락한 일을 하지 마라“라고 말하면 그들은 ”왜입니까, 우리는 단지 질서를 세우려 할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타락함을 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한다. ... 그들은 불을 지르는 사람들과 같다 불빛이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면 하느님은 불을 빼앗고 그들을 완전한 어둠, 볼 수 없음, 귀먹음, 벙어리, 장님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은 더 이상 진리로 돌아갈 수 없다. 또는 그들은 하늘의 비구름 아래에 있는 자들과 비슷하다. 그 아래는 어둠과 천둥과 번개의 자리이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포효하는 천둥소리를 막으려고 그들의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믿음(즉 진리)을 거부하는 자들을 언제나 찾아내신다. ...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그들의 듣고 보는 능력을 앗아 가실 수 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 전능한 힘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2/al-Baqarah, 6-20) 코란은 이 메시지에서 heart를 가지고 있고 알며, 성실히 귀 기울이며, 진리를 증언하는 자들을 위한 치유의 말씀을 보게 된다.(50/Qaf, 37)

코란의 관점에 의하면, 도덕이란 정신적 삶에 의해 부양되고 정신이 결여된 도덕적 삶이란 생명력이 없고, 정체되고 활력이 없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코란은 인간들이 정신을 부양하라는 메시지에 귀 기울일 것을 종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코란의 정신적 삶이란 도덕적 책임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코란은 정신적 삶에 대한 코란의 메시지를 신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로 인식하기를 바라고 있다. 예언자들은 그들의 사려 깊고 흔들리지 않는 인격과 신의 메시지를 받아 확고하고 두려움 없는 설교를 통하여 인간의 의식을 흔들어 안일과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깨어있는 상태로 전환시켰다.(Rahman, 1980, 80)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경계한다. “인간의 심성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차 있다. 그러므로 너희의 심성에 주의하라.”(4/al-Nisa, 128) “심성을 맑게 하는 자는 흥할 것이요, 심성을 타락케 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91/al-Shams, 9-10) 이기적 심성으로부터 자기를 구하는 자들은 흥할 것이다.“(59/al-Hashr, 9)
코란이 지적한 것처럼 예언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우리는 그대들에게 국가를 넘어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다. 사도들은 그대들의 증인이 되었다."(2/al-Baqarah, 143) "그대들로부터 선을 찾고 의로운 것을 가르치며 악한 것을 금하는 공동체가 일어나게 하라.”(3/Ali Imran, 104) 삶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코란이 지시하는 도덕적 명령들을 수반하는데,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살인한 자, 타락을 퍼뜨린 자 외에 살인한 자는 인류를 살인한 자와 같고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인류의 생명을 구한 자와 같다.”(5/al-Maidah, 35) 이와 같이 하여 인간성과 또한 사회를 파괴한 악한 행위는 금지해야 할 비도덕적 행위로 인식된다. 악을 피한다는 것은 때때로 매우 어려운데 유혹이 너무 강해 항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도덕적 양심을 지탱할 정신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우리 본성에 대한 성찰, 명상과 신앙이 중요하다. 이러한 의식적인 삶의 체계가 코란이 삼의 철학의 구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생명과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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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생명의 논리적 정립을 위한 한 시도   2005/10/04(화)  13858
51   스리랑카에서의 생명과 문화   2005/10/04(화)  6620
50   코란의 삶의 철학   2005/10/04(화)  7621
49   인도의 생명사상과 영성   2005/10/04(화)  5515
48   역학상로 본 동북아시아의 세계사적 위상   2005/10/04(화)  6423
47   동아시아적 사유와 생명정치   2005/10/04(화)  27830
46   원효의 화쟁철학과 서양 생태론의 종합   2005/10/04(화)  19263
45   전통사회 속에서 찾아보는 생명경제의 실마...   2005/10/04(화)  5845
44   지구화(地球化)와 지구제국의 패권에 저항...   2005/07/15(금)  5244
43   생명과 평화운동을 위한 제안   2005/07/15(금)  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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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학연구원